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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4章 求道 (12~17) 구도심을 잃었을 때 신심의 향상은 멈추고 만심에 빠지기 시작한다

작성자다사랑|작성시간14.07.16|조회수622 목록 댓글 0

新․人間革命 27卷

第4章 求道 (12~17)

<구도 12>


  ‘인생의 가로수 길’ 노랫소리가 월천자(月天子)가 웃음 짓는 늦가을 밤하늘로 흘러갔다.

  노자키 히로미는 노래를 부르며 ‘난 혼자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든든해졌다. 그리고 야마모토 신이치라는 젊은 투장과 함께 광선유포를 위해 살아가는 기쁨이 가슴에 복받쳐 올라 자신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어머니의 위궤양이나 일과 학회활동의 병행 등으로 짓눌렸던 자신의 마음이 되살아나는 느낌이었다.

  고투는 계속 되었다. 그러나 노자키는 지지 않았다. 신이치를 비롯해 모두와 함께 부른 ‘인생의 가로수 길’을 떠올리고 입으로 흥얼거리며 열심히 활동해 여자부 리더로 성장했다. 지부여자부장이던 1961년, 도호쿠 여자부총회가 열리게 되었다.


  노자키는 이때 전 여자부원의 수만큼 결집하자고 다짐했다.

  열심히 창제에 힘쓰며 몇 달 전부터 매일 아침 출근하기 전에 부원의 집을 찾아가 총회의 의의와 여자부의 사명을 진지하게 말했다.

  ‘광선유포의 활동 속에서 한번 정한 목표는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달성한다!’

  그것이 노자키의 신조였다.

  또 한사람 한 사람을 둘도 없이 사랑하는 동생으로 여기고 대하려고 노력했다. 자신도 ‘인생의 가로수 길’을 불러 격려해 준 신이치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으로 해서 살아가자고 정했다. 그래서 가정방문을 할 때면 각각의 고뇌에 귀를 기울이고 “이번 활동에 도전하고 승리해서 고뇌를 이겨냅시다.” 하고 외쳤다. 신심의 승리는 반드시 인생의 승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도호쿠 여자부총회에서는 미입회한 벗을 포함해 전 여자부원수를 웃도는 결집을 이루었다. 강당만으로는 참석자를 다 수용하지 못해 끝난 뒤에 야외에서도 지도회를 열었다.

  여자부시절에 기른 이 승리를 향한 집념이 노자키를 강하게 만들었고 어떤 일이 있어도 지지 않는 마음으로 연마해주었다. 기원의 힘과 끈질긴 행동이 있으면 사태는 반드시 열린다는 확신도 얻었다. 그것이 노자키의 신심의 바탕과 행복의 골격을 만들었다고 해도 좋다.


<구도 13>


  노자키는 늘 유의하는 것 중 하나가 구도(求道)였다.

  도호쿠 멤버는 지리적인 조건도 있어 도쿄 등에 비해 최고간부와 접촉할 기회가 아무래도 적었다. 노자키는 그러한 사정으로 학회본부와 마음의 거리도 멀어질까 걱정이 되어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생각했다.

  신이치가 제3대 회장에 취임했을 때 노자키는 이렇게 결심한다.

  ‘회장인 야마모토 선생님을 광선유포의 스승으로 정하고 철저히 호흡을 맞춰가자.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내 자신부터 최고간부들에게 열심히 지도를 받고 조금이라도 선생님의 마음을 알아가자. 그리고 모두에게 청신(淸新)한 숨결을 끊임없이 전할 수 있도록 하자.’

  노자키는 센다이역을 지나가는 간부가 있다고 들으면 역에서 기다렸다가 지도를 구하고 그것을 모두에게 전했다.

  이윽고 도호쿠 여자부는 ‘우리는 본부와 직결하고 있다’는 자각과 자랑을 지니게 되었다.

  또 노자키는 학회본부에도 발이 닳도록 다니며 지도를 받았다. 그러면서 노자키 자신이 크게 성장했다.


  사람은 구도심을 잃었을 때 신심의 향상은 멈추고 만심에 빠지기 시작한다. 불법자(佛法 者)는 영원히 구도자여야 한다. 거기에 인간혁명의 길이 있다.


  부인부에서도 교사인 남자부원과 결혼해 그 뒤 부인부로 이동했다.

  부인부에서 차츰 두각을 나타내 1976년에는 도호쿠 부인부 서기장을 겸임하며 사이마 메구미의 뒤를 이어 미야기현 부인부장에 취임했다.

  사이마와 노자키는 결혼 뒤에도 몇 번이나 인생의 시련을 겪었다.

  그러나 여자부시절부터 고생하며 학회활동에 면려해 자신을 연마하고 단련한 두 사람은 결코 꺾이지 않았다.


  산다는 것은 숙명과 벌이는 장렬한 격투라 해도 좋다. 그 격투를 승리해야 행복이 있다.

  이기느냐 지느냐라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을 직시할 때, 신앙이라는 ‘생명의 힘’의 원천으로 그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인간의 심지를 확립해야 한다고 뼈저리게 느낀다.


<구도 14>

 

  사이마는 빈틈이 없고 냉정했고 노자키는 명랑하고 늘 밝았다.

  그런 두 사람이 힘을 합쳐 도호쿠 광포의 새로운 견인력이 되려 하고 있었다.

  1978년 5월 27일 오후, 도호쿠평화회관에서 열린 부인부의 벚나무 기념식수에 참석한 신이치는 웃음 지으며 부인부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벚나무는 긴 겨울을 견뎌내고 봄을 맞아 아름다운 꽃을 멋지게 피웁니다. 벚나무는 ‘겨울은 반드시 봄이 되느니라’(어서 1253쪽)는 성훈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겠지요.

  도호쿠 부인부 여러분은 아무리 힘들고 괴로운 일이 있어도 반드시 신심으로 이겨내 이 벚나무처럼 행복의 꽃을 활짝 피우기 바랍니다.”


  신이치는 회관 뜰에 설치한 역대 회장의 글을 새긴 비(碑) 제막식과 회관 시찰 등을 마친 뒤, 도호쿠 6개현의 대표 간부와 간담회를 열었다. 신이치는 말머리에 참석자에게 최대로 경의를 표하며 말했다.

  “광선유포의 투쟁을 일으키고 ‘지가단면(止暇斷眠)’ ‘불석신명(不惜身命)’이라는 말 그대로 풍설을 견디며 도호쿠창가학회를 반석같이 구축한 여러분을 저는 진심으로 상찬합니다.

  ‘눈바람이 부는 수많은 산천’이라고 말합니다만, 여러분의 투쟁은 문자 그대로 눈보라를 뚫고 나아가는 전진이었습니다.”


  신이치는 도호쿠 동지가 얼마나 고생하며 지역광포의 길을 열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눈 속을 헤엄치듯 홍교하러 다니고 동지를 격려하러 다닌 장년부원의 체험도 알고 있었다. 마을 전체가 신심을 반대해 마을 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당했지만, 웃는 얼굴을 잃지 않고 주위에 신뢰를 넓혀 한 사람, 두 사람 차츰 홍교를 달성한 부인부원의 이야기도 알고 있었다.

  참으로 어서에 씌어 진 대로 광선유포를 추진한 용자들이다.

  이 분들을 지용보살이라고 하지 않고서 어디에 지용보살의 출현이 있다는 말인가. 어디에 부처의 사자가 있다는 말인가.


(역주) 지가단면(止暇斷眠) : 쉬지 않고 잠을 끊다.


<구도 15>


  신이치는 초창기 이래 도호쿠 동지를 쭉 지켜보았다. 그러면서 실감한 것은 아무리 어려운 일에 맞닥뜨려도 절대로 약한 소리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도호쿠 사람들은 냉해를 비롯해 칠레 쓰나미 등 온갖 재해에 시달렸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기 때문에 어보존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 사람들에게 힘을 주기 위해 우리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광선유포를 위해 홀로 서야 한다!하고 그때마다 한층 더 투혼을 불태웠다.

  도호쿠 동지는 고난의 거센 바람에 내동댕이쳐질 때마다 넓어진 그 땅에서 엄연히 고개를 들고 일어서는 모습을 통해 학회에 대한 이해와 공감의 연대를 넓혔다.


  이 보우(寶友)들이 보인 가장 큰 신앙의 실증은 ‘곳간의 재(財)’를 얻어 물욕을 채우는 일이 아니었다.

 ‘사람이 이렇게까지 강해질 수 있는가!’라는 인간이 지닌 눈부신 생명의 빛으로, ‘마음의 재’로 진실한 불법(佛法)의 힘을 증명했다.

  니치렌대성인(日蓮大聖人)은 ‘교주석존의 출세의 본회(本懷)는 사람의 행동에 있었소이다’ (어서 1174쪽)하고 말씀하셨다. 불법이라는 대법은 인간의 ‘삶의 방식’과 ‘행동’속에 있다.


  신이치는 이러한 도호쿠 동지를 생각하자 도호쿠 광포는 머지않아 더욱더 속도를 더해 ‘광포 모범의 미치노쿠(도호쿠의 옛이름)’가 출현하리라 강하게 확신했다.

  신이치는 간담회에서 이렇게 외쳤다.

  “또 새로운 10년을 향해 함께 광선유포의 봉우리를 등반합시다. 새로운 발걸음에서 희망이 생깁니다.

  앞길에는 당연히 눈보라가 맹렬히 몰아치는 날도 있겠지요. 대성인은 ‘대난이 오면 강성한 신심은 더욱더 기뻐하느니라’(어서 1448쪽)하고 말씀하십니다. 대난을 만나는 것은 신심을 시험 당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대난이 없으면 법화경행자가 아니로다’(어서 1448쪽)라고 하셨습니다.

  대난과 싸우는 일은 정의로운 길을 나아가는 사람의 숙명입니다. 결코 두려워하면 안 됩니다.”


<구도 16>


  간담회 뒤 신이치는 도호쿠평화회관 관리인실에도 들러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회의실 에서 이와테현에서 참석한 대표와 간담했다.

  신이치는 이와테 간부의 보고에 귀를 기울인 뒤 힘주어 말했다.

  “이와테현은 면적도 넓습니다. 구습도 깊어 학회에 대한 오해나 편견의 벽도 두꺼울지 모릅니다. 여러 가지로 고생이 많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만에 하나라도 ‘광선유포가 추진되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하는 마음이 있으면 진정한 힘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 일념이 근본적인 패인이 됩니다. 먼저 ‘포기’라는 일흉(一凶)을 깨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그러고 나서 현의 실정과 지역의 현실에 맞게 이와테는 이와테답게 희망의 미래도를 그려 명확한 목표를 정하고 나아가야 합니다.

  니치렌대성인(日蓮大聖人)은 ‘그 지방의 불법은 귀하에게 맡기겠소’(어서 1467쪽)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본불이 자신에게 그 지역의 광선유포를 의탁했다고 자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힘이 나옵니다.


  아와테현은 실로 다채로운 인물을 배출한 인재의 보고(寶庫)입니다.

  마키구치(牧口) 선생님과도 연고가 있고 유엔 사무차장을 지낸 교육자이자 농정학자인 니토베 이나조, 정치가로는 최초의 평민 출신 총리로 유명한 하라 다카시, 도쿄 시장을 지낸 고토 신페이, 총리를 지낸 사이토 마코토와 요나이 미쓰마사, 문학의 세게에서는 단지 작가인 이시카와 다쿠보쿠, 시인인 미야자와 겐지, 언어학자인 간다이치 교스케가 있습니다. 냉엄한 이와테의 풍토가 인재를 육성합니다.


  학회에도 무명이지만 수많은 인재가 있습니다. 동지가 한 사람도 없는 산촌에서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다기지게 신심에 힘쓰는 사람도 많습니다. 모두 민중의 용자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분투가 미래를 만들고 시대를 크게 엽니다.

  그러므로 간부 여러분은 한 사람 한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끈기 있게 격려해 일기당천의 투장(鬪將)으로 키워주십시오. 이와테의 광포는 제 염원입니다. 가까운 시일 내에 반드시 이와테에 가겠습니다.”


<구도 17>


  어느 현, 어느 지역에서나 번영의 꽃을 피우고 행복의 열매를 맺게 하는 일이 광선유포이다. 신이치는 그 전진을 위해 현마다 더 나아가서는 시, 읍, 면마다 세세하게 빛을 비추어 인재를 육성하고자 조금이라도 시간이 있으면 모두와 간담하려고 노력했다.

  초여름 햇살을 받으며 바람에 살랑거리는 신록에 희망이 춤추고 있었다.

  5월 28일 오후, 신이치는 도호쿠평화회관에서 열리는 미야기현간부회에 참석했다.

  신이치가 회관 구내를 걷고 있자 문 밖에서 “선생님!”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곳에는 나카쓰가와 요시에라는 대블럭담당원과 나카쓰와의 소개로 입회한 중년 남성 그리고 블록장과 블록담당원(현재 반담)이 있었다.

  “자, 어서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신이치의 재촉에 네 사람은 안으로 들어왔다. 나카쓰가와는 볼을 붉히며 한 중년 남성을 소개했다.

  “선생님, 이쪽은 저와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데 입회를 결심하고 오늘 기쁘게도 어본존을 수여 받았습니다.”

  “그렇습니까. 축하합니다!”

  신이치는 그 남성에게 “어떤 일이 있어도 열심히 신심에 힘써서 반드시 행복해지기 바랍니다!” 하고 말하고 모두와 악수를 나눴다.


  나카쓰가와는 눈물을 글썽이며 보고했다.

  “지난해 여름, 큰 아들이 회관 직원으로 채용되어 광선유포를 위해 꿋꿋이 살겠노라고 굳게 결의하고 있습니다. 고인이 된 남편도 분명 크게 기뻐하리라 생각합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나카쓰가와의 남편은 1964년, 마흔네 살에 병으로 타계했다. 자녀는 초등학교 6학년인 아들을 맏이로 세 아이가 있었다. 신심하는 남편이 젊은 나이에 타계하자 매몰차게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선조 대대로 믿어온 종교를 버리고 학회 같은 데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분했다. 그러나 나카쓰가와는 좌절하지 않았다. 인간의 강함을 끌어내는 힘이 바로 불법이다.



첨부파일 구도(12~17).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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