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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의 경전 "어서"에서 배운다 - 제60회 시조깅고전답서(차경난지어서) : 불퇴의 '묘법의 용자'에게 두려움은 없다!

작성자지우pa|작성시간14.04.16|조회수896 목록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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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깅고전답서(차경난지어서<此經難持御書>)

 

불퇴의 묘법(妙法)의 용자에게 두려움은 없다!

 

 

 

<강의>

 

2월은 어본불(御本佛) 니치렌대성인(日蓮大聖人)의 성탄(聖誕)의 달임과 동시에 은사 도다 조세이(戶田城聖) 선생님의 탄생의 달이기도 합니다.

매년 2월을 맞이할 때마다 나는 온갖 대난을 엄연하게 이겨내고 광선유포에 몸을 바치신 어본불의 생애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후 불타버린 들판에 혼자 일어서신 은사의 대투쟁을 생각하며 한층 더 대법홍통(大法弘通)에 대한 보은의 맹세를 새롭게 합니다.

도다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광선유포는 일생의 싸움이다. 아니 영원한 싸움이다. 설령 고난의 폭풍우가 있을지라도 단연코 지지마라!

은사는 사회에서 버림받고 시달려 온 서민을 “정말 가엾다. 반드시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며 끌어안으셨습니다. 한 사람의 벗에게 같이 괴로워하며 철저하게 격려하면서 한걸음 또 한걸음 광선유포의 큰 연대를 넓혔습니다. 그 원동력이 바로 ‘일대일의 대화’였습니다.

학회 초창기, 도다 선생님은 도쿄의 이치가야에 있던 학회의 분실(分室)에서 매일 오후 2시부터 4시가 넘도록 찾아오는 회원을 지도, 격려하셨습니다. 자신이 앉은 책상 앞에 7, 8개의 의지가 있는 작은 방에서 은사는 찾아 온 벗을 따듯하게 맞이하여 “어떠세요?” 하고 상냥하게 말을 걸었습니다. 그 자애의 목소리와 눈빛에 동지는 마음 놓고 솔직하게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경제고, 일의 어려움, , 가정불화, 자녀 문제, 인간관계 등 고민도 천차만별이었습니다. 그 하나하나에 선생님은 확신을 담아 응대했습니다. 그 격려에 동지는 한 사람 또 한 사람 분발했습니다.

 

터널을 빠져 나오면 그곳에는……

 

어느 날, 도다 선생님은 고난에 직면한 벗을 격려하며 이렇게 지도한 적이 있습니다.

“인생은 터널에 들어간 듯한 때도 있다. 그러나 터널을 빠져나오면 아름다운 경치가 보이지 않는가. 도중에 멈추면 안 된다. 신심으로 끝까지 싸우는 것이다.

이 ‘끝까지 싸운다’라는 은사의 말씀에 모두 희망을 찾았습니다.

“신심근본으로 나아가는 한, 어떠한 난()에도 지지 않고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 은사는 이 절대적인 확신을 외치며 동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번에 배우는 <시조깅고전답서>에는 고난에 직면한 문하(門下)에게 대성인의 엄하고도 따듯한 지도가 씌어 있습니다.

대성인께서 격려하시는 세계의 밑바탕에는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신뢰와 모든 사람에 대한 존경이 있습니다. 누구나 ‘사자왕(師子王)의 마음’을 가지고 어떠한 역경도 돌파하는 힘을 본연적으로 갖추었습니다. 그것을 끄집어내면 어떠한 사람도 부처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신심근본으로 나아가는 한 어떤 시련도 두려워할 것은 없다고 단언하십니다.

 

 

 

<본문> (시조깅고전답서 1136쪽 처음 ~ 3)

 

차경난지지사(此經難持之事), 대저 벤아사리(弁阿闍梨)가 말하기로는 귀하가 말한 바와 같이 수지하는 자는 현세안온(現世安穩) 후생선처(後生善處)라고 듣자옵고 이미 거년(去年)부터 금일까지 격식(格式)대로 신심을 해 왔던 바 그렇지는 않고 대난(大難)이 비처럼 왔소라고 운운(云云). 진실로 그리하였는지 또는 벤공(弁公)이 거짓 말을 하였는지 어쨌든 좋은 계제이므로 불심(不審)을 풀어 드리리라.

 

 

<현대어역>

차경난지(법화경을 수지하는 것은 어려운 일)’에 대해 말씀드리겠소.

벤아사리(닛쇼<日昭>)가 말하기로는 당신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는 군요.

법화경(본존님)을 수지한 사람은지금의 인생은 안온하고 다음에 태어날 때는 좋은 곳에 태어난다.(현세안온 후생선처)’고 듣고, 이미 지난해부터 오늘까지 본보기대로 신심을 해왔지만 그와 같이 되지 않고 대난이 비가 내리듯이 연이어 일어났습니다.”

이 일은 진실인가요. 아니면, 벤공(닛쇼)의 보고가 거짓인가요. 어쨌든 좋은 기회이므로 그 의심을 풀어드리겠소.

 

신심은 용기의 이명(異名)’

 

인간의 진가는 유사시에 나타납니다. 신심을 해도 온갖 고경에 빠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니, 올바른 신심에 면려하므로 난을 만납니다. 그때에 어본존을 끝까지 믿고 ‘지지 않는 혼’으로 전진하는 사람은 반드시 최후에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신심은 ‘용기의 이명(異名)’입니다. 대성인께서는 ‘불퇴의 용자’의 삶을 가르치십니다.

어 어서는 1275 3, 대성인께서 54세 때, 미노부에서 써서 가마쿠라에 있는 시조깅고(四條金吾)에게 보내신 편지입니다. 별명을 ‘차경난지어서(此經難持御書)’라고 합니다. 첫머리에 ‘차경난지지사(此經難持之事)’라고 있으며 다시 편지 끝부분에는 “이 이후는 차경난지의 사자(四字)를 잠시도 잊지 않고 생각하실지어다.”하고 맺었습니다.

‘차경난지’는 법화경 견보탑품 제11에 있는 “이 경은 수지하기 어렵도다.”라는 경문입니다. 법화경<1>에서는 이 견보탑품에서 ‘허공회(虛空會)의 의식(儀式)’을 시작해 멸후말법(滅後末法)을 위한 부촉(付囑) 의식이 엄숙하게 진행됩니다. 이 속에서 ‘차경난지’란 말법에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를 수지하는 일이 아주 어려우며 광선유포가 난사(難事)중 난사임을 밝히십니다.

시조깅고가 이 어서를 받기 한해 전인 1274 3, 대성인께서는 사도유죄에서 가마쿠라로 돌아와 세번째의 국주간효(國主勅曉)를 하십니다. 그리고 5월에는 미노부로 들어가 말법만년(末法萬年) 진미래제(盡未來際)에 대한 영법구주(令法久住)의 총마무리를 시작하십니다.

그러한 대성인의 대투쟁을 목격한 깅고는 깊은 결의에 서서 이해 9, 주군(主君) 에마 씨를 절복합니다. 그러나 에마 씨는 고쿠라쿠사 료칸<2>을 신봉했으므로 깅고는 주군으로부터 점차로 따돌림을 당하고 그 기회를 틈타 동료들은 과격하고 비열한 박해를 가했습니다.

‘다쓰노구치법난’에도 결사의 각오로 함께했던 강직한 시조깅고였으나 이 때만은 약한 소리를 할 정도로 당황스러움을 숨길 수 없었겠지요.

“법화경을 믿으면 ‘현세안온’이 된다고 듣고 신앙을 관철했는데 왜 ‘대난’이 비 오듯이 내리는가.

이러한 깅고의 의문을 벤아사리 닛쇼<3>에게서 들은 대성인께서 그 의심에 답하는 형식으로 쓰신 것이 이 어서입니다.

“당신이 말한 것은 진실인가. 아니면 닛쇼의 보고가 잘못된 것인가.”라는 말씀에도 깅고에 대한 배려가 느껴집니다. 어디까지나 깅고를 위해 지금이 바로 ‘차경난지’라는 말을 생명에 새기게 하겠다는 마음으로 이 편지를 쓰신 것이 아닐까요.

 

부처란 계속 투쟁하는 인간

 

인간은 자칫하면 ‘유사시’에 망설이게 됩니다. 범부라서 어쩔 수 없기도 하겠지요. 그러나 어떤 일이 있어도 신심만은 멈추면 안 됩니다. 성불(成佛)의 길을 닫으면 안 됩니다.

니치렌불법(日蓮佛法)에서 성불은 “자신의 생명에 본디 갖춘 부처의 경애를 용현(湧現)시켜,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절대적인 행복경애를 확립하는 것”입니다. 그를 위해서는 끊임없는 자신의 생명 연마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성불은 결코 결승점이 아니다. 어떠한 사태에도 뚫고 나아가는 용기와 지혜가 있는 사람이 부처입니다.

인간을 떠나서 부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부처에게도 소병소뇌(少病少惱)라고 하듯이 괴로움도 질병도 있습니다. 치열한 마()와의 투쟁도 있다.  그러나 어려운 환경을 더한층 비약하고 발전하는 기회로 받아들여, 끊임없이 전진하는 가운데 진정한 부처의 생명이 빛납니다. 왜냐하면 계속 투쟁하는 사람이 부처이기 때문입니다.

니치렌불법에서 성불은 그 부처의 경애를 우리 현실생활 속에 나타내는 가운데 있습니다. 또 그를 위한 신심의 실천입니다.

도다 선생님은 “쉼 없이 흘러가는 물과 같은 신심을 하라. 고인 물은 움직이지 않으므로 썩어 버린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나아가지 않음은 퇴전(退轉)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차경난지’라는 법화경의 경문 뒤에는 “이것이 즉 용맹(勇盟)이고 이것이 곧 정진(精進)이요.(법화경 394)라고 이어집니다.

‘용맹정진’은 법화경을 실천하는 근본의 혼()이고, 마음이 용맹과감(勇盟果敢)하고, 고난에 도전하며 힘을 다해 불도수행에 면려하는 일입니다.

신심은 항상 자신과 하는 싸움이며 고난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투쟁을 멈추면 안 됩니다. 아니 계속 투쟁하는 가운데 반드시 부처의 생명이 나타납니다. 결국 ‘차경난지’는 법화경을 지속하는 일의 어려움을 나타냄과 동시에 불법자(佛法者)로서 어떠한 고난도 투쟁하는 깊은 결의에 서기를 가르치십니다.

일찍이 초대 회장인 마키구치 쓰네사부로 선생님은 청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용맹정진하시라! 불법은 실행(實行)이요. 정진이요. 나도 노령(老齡)이지만 실천합니다.” 용감하게 도전하는 곳에 생명의 약동이 있고 지혜도 나옵니다. 거기에 환희가 있고 희망이 넘치게 됩니다.

용맹정진에 철저한 사람에게는 영원히 막힘이 없다. 용맹정진하는 사람이 바로 불법의 진수(眞隨)를 체득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실한 현세안온의 대경애(大境涯)

 

이어서, 어서에 설해진 ‘현세안온 후생선처’는 법화경 약초유품 제15의 경문으로 “현세안온하고, 후에 선처에 태어나도다.”라고 읽습니다.

이 ‘현세안온 후생선처’의 구절에 대해 대성인께서는 이 어서 이외에도 시조깅고에게 그 뜻을 반복하여 가르치십니다.

<시조깅고전답서(중생소유락어서>)에서는 “법화경을 수지해 받드는 이외에 유락(遊樂)은 없으며 현세안온 후생선처란 이것이니라.(어서 1143)라고 씌어 있습니다.

‘현세안온’은 아무런 난도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어떠한 난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고 묘법을 끝까지 수지하여 사자왕(師子王)처럼 용감히 투쟁하여 승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법화경을 수지하는 것이 진정한 ‘현세안온 후생선처’라고 말씀하십니다.

대성인 재세(在世) 시에 이 불법을 지속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웠던가.

대성인께서는 “나의 제자에게 조석(朝夕)으로 가르쳐 왔건만”(어서 234), 많은 제자는 실제로 법난(法難)에 직면하자 스승의 가르침을 잊고 겁을 내어 퇴전해 버렸다고 엄하게 말씀하십니다.

신앙에 목숨을 아끼지 않는 시조깅고조차도 현실의 복잡한 인간의 모습으로 신앙을 방해할 때 ‘현세안온’에 대한 확신이 흔들려 버립니다. 그러한 깅고에게 나타난 혹독한 현실의 갈등을 대성인께서 훤히 들여다보셨기 때문에 제자의 불안을 말끔히 씻어주기 위해 대확신과 자애로운 격려를 거듭하셨습니다.

시조깅고도 또한 그 스승의 말씀을 믿고, 성실하고 정직한 신심을 끝까지 실천하여 거듭되는 박해에도 마지막에는 승리하여 당당한 사제일체(師弟一體)의 영광스러운 실증을 나타낼 수 있었습니다.

 

<1> '차경난지는 석존 멸후의 홍교를 권한 삼개의 봉조(鳳詔: 칙선<勅宣>). 칙선의 제3의 글월에 있다. 여기서 석존은 멸후의 법화경 홍통의 서원을 세우도록 제자에게 촉구하고 "모든 선남자여, 내가 멸한 후에 누가 능히 이경을 수지하고 독송하겠느료. 지금 부처 앞에서 맹세의 말을 하라. 이 경을 지니기 어려우니 만약 잠시라도 지닌다면 나는 곧 기뻐하며 제불(諸佛) 또한 그러하리니, 이와 같은 사람은 제불이 찬탄하는 바이니라. 이것이 곧 용맹이고 이것이 곧 정진이요."(법화경 393)라고 씌어 있다.

 

<2> 고쿠라쿠사 료칸 : 1217~1303. 진언을종(사이다이사류 율종)의 승. 료칸보닌쇼를 말함. 1267년 가마쿠라의 고쿠라쿠사에 들어갔으므로 고쿠라쿠사 료칸이라고도 부른다. 권력에 아첨하여 갖가지 이권을 장악하는 한편 니치렌대성인을 적대시하고 대성인과 수많은 박해의 흑막이 되었다.

 

<3> 벤아사리 닛쇼: 니치렌대성인 재세 당시의 제자. 육노승 중 한 사람. 대성인 멸후에 박해를 두려워하여 천태사문이라 지칭하고 대성인과 닛코상인을 위배했다.

 

 

 

 

<본문> (시조깅고전답서 11363 ~ 5)

 

법화경의 문()에 난신난해(難信難解)라고 설하심은 이것이니라. 이 경을 듣고 받는 사람은 많지만 진실로 듣고 받은 바와 같이 대난(大難)이 오더라도 억지불망(憶持不忘)하는 사람은 드무니라. 받기는 쉽고 가지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성불(成佛)은 가지는데 있으며, 이 경을 수지하는 사람은 난을 만난다고 심득(心得)해서 갖는 것이니라. 즉위질득(則爲疾得) 무상불도(無上佛道)는 의심없느니라.

 

 

<현대어역>

법화경의 경문에 “법화경은 믿기 어렵고, 이해하기도 어렵다. 난신난해(難信難解)(법사품 제10)라고 설해진 것은 바로 이것이다. 이 법화경을 듣고 받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듣고 받은 대로 실제로 대난이 왔을 때 그래도 법화경을 마음에 새겨 지니고 잊지 않는 사람(억지불망의 사람)은 드물다. ‘받기’는 쉽고 ‘가지는’ 것은 어렵다. 그러므로 성불은 지속하는 데 있다. 이 법화경을 수지한 사람은 반드시 난은 만난다는 것을 알고 지녀야 한다. ‘곧 빠르게 무상(無上)의 불도(佛道)를 득함’이란 의심할 바 없다.

 

억지불망의 사람을 찬탄

 

법화경은 부처의 진의(眞意)를 있는 그대로 설한 수자의(隨自意)<4>의 가르침입니다. ‘난신난해’(믿기 어렵고 이해하기 어렵다)이고 법화경을 홍통(弘通)하면 경문에 설한 대로 갖가지 반발과 박해를 받는 것도 틀림없습니다.

대난은 현인(賢人), 성인(聖人)도 피할 수 없습니다. 하물며 아직 듣지 못한 종교혁명이라면 비난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이 원리를 알아도 막상 난을 만나면 동요하기 쉽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대성인께서는 대난이 오더라도 억지불망의 사람은 드무니라.”(어서 1136) 하고 엄애의 지도를 하십니다. ‘억지불망은 항상 마음에 담아 잊지 않고 마음속에 새기고 기억하고 잊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법화경의 결경(結經)인 보현경(관보현보살행법경)에는 심법(深法)을 설하는 것을 듣고 그 올바른 뜻을 이해하고 기억하여 잊지 아니하느니라. 나날이 이와 같이 하여 그 마음은 점차로 이로워지느니라.”(법화경 692)라고 씌어 있습니다.

차경난지’, ‘억지불망을 잊지 않는다면 신심의 깊은 뜻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필요할 때에 신심을 굳게 지니고 잊지 않는 사람이 바로 인생의 영웅이고 승자입니다.

지금 수 많은 신입회원이 탄생하여 기쁨에 넘친 입회기념근행회가 각지에서 개최되고 있습니다. 그때 자주 확인되는 어서(御書)받기는 쉽고 가지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성불은 가지는데 있으며입니다.

여기서는 말법(末法)에 불도수행의 근본인 수지(受持)’에 대해서 특히 ()’()’로 나누어 설합니다.

어본존을 신수(信受)하고 신앙을 지속하며 한평생 신심을 관철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대성인께서는 제자와 문하(門下)에게 어서 여러 곳에서 신심을 관철하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하십니다.

시중종(始中終) 버리지 않고 대난을 이겨나가는 사람은 여래(如來)의 사자(使者)이니라.”(어서 1181). “법화경의 신심을 관철하시라.”(어서 1117)

이겨나간다’ ‘관철한다라는 말에서 일관되게 변하지 않는 신심의 자세를 중히 여기신 대성인의 마음이 엿보입니다. 이 어서에서 말하면 성불은 가지는데 있으며라는 말씀입니다. ‘가진다는 다투어 일어나는 난과 싸우며 부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능동적인 자세입니다.

신심을 관철하고’ ‘지속하는 데에는 끊임없는 정신투쟁이 필요합니다. 다만 막연하게 신앙하는 것만으로는 밀어닥치는 대난 앞에 패배합니다.

삼장사마(三障四魔)’<5>가 다투어 일어날 때 그에 맞서느냐, 지느냐. 신앙에 대한 비난과 박해 그리고 숙업(宿業) 등 자신을 둘러 싼 환경에 패배하느냐, 맞서 싸우느냐는 일체가 자신의 마음으로 결정됩니다.

장마(障魔)가 시험하는 것은 우리 신앙의 강함과 깊이입니다.

항상 자신의 마음을 갈고 닦아서, 전부 내 생명의 변혁에서 시작된다고 다짐하여 승리할 때까지 투쟁하는 서원(誓願)을 세워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신심입니다.

 

'()이 옴으로써 안락(安樂)'

 

<어의구전>에 “원품(元品)의 무명(無明)을 대치(對治)하는 이검(利劍)은 신()의 일자(一字)이니라. 무의왈신(無疑曰信)의 석()을 생각할지어다.(어서 751)라고 있습니다.<6>

신심을 항상 분기시키는 속에 성훈(聖訓)대로 관철하는’ ‘가지는실천이 성취 됩니다.

바로 월월(月月)·일일(日日) 강성해지시라. 조금이라도 해이한 마음이 있다면 마가 틈탈 것이니라.”(어서 1190)라는 구절은 내 제자를 절대로 퇴전시킬 수 없다.” “모두를 승리한 사람,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고 싶다.”는 대자대비(大慈大悲)의 염원이 담겨진 것으로 배견됩니다.

그리고 반드시 난을 만난다는 것을 알고, 수지해야 한다.” “그 속에서 빠르게 무상(無上)의 불도(佛道)를 득할 수 있다.”라는 말씀은 신앙의 근간을 가르치십니다.

난이 옴을 가지고 안락이라고 알아야 하느니라.”(어서 750)라는 말씀대로 광선유포에 끝까지 살아가는 신심을 가르쳐 주신 분이 선사(先師) 마키구치(牧口) 선생님이고 은사(恩師) 도다 선생님입니다.

이 두 선생님의 불석신명(不惜身命)의 실천에 뒤를 이어 제자인 자신도 광포의 대도(大道)를 끝까지 살아가려는 서원과 행동 속에 성불은 가지는데 있느니라.”라는 말씀을 실현할 수 있습니다.

대성인께서 말씀하신 드무니라를 초창기 이래의 역사를 통해 수 많은 회원이 실현해 왔습니다. 그것이 창가학회의 신심입니다.

틀림없이 한 사람 한 사람이 영원히 빛나는 소원만족의 인생을 승리로 장식할 것입니다.

 

<4> 수자의(隨自意): "자신의 마음에 따르다" 라고 읽으며, 중생의 기근에 관계없이 부처 자신의 내증(內證)의 깨달음을 그대로 성해 밝히는 것. 법화경이 이에 해당한다. 이에 반해 부처가 중생의 기근이나 기호에 따라 설법하여 진실한 불법으로 유인하는 것이 '수타의(隨他意)'이다.

 

<5> 삼장사마(三障四魔) : 불도수행을 방해하는 세 가지 장애와 네 가지 마를 말한다. 삼장은 번뇌장(煩惱障)  업장(業障)  보장(報障)을 말하며, 사마는 번뇌마(煩惱魔)  음마(陰魔)  사마(死魔)  천자마(天子魔)를 말한다.

 

<6> '생명의 근본 미혹을 대치하는 이검은 신의 일자이다"(법화문구) '의심 없음을 신이라고 한다.'라는 해석을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통해) '원품의 무명은 생명의 근원적인 무지나 미혹으로 묘법을 믿지 소하고 이해할 수 없는 어리석음. 이 불행의 근본 원인을 끊는 것은 의심 없이 묘법을 믿는 ''의 일자밖에 없다.

 

 

 

<본문> (시조깅고전답서 11366 ~ 8)

 

삼세(三世)의 제불(諸佛)의 대사(大事)인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를 염()함을 갖는다고 하느니라. 경에 가로되 “호지불소촉(護持佛所屬)”이라 하였느니라. 천태대사가 가로되 “신력(信力) 때문에 받고 염력(念力) 때문에 가짐” 운운(云云). 또 가로되 “이 경은 가지기 어렵도다, 만약 잠시라도 가지는 자는 내가 바로 환희(歡喜)하노라. 제불(諸佛)도 또한 그러하니라.” 운운

 

 

<현대어역>

삼세 제불의 대사인 남묘호렌게쿄를 부르는 것을 ‘갖는다’고 한다.

법화경에는 “부처가 부촉하신 ‘법’을 호지한다(호지불소촉)(권지품 제13)라고 설해졌다. 천태대사는 “믿는 힘 때문에 받고 염하는 힘 때문에 가진다.(법화문구 제8)고 말한다. 또 “법화경은 가지기 어렵다. 만약 잠시라도 가진다면 나(석존)는 반드시 환희한다. 제불도 또한 마찬가지다.(견보탑품 제11)라고 설한다.

 

사회에 신념을 지닌 사람을

 

대성인께서는 이어서 삼세 제불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남묘호렌게쿄를 염하는 것을 갖는다고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갖는이 묘법이 얼마나 심원(深遠)한가. 삼세의 모든 부처가 수행의 근본으로 삼은 성불의 법이 남묘호렌게쿄이고 이 일법(一法)이 바로 우리가 가져야 할 법임을 밝히십니다.

이 남묘호렌게쿄를 수지하는 수행은 신력(信力)’으로 받고 염력(念力)’으로 가지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기억하는 것’ ‘잊지 않는 것입니다. 자신이 스승에게 약속한 서원을 관철한다. 그것이 가진다는 최대의 힘으로 됩니다.

그리고 차경난지라고 터득하고 불법을 가진 자가 틀림없이 부처에게 최대로 상찬 받고, 큰 공덕을 받습니다.

도다 선생님은 일찍이 사회에 신념의 사람으로라는 제목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확실히 완벽한 것처럼 보이지만 어쩐지 부족한 일본, 어딘지 모르게 밑바닥이 얄팍한 일본, 그 속이 텅 빈, 공허함은 어떻게 타파할까.”

원인은 사람에게 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생기발랄하고 넘칠듯한 생명력으로 빛나야 합니다. ‘신념은 지닌 시람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를 위해서는 올바른 종교로써 생명력을 강하게 하는 수 밖에 없다.” 이것이 도다 선생님의 가르침이고 행동이었습니다.

또 이렇게도 자주 말씀하셨다.

어본존을 믿고 인생을 꿋꿋이 살아가라! 이것이 전부다. 아무리 불평을 늘어 놓아도, 사소한 일에 끙끙대도 어찌할 수 없지 않는가. 어본존에게 제목을 부르고 자기 환경에서 자기 처지에서 꿋꿋이 살아가라.”

어디까지나 신심근본으로 끝까지 살아가는 사람이 승리의 인생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결국 어려움이라는 것은 아무리 도망쳐도 피할 수 없습니다. 같은 삶이라면 , 무엇이라도 덤벼라하고 기세 좋게 강한 생명력으로 즐겁고 유유하게 맞서 싸우는 것이 상쾌하고 가치적입니다.

학회에는 말할 수 없는 고뇌와 비탄에 굴하지 않고 늠름하게 극복하여 쾌활하게 끝까지 투쟁하는 모습을 긍지로 삼으며 남에게 보여가는 신심의 영웅인 무명의 서민이 무수히 존재합니다.

매우 힘들어도 밝다, 어려울텐데 활기차게 전진한다, 결심하고 대경애로 일체를 안고 간다, 자타(自他) 함께 행복을 실현하고 자타 함께 숙명전환을 목표로 나날이 동분서주하는 학회원의 모습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용기와 희망과 확신을 주고 있습니까. 후세(後世)의 민중(民衆史)에 엄연히 새겨질 위대한 영웅들임에 틀림없습니다.

 

 

 

<본문> (시조깅고전답서 11368 ~ 11)

 

불에 장작을 가()할 때는 성()하니라. 대풍(大風)이 불면 구라(求羅)는 배증(倍增)함이라. 소나무는 만년(萬年)의 수명을 갖는 고로 가지가 구부러뜨려진다. 법화경의 행자(行者)는 불과 구라와 같으며 장작과 바람은 대난과 같다. 법화경의 행자는 구원장수(久遠長壽)의 여래(如來)니라. 수행(修行)의 가지를 잘리고 구부러뜨려지는 것은 의심이 없느니라. 이 이후는 차경난지의 사자(四字)를 잠시도 잊지 않고 생각 하실지어다.

 

 

<현대어역>

불에 장작을 더할 때에는 불은 활활 탄다. 큰 바람이 불면 구라는 점점 커진다. 소나무는 만년의 수령(樹齡)을 지니므로 가지가 구부러뜨려진다. 법화경 행자는 불과 구라와 같고 장작과 바람은 대난과 같다. 법화경 행자는 구원장수의 여래이다. (소나무의 비유처럼) 수행의 가지를 잘리고 구부러뜨려지는 것은 의심할 바가 없다.

이 뒤로는 ‘차경난지’의 네 글자를 잠시도 잊지 말고 마음에 새겨 나아가세요.

 

대난이 신심을 강하게 한다

 

끝으로 대성인께서는 난에 도전하는 우리의 자세는 어떻게 해야 할까를 비유를 들어, 또는 도리(道理) 상으로 밝히십니다.

불속에 장작을 넣으면 불은 더 세게 타오르고 기세를 더합니다. 구라는 불전(佛典)에 나오는 상상의 생물이지만 바람이 불수록 성장해 몸이 커진다고 합니다. 여기서는 물과 구라를 법화경 신앙자로서 우리 신심에 비유하고, 장작과 바람을 신심에 맞서는 난에 비유합니다. 다시 말해 불에 장작은 더하면 한층 세차게 타오르고, 구라가 대풍을 만나 점점 커지듯이 우리도 대난을 만날수록 신심의 불길을 태워, 더욱 강하고 늠름하게 성장해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법화경 행자는 구원장수의 여래니라. 수행의 가지를 잘리고 구부러뜨려지는 것은 의심이 없느니라.”는 묘법을 실천하는 사람은 구원의 묘법을 내 생명으로 함으로써 구원장수의 여래가 될 수 있다. 그렇게 되기 위한 수행이므로 치열한 난이 다투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하다는 말씀입니다.

법화경 행자에게 난이 일어나는 것은 구원장수의 여래의 경애를 얻는 것 즉 성불이라는 위대한 목적을 위한 수행이기 때문입니다. 소나무가 오랜 세월 풍설(風雪)에 단련되어, 가지가 구부러뜨려지면서 오히려 가지가 보기 좋게 뻗어 가듯이 역경을 승리의 원천으로 함으로써 성불의 대경애를 얻을 수 있다고 대성인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어떤 장마가 다투어 일어나도, 고난이 있더라도 지지 않고 신심에 면려하면 더욱 위광세력(威光勢力)을 증가시키고 복운을 증대하게 됩니다. ‘구원장수입니다. 우리가 고뇌를 빠져 나왔을 때 위대한 경애혁명을 한 자신을 깨닫게 됩니다. 광선유포라는 장대한 목적을 향해 사제일체로 영원히 계속 투쟁하는 경애야말로 구원장수의 여래의 생명입니다. 말하자면 무너지지 않는 행복경애의 확립입니다.

그러므로 대성인께서 말씀하신 차경난지라는 네 글자를 잠시도 잊지 않고 가슴에 새기고 대난이 오면 강성한 신심은 더욱더 기뻐하느니라.”(어서 1448)라는 성훈대로 용감하게 전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브라질 SGI가 발전한 원인

 

고난을 극복한 끝에 화려하고 커다란 승리가 열린다.” 이 말을 몸으로 보여준 분들이 브라질SGI의 동지입니다. 지금부터 30년 전인 1984 2, 나는 세번째로 브라질을 방문했습니다.

10년 전인 1974 3, 나는 방문지인 미국에서 상파울루문화제에 갈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군사정권에 의해 비자가 발급되지 않아 브라질에 입국할 수 없었습니다. 브라질 동지들의 마음을 생각하면 내 마음은 찢어질듯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전화로 브라질 리더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괴롭지요. 슬프지요. 분하지요…. 그러나 이것도 전부 불의(佛意)입니다. 뭔가 분명 커다란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브라질은 지금이야말로 일어나서 이것을 대발전, 대비약의 인()으로 만들어 대전진을 개시해야 합니다. 또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 신심의 일념(一念)입니다. 긴 안목으로 보면 고생한 곳, 괴로움에 허덕인 곳은 반드시 강해집니다. 그것이 불법의 원리입니다.”

브라질의 동지는 그때부터 좋아! 브라질의 국토를 변혁시킬 만한 제목을 끝까지 부르자! ‘무이도 마이스 다이모쿠(더 많은 제목을)’를 구호로 전진했습니다.

다음해 1975 4월에는 수도 브라질리아의 탄생 15주년을 축하하는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브라질리아 연방구의 요청으로 문화제를 개최했습니다. 그 상황이 지방지에도 우리나라가 자랑하는 문화단체라고 크게 보도되어 사회가 보는 눈도 점점 변했습니다. 그리고 맞이한 1984 2월 군정(軍政)에서 민정(民政)으로 길을 연 피게이레두 대통령의 초청으로 18년 만에 세번째 방문이 실현되었습니다. 브라질 멤버는 평화를 위해, 인간의 행복을 위해 나날이 행동하고 시화발전에 공헌했습니다. 위대한 승리의 실증을 보였습니다.

1984 2 25, 26일 나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벗들이 춤추는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1 SGI브라질대문화제의 리허설 때는 장내(場內)를 한바퀴 돌았습니다. 본무대도 감동의 소용돌이였습니다.

장내에 올려 퍼진 피게! 피게!”(승리의 함성에 해당하는 말)의 큰 환호성은 지금도 귀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브라질은 실로 세계평화의 왕자(王者)로서 크게 발전했습니다.

 

‘사제직결(師弟直結)’의 승리의 궤적(軌跡)

 

이 어서를 받은 시조깅고의 고난은 그 뒤 수년에 걸쳐 이어졌으나 항상 대성인께 지도를 받고 훌륭히 극복했습니다. 그리고 주군을 성실하게 간병한 일로 신뢰를 회복하여 1278 10월에는 소령(所領)도 증가되는 대승리의 실증을 보였습니다.<7>

시조깅고는 대성인께 직결(直結)했기에 신심을 관철하고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신심은 끊임없는 마와의 투쟁입니다.

신심은 막다른 곳과의 싸움입니다.

신심은 체념하지 않는 용기입니다.

신심은 고난에 대항하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신심은 성훈(聖訓)을 용감히 실천하는 사제불이(師弟不二)의 마음입니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어본불(御本佛)의 말씀을 마음에 새겨 불퇴(不退)의 용자(勇者)로서 공전(共戰)의 스크럼도 단단히 하여 세계광포의 신시대를 전진합시다.

 

<7> 홍안원년. 10월의 (시조깅고전답서)에는 "소령을 주군으로부터 받으셨다는 것은 정말이라고도 생각되지 않으며 꿈인가 하고 너무나 불가사의하게 생각되어서"(어서 183)라고 기뻐하며 "명심하고 명심하여, 더욱더 도심견고히 해서 이번에 부처가 되시라."(어서 184) 하고 말씀하신다.

 

〈시조깅고전답서_차경난지어서〉 강의 끝.

-법련 2014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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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다사랑 | 작성시간 14.04.16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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