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人間革命 29卷 第3章 淸新(59~64)
<청신 59>
규슈기념간부회는 오후 1시 넘어 시작했다. 대강당에는 “선생님, 인도 건강히 잘 다녀오십시오”라고 쓴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모인 동지는 야마모토 신이치가 의의 있는 인도 방문을 규슈에서 출발한다는 데 기쁘고 자랑스러웠다.
앞쪽으로 해서 강당에 들어선 신이치는 따뜻한 박수를 받으며 참석자들 사이를 걸어갔다. 그리고 강당 맨 뒤쪽까지 가서 창가에 걸터앉았다.
“오늘은 여기서 여러분의 이야기를 듣겠습니다. ‘선구 규슈’ 여러분이 단결해서 기세 좋게 발랄하게 전진하는 모습을 마음속에 깊이 새기고 인도로 출발하고 싶습니다.”
가고시마 현장과 규슈 방면간부, 부회장이 차례로 나가 인사했다.
신이치는 강당 뒤쪽에서 가까이에 앉은 사람들에게 시선을 보냈다. 그 중에는 반가운 얼굴도 있었다. 미야자키 현에 사는 후지네 유키였다.
후지네는 초창기 때부터 미야자키에서 지구담당원(나중에 지구부인부장) 등을 역임하고 최근에는 지역부인부장으로서 성실히 신심에 힘쓰는 여성이었다. 신이치도 몇 번인가 만났다.
후지네는 1974년에 고락을 함께한 남편을 여의었다. 후지네를 최고로 이해해준 남편은 무엇이든 말할 수 있는 인생의 반려이자 함께 지역광포를 개척한 동지이기도 했다. 마치 마음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듯 기운을 잃고 말았다.
이듬해 12월, 후지네는 규슈연수원에서 신이치를 만나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후지네는 사랑하는 남편이 타계한 일을 보고했다.
신이치가 후지네를 이렇게 격려했다.
“슬프겠지만 그 슬픔에 지면 안 됩니다. 혼자되어도 영원한 행복을 위해 싸워야 합니다. 부군의 몫까지 분발해야 합니다. 부군은 싸우는 당신의 마음속에 살아 있으니까요.”
그 말에 후지네는 힘을 냈다.
<청신 60>
신이치가 후지네를 만나 격려한 지 3년 남짓 되었다. 신이치가 푸근하고 밝은 표정을 한 후지네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후지네 씨, 건강해 보여 다행입니다.”
“예! 실은 지난해 지도부가 되어 지금은 지역지도장입니다.”
“그렇습니까. 무리하지 말고 건강에 유의하며 여유를 갖고 활동에 힘써 주십시오.”
“그것이… 지역부인부장일 때보다 더 바빠졌습니다. 날마다 개인대화로 일정이 꽉 차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를 의지하고 찾아주는 사람들이 있어 기쁩니다.”
“굉장합니다. 나이가 들어 중심 역직에서 물러나도 바쁘다는 것은 그 조직이 단결하고 사이가 좋다는 증거입니다. 그것이 제가 그리는 이상입니다. 반가운 일입니다.
또 당신이 ‘광선유포를 위해 어떤 일이든 하자’는 마음으로 후배를 지키고 적극적으로 활동에 도전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인품입니다.
늘 불평만하고 움직이지 않는 선재라면 아무도 상대해주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정 역직에서 물러나고 나서 어떤 모습이냐가 중요합니다. 누구에게도 힘이 되지 못하고 찾지도 않는다면 쓸쓸합니다.
조직의 역직은 모두 바뀝니다. 그러나 광선유포를 위해 일하자고 하는 신심의 자세가 바뀌면 안 됩니다.”
후지네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이렇게 물었다.
“그렇지만 야마모토 선생님은 학회 회장으로 계속 계시는 거지요?”
“아니오, 저는 회장을 그만 둘까 하고 생각 중입니다. 지금은 전 세계에 많은 동지가 학회 본부를 찾아옵니다. 해외에서 오는 요인을 응대하는 일도 중요해졌습니다.
그래서 회장 자리에서 물러나 세계를 위해 일할 생각입니다.”
후지네의 안색이 바뀌었다. 귀를 의심했다.
“선생님, 안 됩니다. 정말 안 됩니다.”
회합 중이라 사실도 잊고 필사적으로 호소했다.
신이치는 “알았습니다” 하고 웃음 지었다. 석달 뒤 이 말이 현실이 되리라고는 후지네는 상상조차 못했다.
<청신 61>
규슈기념간부회는 신이치가 강당 뒤쪽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지역간부가 포부를 발표할 순서가 되었다. 모두 ‘전통의 2월’을 승리로 장식하겠노라고 결의를 힘차게 피력했다.
구마모토현 구마모토미나미지역의 나리마스 게이코가 부인부 대표로 밝고 담담하게 포부를 말했다.
“우리 지역은 구마모토역을 중심으로 나쓰메 소세키의 ‘풀베기’로 유명한 긴보산부터 남쪽으로는 아리아케해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입니다. 날마다 애차인 ‘광포호’를 타고 전 지역을 활기차게 누빕니다.
개인지도를 하러 다니면 회원들이 ‘어딜 가세요?’ ‘저희 집에 들렀다 가세요’ 하고 허물없이 말해주는 인정미 넘치는 곳이 우리 지역이랍니다.
올해 초 저는 ‘내가 먼저 앞장서서 한 사람 한사람과 철저히 대화하고 끈기 있게 격려하자, 개인대화를 추진하자’고 결의하고 실천했습니다. 이 ‘전통의 2월’에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날지 기대됩니다.”
신이치는 자기도 모르게 “그렇다! 그것밖에 없다” 하고 성원을 보냈다.
은사 도다 조세이(戶田城聖)가 평생의 원업으로 내건 회원 75만 세대 달성의 돌파구를 열어 ‘전통의 2월’의 연원이 된 1952년 2월 가마타지부에서 펼친 활동, 그 승리의 핵심이 바로 철저한 개인대화였다.
신이치는 제일선 조직인 조 단위활동을 추진하려고 각 조를 돌며 멤버를 철저히 격려했다. 절복을 어떻게 하는지 모르는 멤버가 있으면, 함께 불법대화를 하러 나갔다.
회원 중에는 병상에 누운 남편을 대신해 직접 일해서, 몇명이나 되는 자녀를 키우는 부인도 있었다. 실업 중인 장년도 있었다. 자금 마련이 어려워 창백한 얼굴로 “저는 이제 끝장입니다.” 하고 고개를 떨구는 영세 공장의 사장도 있었다.
다들 고뇌에 허덕이고 있었다. 신이치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고, 때로는 눈시울을 붉히며 이렇게 힘주어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신심으로 일어서야 합니다. 어본존의 힘을 실감할 기회가 아닙니까! 숙명전환을 하기 위한 싸움입니다.”
<청신 62>
신이치의 격려를 받은 가마타지부 동지는 일기당천의 투사가 되어 2월 투쟁에 힘썼다.
모두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심각한 고뇌를 안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 ‘신심으로 이기겠다! 질 수 없다!’며 광선유포의 사명을 위해 일어섰다.
고뇌하는 사람이, 고뇌하는 모습 그대로 결연히 일어나 벗을 격려하고 광선유포를 추진한다. 사람들은 이러한 행동에 진정으로 공감하고 큰 용기와, 큰 힘을 얻는다. 이것이 바로 지용보살의 실상이다.
그 싸움은 결국 한개 지부에서 한 달 만에 201세대라는, 당시로서는 미증유의 홍교를 달성한다.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은 2월 투쟁을 용감하게 펼친 동지가 공덕의 체험을 쌓아 환희와 확신에 불타 고뇌를 이겨냈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아무리 큰 고뇌를 안고 있어도 벗의 행복을 바라며 용기를 갖고 불법을 말하고 격려할 때, 가슴속에 지용보살의 생명이 맥동한다. 그 생명이 자신의 고뇌를 깨부수고, 허덕이는 경애를 크게 연다.
창가학회는 격려의 세계다. 격려는 자비의 발로이고, 이 실천 속에 불법이 있다. 광선유포는 격려의 스크럼을 지역과 세계로 넓히는 성업이다.
신이치는 구마모토현의 지역부인부장인 나리마스의 포부를 들으며, 2년 전인 1977년 5월 구마모토를 방문해 대표 간부와 간담한 추억을 떠올렸다.
그때 나리마스가 “시어머니가 네 살과 두 살짜리 아이들을 봐주셔서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하고 진심으로 고마워하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또 마사키지역 부인부장은 다들 신이치가 지역을 방문한 역사를 자랑으로 여기고 즐겁게 활동에 힘쓰고 있다고 보고했다.
아소지역 부인부장은 중북부 지방에만 피는 은방울꽃이 남부 지방인 아소에도 피듯이, 지금은 불가능하게만 여겨질지 모르지만 지역을 반드시 행복의 꽃동산으로 만들겠다고 결의했다.
신이치는 구마모토의 동지가 ‘한 사람도 빠짐없이’ 강하게 꿋꿋이 살아 인생에서 승리의 꽃을 피울 수 있도록 날마다 기원했다.
<청신 63>
신이치는 규슈기념간부회에서 나리마스의 포부를 들으며 이렇게 생각했다.
‘구마모토도, 오이타도 종문(宗門) 문제로 많은 괴로움을 겪고 있는 지역이다. 그러나 그 어려움을 날려버리듯 더욱더 광포의 불꽃을 불태우고 있다. 굉장하다. 언젠가 반드시 이 지역을 돌며 끈기 있게 신심을 관철한 멤버들을 진심을 다해 격려하고 상찬하자.’
신이치는 회합이 끝나자 “일곱개의 종 총마무리 해를 기념해”라고 쓴 어서전집을 나리마스에게 선사했다.
신이치는 간부회에서 ‘불법자의 자세’를 말했다.
"니치렌대성인의 지혜는 평등대혜이기에 일체중생을 평등하게 이롭게 합니다. 이러한 대성인의 생명인 어본존을 신수하는 불자인 우리의 인생은 전 인류가 행복해지기를 바라고 행동하는 하루하루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일본의 광선유포를 위해, 더 나아가 세계광포를 위해 꿋꿋이 달리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나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또 어떤 나라 사람이라도, 어떤 민족의 사람이라도, 어떤 환경에 놓인 사람이라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자신이고 싶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부처의 심부름꾼으로서 니치렌대성인의 가르침을 넓히는 사명을 완수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누구든 넓은 마음으로 포용하고 또 모든 회원을 신심 면에서 잘 이끌어 주기 바랍니다. 우리가 평등대혜인 부처의 지혜를 용현해 실천하는 곳에 세계평화로 가는 대도(大道)가 있습니다.
그리고 리더 여러분은 이해력이 좋고 유연하게 생각할 수 있는 지도자이기 바랍니다. 경직된 생각에 빠지면 시대와 사회 변화에 대응할 수 없고 결국에는 광선유포의 흐름을 막게 될지도 모릅니다.”
유엔인권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엘리너 루스벨트는 이렇게 지적했다.
“여러 위대한 문명이 멸망한 이유는 어떤 의미에서 그것이 고정화하여 새로운 상황, 새로운 방법 그리고 새로운 생각에 유연하게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청신 64>
신이치는 모인 규슈의 동지에게 광선유포를 위해 꿋꿋이 살기 위해서도 건강하고 장수하는 인생이기를 바란다고 말하고, 그것이 불법의 진실을 증명하는 일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리고 리더는 ‘모두 사명이 있는 사람’이라고 인식하고 인재를 육성하기 바란다고 말하고 이렇게 이야기를 끝맺었다.
“어디까지나 신심 제일로 사이좋게 전진하는 일이 화합의 축도입니다. 사이좋은 조직은 사람들에게 활기를 줍니다. 힘을 솟게 하는 원천입니다.
세상은 질투와 증오, 불신이 소용돌이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신뢰와 존경 그리고 격려가 가득한 화기애애한 인간 조직을 만들어, 그 아름다운 연대를 사회에 넓히지 않겠습니까!
이 2월도, 또 올 한해도 고락을 함께하며 나와 함께 새로운 역사를 새깁시다!”
큰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밖에는 눈이 계속 내렸다. 그러나 장내는 새 출발의 기세가 불타올라 열기로 창문에 김이 서릴 정도였다.
다같이 ‘동양광포의 노래’를 대합창했다. 규슈 동지는 아니 모든 학회원이 “동양광포는 우리의 손으로” 하고 이 노래를 드높이 부르며 광선유포에 매진했다.
동양광포를 이루겠노라며 아시아로 웅비해 나간 사람도 있었지만 대다수 동지의 활동무대는 자기 지역, 자기 동네였다.
이곳을 동양광포의 선구와 모범의 천지로 만들겠다며 현장에서 땀투성이가 되도록 한 집 한집 벗의 집을 찾아가 불법대화를 나누고 행복의 안내자가 되었다. 창가의 동지는 지역에 뿌리를 단단히 내리면서도, 그 일념은 지구를 감싸듯 동양 민중의 안온과 세계평화를 기원했다.
그리고 신이치가 외국에 나갈 때마다 대성공을 기원하며 창제했다.
한편 신이치는 동지들의 기원을 생명으로 느끼며 ‘모든 동지를 대표해 평화의 길을 열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달렸다.
이러한 사제불이(師弟不二)의 기상이 동양과 세계로, 전에 없는 광선유포의 흐름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