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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강좌 - 루쉰 선생을 말한다 ② ‘아Q’를 추방하라

작성자다사랑|작성시간15.06.22|조회수780 목록 댓글 0

 

특별강좌 - 루쉰 선생을 말한다 ②

희망이란 그대가 만드는 것!


‘아Q란 누구인가’


이어서 ‘아Q정전’은 1921년 12월부터 신문소설로 연재됐다. 필명은 ‘바런(巴人)’. 40세 때다. 연재가 시작되자 여기저기서 반향이 있었다.


“이 주인공 ‘아Q’ 라는 남자는 도대체 누구를 말하는가?”

“어쩌면 ‘아Q’란 나를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의심하고 두려움의 망상에 빠진 사람도 있었다.


당시 루쉰 선생은 정부 교육부에 근무하고 있었다. 연재되는 신문을 둘러싸고 동료가 이렇다 저렇다 서로 말을 주고받는 것을 루쉰 선생은 곁눈으로 보면서 모르는 체했다고 한다.


정신적 승리법


‘아Q정전’에 그려진 시대는 20세기 초 ‘신해혁명’으로 청조가 붕괴할 때다.

‘미장(美莊)’이라는 농촌 마을이 무대다.


주인공인 ‘아Q’라는 남자는 성을 모른다. 사는 집도 없다. 완력도 없다. 단지 자존심만 강하다.

그래서 자주 싸움을 한다. 그리고 진다.


그러나 상대가 그 자리를 뜨면 ‘아Q’는 ‘아들한테 당한 것이나 다름없다.’라고 자신을 위로하며 비참한 우월감에 빠진다.

그리고 다음에 또 단단히 혼쭐이 났을 때도 “나는 버러지야 버러지”라고 자기 자신을 하찮은 존재로 떨어뜨린다.

그런데 적이 가버리면 ‘나야말로 자신을 경멸할 수 있는 제일인자다.’라고 승리를 자랑한다.


이처럼 ‘아Q’는 언제나 승리한 기분을 느낀다.

그것을 루쉰 선생은 크게 비아냥대며 ‘아Q’의 ‘정신적 승리법’이라고 이름 지었다.

 

마음까지 얽매이지 마라


그러나 사실은 승리도 그 무엇도 아니다.

‘어쩔 수 없다.’고 단념하고 패배에 눈을 감고 있을 뿐이다. ‘그 놈보다는 낫다.’고 큰소리치며 자신을 속이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해서는 언제까지나 암흑상태가 바뀌지 않는다. 노예상태 그대로가 아닌가!

많은 사람들이 오랜 기간 신분지배 아래서 모르는 사이에 ‘단념’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쇠창살’에 갇혀 버리고 말았다.


그것을 루쉰 선생은 ‘아Q’로 백일하에 드러냈다. ‘이 어리석음을 봐라. 이 어리석음을 극복하라!’고.


역사상 어떤 시대라도 차별당하고 학대받는 사람들은 있었다.

그러나 설령 몸은 속박당해도 ‘두고 봐라!’ ‘학대하는 인간은 잘못하고 있다!’라고 마음에서 외치는 민족은 언젠가 반드시 지배의 어둠을 부수고 광명을 쟁취할 수 있다.

어떤 혹독한 환경일지라도 마음까지 속박당해서는 안 된다. 혼(魂)마저 빼앗겨서는 안 된다.


동양의 위대한 선철이 국가권력의 신명에 미치는 탄압이 소용돌이 속에서 “왕지에 태어나서 몸은 따른다 해도 마음은 따라서는 안 된다.”라고 말씀한 그대로다.


민중이여, 자기 자신을 기만하지 마라! 마음의 쇠창살을 두들겨 부숴라!

‘아Q정전’은 침묵하는 민족의 혼을 눈뜨게 하는 ‘각성의 징’을 선명하고 강렬하게 난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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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아Q마을에 신해혁명의 혁명당이 밀려왔다. ‘아Q’는 혁명의 파도에 농락당할 뿐 까닭도 모른 체 무고한 죄를 뒤집어쓰고 본보기로 처형되고 만다. 이것으로 소설은 끝난다.

마지막에 총살된 ‘아Q’의 “도와줘…”라는 들리지 않는 외침.


“나는 ‘아Q’의 슬픈 듯한 표정을 영원히 잊을 수 없다.”라고 프랑스 문호 로맹롤랑은 말했다.

 

자신의 나쁜 근성을 변혁해야


혁명으로 정치가 바뀌어도 ‘아Q’의 슬픔은 변하지 않는다. 정말로 바뀌어야 하는 것은 ‘국가’보다, ‘제도’보다 먼저 ‘인간’이다.

‘아Q’와 같은 인간자신이 자각하지 않으면 진실한 혁명이라고 말할 수 없다.


루쉰 선생은 이렇게 생각했다.

“첫 혁명은 만주조정을 쓰러뜨리는 것이기에 비교적 간단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 다음 개혁은 국민이 자기 자신의 나쁜 근성을 개혁하는 것이기에 여기서는 머뭇거리고 말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더욱 중요한 것은 국민성의 개혁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전제라 해도 공화제라 해도 그밖에 다른 제도라 해도 간판을 바꾸기만 하고 물건 내용이 그대로라면 말도 안 됩니다.”


인간이 바뀌지 않으면 아무리 정치의 간판을 바꿔도 오히려 지배의 도구로 쓰일 뿐이다. 그러므로 먼저 인간의 정신을 변혁하라! 이것이 루쉰 선생의 결론이다.

그렇게 하기 위한 무기가 바로 펜이었다. 루쉰 문학은 실로 ‘인간혁명’의 문학이었다.

 

‘아Q’를 추방하라


소설 ‘아Q정전’은 세계 40개국․ 지역이상, 60여 종류의 언어로 번역돼 세계문학 가운데 확고부동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왜 세계에서 읽혀지는가? 일찍이 중미 과테말라의 어느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아Q주의 또는 정신상의 승리 법은 우리가 압박자(壓迫者)에 대한 투쟁을 펼칠 때, 우리가 우리 자신이 놓여 있는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는 것을 방해할 뿐이다. 그렇기에 지금은 이것을 내던져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무사안일주의’가 돼 현실에서 눈을 돌린다면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현실을 바꿀 수 없다.

루쉰 선생이 ‘아Q’에게 담은 메시지는 국경을 초월해 세계 민중에게 호소한다.

“사회를 바꾸고 싶으면 먼저 자기 자신을 바꿔라! 그리고 자기 자신이 강해져라! 현명해져라!”

여기에 ‘아Q정전’이 지닌 보편성, 세계성을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고개를 들어라!


루쉰 선생은 ‘혁명’과 ‘문학’의 관계를 간결하게 이렇게 표현한다.

“혁명인이 작품을 쓰면 그것이 혁명의 문학입니다.”

또 이렇게도 말한다.

“작가가 투쟁자라면 어떤 것을 써도 그 글은 반드시 투쟁적입니다.”라고.


루쉰 선생은 진실한 혁명인 이었다. 투쟁하는 사람이었다. 루쉰 선생은 ‘사람을 기만하는 것’과 싸웠다. 철저하게 그 기만과 악을 공격했다.

“자신을 기만하고 남을 기만하는 희망적인 이야기는 모두 떨쳐 버려야 한다. 누구라도 자신을 기만하고 남을 기만하는 가면은 모두 힘 있게 벗어 던져야 한다.”

그것을 위해 ‘현실을 거리낌 없이 직사하라!’고 외쳤다. 현실을 올바르게 봐야 올바르게 생각하고 올바르게 행동할 수 있다.


청년이여, 고개를 들고 가슴을 펴라. 등줄기를 쭉 펴라. 눈을 내리뜨지 마라. 눈을 크게 뜨고 사악을 응시하자.

그리고 투쟁해서 악을 물리치는 용기와 기백을 가져라!

이것이 루쉰 정신이다.

 

침묵은 인간으로서 패배


쉬광핑(許廣平) 부인은 적고 있다.

“말하고 싶은 것을 정정당당하게 말했다. 이것이 바로 루쉰의 루쉰다운 모습.”

‘언론영웅’의 면모가 생생하게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그 루쉰 선생이 말하기를 “대담하게 소리를 내자!”라고.

“우리는 더욱 외쳐야 한다.” “단지 진실한 목소리만이 중국 사람들과 세계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다.” “내재하는 빛은 암흑을 걷고 마음의 소리는 허위를 단절한다.”라고 호소했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인간의 존엄, 생명의 존엄을 짓밟는 허위나 부정에 대해서는 “잘못됐다!” “이상자지 않은가!”라고 두려워하지 말고 소리를 높여야 한다.


루쉰 선생은 적고 있다.

“이 세상에 만일 아직 참된 삶을 살고자 하는 인간이 있으면, 먼저 일부러 지껄이고 일부러 웃고 일부러 울고 일부러 화내고 일부러 욕하고 일부러 때려, 이 저주해야 할 장소에서 저주해야 할 시대를 격퇴해야 한다!”


침묵은 청춘의 죽음이다.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인간으로서 패배다. 악이 기뻐할 뿐이다.

 

가장 두려운 것은 사자 몸속의 벌레


루쉰 선생은 신념 없이 대세에 영합하는 삶의 자세를 격렬하게 거부했다.

타인이 주는 것을 믿지 마라”라고 유언하기도 했다.

타인의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마라. 예리한 비판정신을 지녀라. 설령 혼자라 해도 올바르다고 믿는 길을 나아가라! 이것이 루쉰 선생의 ‘장부의 마음’이었다.

진정한 단결을 위해서도 중요한 것은 한 사람 한사람이 우뚝 서야 한다.


나아가 루쉰 선생은 ‘사자 몸속에 벌레’를 두려워하라고 강조한다.

“적은 두려워할 가치가 없습니다. 가장 두려운 것은 같은 편, 진지의 좀(해충)입니다. 대부분의 일이 그들 손에 걸려 실패합니다.”

그러한 ‘사자 몸속의 벌레’에 의연하게 대처해야 한다. 자신의 ‘인간혁명’ 또 민중의 ‘정신변혁’ 그것은 일조일석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루쉰 선생은 말한다.

“끊임없이 노력하자. 끈기 강하게 전진하다”고.

한때는 승리한 듯 보여도 낡은 반동의 세력은 반드시 숨을 다시 쉴 것이다. 그러므로 선생은 훈계했다.

“이 나라의 마비상태를 바로 잡으려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끈기’이며 또는 ‘끊임없이 각고면려’하는 것입니다”(양지서)라고.


‘다른 사람이 커피 마시는 시간에’


또 거만하거나 겉치레를 좋아하는 청년에게는 엄했다.

“1년이나 반년에 2편이나 3편의 작품 또는 2권 3권의 잡지로 전무후무한 대업적을 세웠다고 절대 생각하지 마라.”


자신에 대해서도 “천재가 어디 있겠는가. 나는 다른 사람이 커피를 마시는 시간에 일할 뿐이다”라고 말하듯 철저하게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여러 명작을 남긴 후에도 뽐내지 않고 변함없이 한사람의 청년을 진심을 다해 육성하고 격려하는 사람이었다.


신념어린 행동이기에 권력이 목숨까지 노려, 낮에는 빵과 통조림으로 허기를 견디고 밤에는 콘크리트 위에서 잠이 든 날도 있었다. 그러한 탄압 속에서 끊임없이 쓰고 있었다.

루쉰 선생은 싸웠다. 투쟁하는 속에서 계속 써 내려갔다. 그래서일까, 선생의 글자는 읽는 사람에게 용기를 준다. 악과 싸우는 혼을 더없이 고무시킨다.


새벽녘에


루쉰 선생이 ‘광인일기’를 집필한 1910년대 후반, 세계에서는 억압당한 민중이 일어서기 시작했다.

1917년 러시아혁명이 발발. 노동자가 선두에 서서 세계 최초로 사회주의혁명을 선언했다.

1919년에는 한반도에서 항일 ‘3.1 독립운동’이 일어났다. 같은 해, 인도 전역에서 간디의 비폭력․ 불복종 운동이 시작. 중국에서도 같은 해, 반제국주의 ‘5.4운동’의 큰 물결이 퍼졌다. 베이징대학교 학생을 비롯한 청년들이 일본의 부당한 요구에 항의해 일어선 것이다.


이 파동 속에서 루쉰 선생은 ‘인간혁명’ ‘정신혁명’의 지평을 응시하면서 혼신의 노력을 다한 펜의 힘으로 민중의 ‘새벽녘의 때’를 개척했다.

 

악에 대한 증오는 ‘신성한 증오’


중국 대중운동의 출발점이 되는 ‘5.4운동’에는 저우언라이 총리 부부도 참가했다.

훗날 저우 총리를 포함한 신중국 리더가 지침의 하나로 삼은 것이 루쉰 선생의 시 한 구절이다.

“눈썹을 치켜뜨고 천명의 손가락질을 쏘아 보지만 넙죽 등을 굽혀 기꺼이 아이들을 태우고 다니는 유자우(孺子牛, 역주 : 값싼 여물을 먹으면서도 큰일을 해내는 소 같은 인물. 기꺼이 인민들을 위해 봉사하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는 뜻).”

‘설령 천명의 적에게 지탄을 받는다 해도 눈썹을 치켜 올리고 냉연하게 맞선다. 그러나 어린아이를 위해서는 고개를 숙이고 소가 되는 것을 감수하고 등에 태워준다.’는 마음이다.


어떠한 박해를 받는다 해도 거만한 권력과 단호히 싸운다. 성실하게 사는 민중에게는 진력하고 또 철저하게 진력한다. 이 민중애의 정신이야말로 신중국을 만든 젊은 지도자들의 혼이었다.

루쉰 선생은 인간을 사랑했다. 조국을 사랑하고 고향을 사랑하고 민중을 깊이 사랑했다.

그의 문학은 ‘민중애의 열정’이었다. 민중을 사랑하기에 민중을 괴롭히는 허위를 철저하게 증오했다.


우리 몸을 태울 정도의 악에 대한 증오를 중국의 어느 작가는 ‘신성한 증오’라고 부르며 그 투철한 ‘반허위 정신’을 배우라고 호소했다.

뜨겁게, 뜨겁게 불타오르는 ‘민중애의 지도자’가 우리 소카대 학부에서 잇따라 나오는 것이 바로 내 희망이자 확신이다.

 

벗에게 보내는 희망의 철학


저우 총리 부인인 덩잉차오 여사가 상하이 어느 맹인학교를 방문했을 때의 가슴 훈훈한 일화가 있다. 덩 선생은 다기찬 어린이들을 이렇게 격려했다고 한다.

“여러분은 눈은 보이지 않아도 아름다운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루쉰 선생은 ‘길이란 사람이 걷기 때문에 생기는 법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행복의 길은 여러분 자신의 발로 걸어서 만들어야 합니다. 자신의 손으로 훌륭한 세계를 창조해야 합니다.”라고.


얼마나 힘차고 또 상냥한 자모(慈母)의 말씀인가.

나도 1960년 창가학회 제3대 회장으로 취임하기 전, 일기에 루쉰 선생의 ‘생명의 길’ 한 구절을 적어 둔 기억이 있다.

“길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길이 없던 곳을 밟아 만들어진 것이다. 가시덤불 투성이인 곳을 개척해 만든 것이다”라고.

새로운 인생의 투쟁에 도전하는 여러분에게 나는 이 말을 선사하고 싶다.


그대들의 앞날에는 캄캄한 밤도 있을 것이다. 가시밭길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코 물러서서는 안 된다. 괴로울 때야말로 한걸음 내디뎌라! 그 한걸음이 승리의 길을 열기 때문이다.

희망이란 자신이 만드는 것이다. 희망이란 가시밭길에게 보내는 것이다.

여기에 루쉰 선생이 몸소 보여준 ‘희망의 철학’이 있다.

 

일본 섬나라 근성의 개조야말로


“인도(人道: 인간으로서 마땅히 지켜야할 도리)는 각자가 힘을 다해 쟁취하고 가꾸고 육성하는 것이지 타인이 베풀어 주는 것이 아니다.”


루쉰 선생은 갈파했다. 아무리 표면상으로 가장해도 침략이란 ‘수성(獸性: 짐승의 성질)’의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고. 그러므로 그것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수성’과 대립해 압박당한 민중과 연대해서 자유로운 ‘인간적’ 세계를 넓히는 것이 바로 중국이 나아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했다.


루쉰 선생이 목표로 한 것은 민중의 자립이며 ‘노예근성의 변혁’이었다. 동시에 사회의 ‘주인과 노예’라는 관계 그 자체를 파괴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주인’도 아니고 ‘노예’도 아닌 새로운 사회를 만들려고 했다.


한편 메이지유신 때 일본은 ‘탈아입구(脫亞入歐)’라는 간판을 내걸고 아시아에서 빠져 나와 유럽의 뒤를 따르는 것을 지향했다. 그러나 문명의 성과만을 요령 좋게 수입해서 외면을 장식해도 내면의 확립은 불충분했다.

강한 자에게는 ‘종속’.

뛰어난 인물이 나오면 ‘질투’ ‘시기’.

요컨대 자기 자신이 없다. 뿌리 없는 풀이다.


이 일본의 ‘섬나라 근성’을 개조하기 위해 일어선 분이 창가교육의 아버지 마키구치 쓰네사부로 선생님이시다. 그리고 마키구치 선생님은 국가권력의 탄압으로 옥사하셨다.

 

인간존엄 - 행복이 창가교육의 사명


루쉰 선생은 지금까지 중국역사를 되돌아보며 크게 ‘(분쟁이 끊이질 않아) 노예가 되고 싶어도 될 수 없는 시대’와 ‘당분간 안전하게 노예가 돼 버리는 시대’ 이 두 가지밖에 없다고 총괄한다.

그리고 젊은 세대에게 호소했다.

“지금까지 없던 ‘제3의 시대’ 창조야말로 오늘날 청년의 사명이다!”(등화만필)


지금까지 없던 ‘제3의 시대’


그것은 전쟁의 불길이나 소란으로 죄 없는 민중이 괴로워하지 않는 시대다. 그리고 어떠한 것에도 예속되지 않고 모든 민중이 ‘인간’으로서 존엄과 행복을 쟁취하는 시대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 각자가 본래 갖고 있는 ‘위대한 사명’을 자각하고 그 사명을 실현하기 위해 감연히 도전해야 한다. 거기에 진실한 인간혁명의 길이 있다.

이 ‘제3의 시대’를 창조하는 영지의 요새가 바로 우리 소카대학교, 소카여자단기대학 그리고 소카학원이어야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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