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케다 SGI회장의 인물기행 - ‘역사의 거인’을 말한다.
한국의 잔다르크 유관순
젊은 여성이여, 일어설 때는 지금!
“구국의 소녀가 평화와 행복의 초석이 되는 승리의 열매를 우리에게 가져왔다.”
러시아 작곡가 차이콥스키의 걸작 오페라 ‘오를레앙의 처녀 (잔 다르크)’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이 세상에 정의로운 신념을 지니고 꿋꿋이 살아가는 젊은 여성의 목소리만큼 강하고 고귀하며 아름다운 소리는 없다.
15세기에 프랑스에는 잔 다르크가 등장했다. 20세기에는 한국에 유관순이 등장했다. 시대의 밝고 환한 빛은 소중한 사명에 춤추는 여성의 생명에서 발한다.
그리고 지금 창가(創價) 화양(華陽)의 멤버들이 인류가 우러러보고 칭찬하는 평화와 정의로운 연대를 확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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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 동상은 이제 막 앞으로 나아가려는 모습처럼 보였다.
서울 장충단 공원의 한 모퉁이. 우아하고 아름다운 치마저고리를 입은 차림으로 큰 횃불을 들고 발은 내딛고 있었다.
이 얼마나 자긍심과 용기에 불타는 모습인가!
‘한국의 잔 다르크’ 유관순의 눈동자는 서울의 맑은 하늘 아래, 머나먼 미래를 바라보고 있었다.
1990년 9월 22일, 서울 호암갤러리에서 도쿄후지미술관 소장 ‘서양회화명품전’이 성대하게 개막했다.
이 ‘서양회화 명품전’은 한국에서 처음 열리는 본격적인 서양미술전이었다.
그 전날, 나는 도쿄후지미술관 창립자로서 소년시절부터 동경하던 한국에 드디어 첫걸음을 내디뎠다. 문화대은의 나라에 예술교류를 통해 적으나마 보은하는 길을 열 수 있어서 내 가슴에 만감이 서리는 심정이었다.
개막식 후, 저녁에는 귀국해야 하는 빡빡한 일정. 그런 속에서 숙소 앞에 있는 가까운 공원에서 우연히 만난 것이 이 유관순 동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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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초등학교에서는 유관순을 기리는 노래를 계속 부르고 있다.
삼월 하늘 가만히 우러러보며
유관순 누나를 생각합니다.
옥 속에 갇혀서도 만세 부르다
푸른 하늘 그리다 숨이 졌대요
… … … …
지금도 그 목소리 들리는 듯하여
푸른 하늘 우러러 불러봅니다.
사랑하는 조국이 가장 큰 고난의 폭풍우를 맞고 있을 때 목숨을 바쳐 일어선 여성. 두려움 없는 그 목소리는 사람들의 마음에 지금도 깊이 울려 퍼지고 있다.
유관순은 1902년 (다른 설도 있다) 충청남도 천안군에서 태어났다. 삼형제와 함께 토끼를 쫓고 밤을 줍거나 버섯을 캐며 야산을 뛰어다닌 활발한 소녀였다.
어머니 이소제는 이웃의 가난한 집에 음식을 나눠주는 자애 깊은 여성이었다. 유관순도 어머니가 주는 음식을 들고 심부름 가는 일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고 한다.
어머니에게서 ‘배려하는 마음’을 이어받은 유관순은 이웃 아이들을 자주 돌봐주는 마음씨 고운 젊은 여성이기도 했다.
1910년, 일본은 한국의 은혜와 의리를 짓밟고 한국을 합병한다. 그 이전부터 악역무도한 지배가 유관순의 집안에도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아버지 유중권은 높은 뜻을 품은 용감한 교육자였다. 지역 유지와 독립을 목표로 ‘민중 계발’에 힘썼다.
‘교육이 곧 조국 독립의 기반’이라는 신조로 사재를 털어 흥호학교를 설립했다.
그러나 경영이 난관에 부딪치고 말았다. 일본인이 경영하는 악덕 고리대금업체에서 돈을 빌린 아버지는 매정한 빚 독촉에 시달리다 스스로 경영에서 손을 떼는 것으로 학교를 지켰다.
아버지의 이러한 불요불굴한 ‘신념 어린 불꽃’은 사랑하는 딸 유관순의 생명에 활활 불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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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 열네 살이 된 유관순은 고향인 천안을 떠나 서울 이화학당(현재 이화여자대학교의 전신) 기숙사에 들어갔다.
유관순이 사는 마을에 들어온 미국 여자 선교사가 유관순의 재능을 보고 추천하여 급비생이 됐다.
유관순은 많은 사람의 선의(善意) 어린 후원으로 시작한 학교생활에 깊이 감사하며 보은하겠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배우고 노력했다.
사람들이 꺼리는 일도 자진해서 도맡아 하는 유관순은 모두가 좋아하는 태양과 같은 존재로 빛났다.
내게는 부모님 슬하를 떠나 기숙사와 하숙생활에서 단련 받으며 공부하는 소카(創價)학원생을 비롯해 소카대생 · 단대생, 미국소카대생 그리고 존귀한 유학생 여러분의 모습이 연상된다.
마지막 한 사람까지
시대는 크게 변했다. 1919년 2월 8일, 도쿄에서 독립운동의 불길이 타올랐다.
이를 계기로 3월 1일, 서울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는 운동이 들끓었다. 이 운동은 단숨에 지방으로 확대됐다.
만세운동은 학생이 선구를 끓는 운동이다.
그리고 그와 함께 여성이 결연히 일어선 각성운동이기도 했다. 봉건제도에 얽매여 있던 여성들이 태극기를 만들어 차례를 몸을 던졌다.
“만세.”이것은 불합리하게 유린당한 조국을 단호히 지키고, 인간 존엄을 나타내는 목숨을 건 정신적인 승리의 함성이었다.
학교가 휴교하자 유관순은 천안으로 돌아왔다. 고향 사람들은 관헌의 음험한 감시 앞에 아직도 숨을 죽이며 살고 있었다.
우리 고향도 감연히 일어설 때가 왔다!
유관순은 마을 유지 등 주변 마을을 돌며 독립운동에 참여할 것을 호소했다.
류관순은 외쳤다. “자유가 없이 사는 것은 산다고 할 수 없습니다.”
사명에 불타는 유관순의 열성적인 호소에 한 사람 또 한 사람, 마을 사람들은 분기했다.
유관순의 진지한 대화가 마음을 열고 마음을 사로잡고, 마음을 움직였다. 유관순은 20일 동안 수 백리를 걷고 또 걸으며 끝까지 말했다.
“마지막 한 사람까지! 마지막 한 순간까지!”
이는 곧 운동의 확대에 집념을 불태운 유관순이 세운 신조였다.
울려 펴지는 ‘만세!’
마침내 천안군에서 가장 큰 장이 서는 아우내장터에서 궐기하기로 정해졌다.
결행 전야. 유관순은 밤이 깊어 어둡고 험한 산길을 올라갔다. 다음날 독립운동 봉기를 확인하는 신호를 보내기 위해서다.
가쁜 숨을 내수며 산꼭대기에 오른 유관순은 횃불에 불을 붙여 높이 들고 어둠 속을 응시했다.
그러자 사방팔방 이 산 저 산에서 잇달아 차례차례로 봉화가 올라갔다. 그 붉은 빛은 24곳으로 번져나갔다고 한다.
날이 밝은 4월 1일 정오, 수천 명이 아우내장터에 속속 몰려들었다.
군중 앞에 유난히 큰 태극기가 꽂혀 있었다. 운동을 주관하는 사람이 독립선언문을 읽은 다음 유관순이 단상에 올라 연설을 시작했다.
“독립만세의 외침은 삼천리 방방곡곡에 빠짐없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빠져서야 되겠습니까! 여러분, 우리도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만세를 부릅시다.”
연설을 마친 유관순은 소리 높이 “대한독립만세!”라고 외쳤다. 그러자 동지들이 태극기를 높이 들고 “만세!”라고 호응했다. 이를 계기로 장터에 “만세!” “만세!”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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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행진이 시작됐다. 큰 태극기를 손에 들고 선두에 선 사람은 유관순의 부모님이었다.
철저하게 비폭력이고 평화적인 행진이었다. 그런데도 공포에 질린 관헌이 소총 방아쇠를 당겼다. 이 총격으로 유관순의 아버지 유중권이 쓰러졌다.
더욱이 잔인한 무차별 발포로 수많은 동지가 희생됐다. 그 중에 유관순의 어머니 이소제도 있었다.
유관순이 보는 앞에서 가장 존경하는 정의로운 아버지와 어머니가 잇달아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자신도 부당하게 체포됐다.
악을 못 본 체하지 마라
감옥에서는 가혹한 고문이 계속 됐다.
그러나 유관순은 아무리 위협해도 굴복하지 않았다.
다른 곳으로 이송되는 차 안에서도 용수갓을 뒤집어쓴 채 군중에게 “독립만세!”라고 외쳤다.
함께 감옥에 들어간 동지가 한숨을 쉬자 “고문이 괴로워도 악역을 잠자코 못 본 체하는 것보다 마음이 편안하지 않는가! 단연코 투쟁하자!”하고 질타했다.
한 젊은 여성이 얼마나 강인하고 숭고한 정신투쟁을 관철했는가.
정말로 거룩한 역사가 여기에 있다.
가을이 깊어질 무렵, 같은 감옥에 있던 한 여성이 다른 방에서 아기를 출산했다.
유관순은 갓난아기를 안고 돌아온 산모에게 ‘기저귀’를 건넸다. 따뜻하다. 유관순이 뭄에 품어 따뜻하게 만든 것이다.
유관순은 일방적이 재판에 임해서도, 조국에 대한 긍지와 정의로운 신조를 당당히 서슴지 않고 말했다.
하지만 유관순은 잔학한 고문과 영양실조로 몸이 격심하게 쇠약해졌다.
유관순은 면회 온 오빠에게 “미흡하지만 나는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한다.”하고 말했다.
1920년 10월 12일, 고귀한 일생의 막은 내렸다.
젊은 여성들이 목숨을 내던져 봉기한 ‘3.1독립운동’의 불길은 중국의 ‘5.4운동’으로 이어졌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여러 나라에서 일어난 독립운동에도 그 정신의 위대한 빛은 넓혀졌다.
창가의 아버지 마키구치 쓰네사부로 선생님과 도다 조세이 선생님이 사제의 연을 맺게 된 것도 이 시대였다.
전 세계의 민중이 자기의 행복을 위해 만세를, 사랑하는 조국의 번영을 위해 만세를 그리고 인류의 평화를 위해 만세를 긍지 드높이 외치기 위해서는 생명의 존엄과 평등을 가르치는 대철학의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두 선생님은 아직껏 그 예가 없던 장대한 세계시민의 연대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일본의 군부권력과 꿋꿋이 투쟁한 사제는 한국 그리고 아시아에 대한 배려는 각별히 깊었다.
도다 선생님이 자신의 옥중투쟁을 회고하면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한국의 젊은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신 일도 잊을 수 없다. 그 눈에는 눈물이 빛나고 있었다.
나도 고등부와 소카학원생에게 기회 있을 때마다 말했다.
유관순 곁에는 잔 다르크의 전기(傳記)가 있었다. 잔 다르크처럼 영원히 빛을 발하는 사명의 청춘을 꿋꿋이 달릴 것을 굳게 다짐했다.
현재, 유관순과 인연이 깊은 이화여자대학교에서도 창가의 여학생이 모교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공부하고 있다.
한국의 국화는 ‘무궁화’이다.
그 이름 그대로 여름부터 가을까지 시들지 않고 활짝 피는 꽃이다.
한국에도, 일본에도, 전 세계에서 화양의 벗이 ‘정의와 우정이 꽃피는 대화’를 명랑하고 용감하게 끊임없이 넓히고 있다.
나는 아내와 함께 날마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건강하고 “행복승리의 청춘 만세를!”이라고 기원하고 있다.
☞ 화광신문 (090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