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연코 이겨라!
스승은 승리를 기다린다!
“생명을 행복으로 향하게 하는 부처의 거처(居處)로 할 것인지, 반대로 불행으로 향하게 하는 마(魔)가 사는 곳으로 할 것인지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한다. 자진해서 마의 준동을 몰아내고 마를 퇴치해야 비로소 행복과 광선유포가 있다.”
6월은 창가(創價)의 아버지 마키구치 쓰네사부로(牧口常三郞) 초대 회장이 탄생하신 달입니다.
마키구치 선생님께서는 마에 맞서 싸우는 속에 일생성불과 광선유포의 신심이 있음을 몸소 투쟁하는 모습으로 가르쳐주셨습니다.
1938년, 거의 매달 마키구치 선생님에게 격려와 지도가 담긴 편지를 받은 어느 청년교사가 이렇게 술회했습니다.
“세 번에 한 번은 ‘행해(行解)를 기이(旣已) 힘쓰면 삼장사마(三障四魔)가 분연히 다투어 일어난다….’고 써서 보내주셨습니다.”
마키구치 선생님은 끊임없이 이 청년뿐 아니라 회원에게 삼장사마와 끝까지 싸우는 신심을 강조하셨습니다. 마와 싸우는 신심이 바로 니치렌 대성인 불법의 진수이기 때문입니다.
창가학회는 이렇듯 장마(障魔)를 물리치는 마키구치 선생님의 실천을 원류로 하여 이제껏 니치렌 대성인 불법을 올바르게 끝까지 여설수행(如說修行)하고 있습니다.
마키구치 선생님의 분신인 제자 도다 조세이 선생님도 시종일관 모든 마와 끝까지 싸우는 파사현정(破邪顯正)의 지휘를 하셨습니다.
감옥에서 나오신 도다 선생님은 마키구치 선생님을 옥사(獄死)에 이르게 한 권력의 마성(魔性)에 승리할 것을 맹세하고, ‘묘법(妙法)의 암굴왕(巖窟王)’이 되어 감연히 광선의 깃발을 홀로 내걸으셨습니다.
그 스승을 지킨 사람은 나입니다. 이윽고 사제(師弟)가 삼장사마의 열풍(烈風)을 물리치고, 도다 선생님이 제 2대 회장에 취임하셨습니다.
이 지상에서 비참과 불행을 근절하고자 빈곤, 증오, 폭력에 따른 고뇌를 해결하기 위해 인간의 근원악(根源惡)인 무명(無明)을 물리치는 전대미문의 종교혁명을 개시하셨습니다.
그리고 용감히 마군(魔軍)에 정면으로 맞서는 75만이라는 지용의 진열을 불러내고, 삼류(三類)의 강적(强敵)을 물리치며 ‘입정안국(立正安國)’
의 요새를 완벽히 구축하셨습니다.
또 ‘원수폭 금지선언’을 비롯해, 인류의 마성을 근절하는 치열한 투쟁도 전개하셨습니다.
그리고 종문에 둥지를 튼 사악과 끝까지 싸우고, 인간정신의 ‘일흉(一凶)’이 되는 모든 마성에 추격의 손을 늦추지 말라는 유명(遺命)을 제자에게 마지막으로 지도하셨습니다.
참으로 ‘마에 맞선 싸움’이 대성인의 성훈대로 초대, 제2대, 제3대의 투쟁을 일관하는 학회지도의 골수입니다.
현재도 그리고 미래도 이 신심을 계승하면 광선유포를 반드시 실현할 수 있습니다. 그 방정식을 가르치신 어서가 지금 배우는 <형제초>입니다.
이번에는 ‘삼장사마에 맞서는 투쟁’ ‘이체동심(異體同心)’ ‘사제불이(師弟不二) 신심’을 연찬하겠습니다.
◇
본문 (형제초 1087쪽 10행~18행)
그러므로 천태대사(天台大師)의 마하지관이라고 하는 글은 천태 일기(一期)의 대사(大事)이고 일대성교(一代聖敎)의 간심(肝心)이니라. (중략)
더욱이 마하지관의 제오권의 일념삼천(一念三千)은 한층 더 깊이 들어간 법문(法門)이니라. 이 법문을 말하면 반드시 마(魔)가 출래(出來)하느니라. 마가 다투어 일어나지 않으면 정법(正法)이라고 알지 말지어다.
제오권에 가로되 “행해(行解)를 기위(旣爲) 힘쓰면 삼장사마(三障四魔)가 분연히 다투어 일어난다. 내지 따르지 말지며 두려워 말지어다. 이에 따르면 바야흐로 사람으로 하여금 악도(惡道)에 향하게 하고 이를 두려워하면 정법(正法)의 수행(修行)을 방해하느니라.” 등 운운.
이 석(釋)은 니치렌(日蓮) 자신에게 해당될 뿐만 아니라, 문가(門家)의 명경(明鏡)이니 삼가 배우고 전(傳)하여 미래의 자량(資糧)으로 삼을지어다.
<현대어역>
그런대 천태대사의 <마하지관>이라는 글은 천태의 생애에 걸친 중대사며, 석존 일대의 중요한 가르침을 서술한 것이다. (중략)
<마하지관> 제5권에서 설하는 일념삼천의 법문은 더한층 깊이 파고든 법문이다. 이 법문을 설할 때는 반드시 마가 나타난다. 마가 다투어 일어나지 않으면 정법이라고 알 수 없다.
<마하지관> 제5권에는 “불법을 수행함에 따라 이해를 깊게 하면 삼장사마가 분연히 다투어 일어난다. 그러나 이 삼장사마를 결코 따르면 안 된다. 두려워하면 안 된다. 이 삼장사마를 따르면 사람을 반드시 악도로 향하게 만든다. 이를 두려워하면 정법 수행을 방해한다.”고 씌어 있다.
이 <마하지관>의 석(釋)은 니치렌의 몸에 해당될 뿐 아니라 우리 일문의 명경(明鏡)이다. 삼가배우고 전해 미래에 걸친 양식으로 삼아야 한다.
‘문가의 명경’ ‘미래의 자량(資糧)’
대성인께서는 대난에 직면한 이케가미 형제에게 주는 <형제초>를 끝맺으며, 삼장사마가 출현한다고 설하는 <마하지관(摩訶止觀)>의 글월을 통해 단연코 마에 패하면 안 된다고 지도하셨습니다.
지금까지 대성인께서는 <형제초>에서 법화경의 신앙을 수지한 사람에게 왜 난이 다투어 일어나는지 여러 각도에서 상세히 서술하셨습니다.
그것을 전제로 거듭 신심은 ‘삼장사마’에 맞서는 싸움임을 확인하셨습니다.
먼저 대성인께서는 천태대사의 <마하지관> 제5권을 들어 ‘일념삼천(一念三千)의 법문(法門)’이 불교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밝히셨습니다.
‘일념삼천’은 만인성불을 밝히는 법화경 사상의 진수를 관심(觀心)이라는 생명변혁의 실천지표로 표현한 법리(法理)입니다.
천태대사는 <마하지관> 제5권 ‘정수지관(正修止觀)’의 장(章) 서두에서 드디어 불법의 궁극적 법리인 일념삼천 법문을 설해 밝히기에 앞서, 먼저 삼장사마를 두려워하며 퇴전하면 안 된다고 경종을 울렸습니다.
대성인께서는 이 점에 날카롭게 주목하셨습니다.
즉 “이 법문을 말하면 반드시 마(魔)가 출래(出來)하느니라. 마가 다투어 일어나지 않으면 정법(正法)이라고 알지 말지어다.”라는 말씀처럼, 올바른 불법을 실천하면 반드시 마가 나타난다는 확신과 각오로 감연히 마를 물리치고 생명을 변혁해야 한다는 진지한 승부의 지표를 설하셨습니다.
먼저 “행해를 기위 힘쓰면”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경전을 더욱 깊이 이해하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한 수행을 갖췄을 때’라는 뜻입니다. 즉 드디어 생명을 변혁하고자 본격적인 수행에 들어가는 때이므로 삼장사마가 다투어 일어납니다.
우리 신앙으로 말하면 ‘행학(行學)의 이도(二道)’에 힘쓰고, ‘드디어 전진’을 할 때 반드시 삼장사마가 다투어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대성인께서는 범부에서 부처가 되는 갈림길에 섰을 때 삼장사마가 일어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음은 삼장사마가 “분연히 다투어 일어난다.”고 있습니다.
‘분연’은 뒤섞여서 어지러운 모습을 뜻합니다. 참으로 “분연히 다투어 일어난다.”는 삼장사마가 뒤섞여서 다투듯 나오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삼장사마는 허를 찌르고, 두려움이 들게 하며, 유혹하고, 싫증나게 하며, 피곤하게 만들고, 방심하게 만드는 등 분연히 책동합니다.
천태대사는 이 삼장사마에 정면으로 맞서는 신심의 핵심을 명쾌하게 두 가지로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따르지 말지며” 그리고 “두려워 말지어다.”입니다.
마를 따르면 그 사람은 악도(惡道)로 떨어집니다. 마를 두려워하면 정법 수행을 방해합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지혜’와 ‘용기’가 승리의 근간입니다. 마를 따르지 않고, 마를 마라고 간파하는 ‘지혜’ 그리고 마를 두려워하지 않고, 마에 단호히 정면으로 대항하는 ‘용기’입니다.
요컨대 남묘호렌게쿄의 창제행이 마를 부수는 ‘지혜’와 ‘용기’의 원천입니다. 왜냐하면 묘법의 역용(力用)이 ‘무명’을 즉 ‘법성’으로 바꾸고, “난이 옴을 가지고 안락”(어서 750쪽)이라는 경애를 열기 때문입니다.
대성인께서는 다른 어서에서 삼장사마가 나온다는 이 ‘지관’의 글월을 인용하시고 나서, 바로 다음에 나오는 “멧돼지가 금산(金山)을 비비고 중류(衆流)가 바다로 들어가며, 장작이 불을 더욱 돋우고 바람은 구라(求羅)를 크게 함과 같다.”는 구절도 함께 인용하셨습니다.(어서 916쪽)
삼장사마와 싸우면 신심이 연마됩니다. 그것은 마치 황금산이 더욱 빛나고, 큰 바다가 더욱 풍요로워지며, 불이 더욱 활활 타오르고, 구라가 더욱 커지는 것과 같습니다.
법화경에 대한 이 강성한 신심이 바로 변독위약(變毒爲藥)의 묘용(妙用)을 낳습니다. ‘재앙’을 ‘행복’으로 바꿉니다.
대성인께서는 “법화경의 행자는 불과 구라와 같으며 장작과 바람은 대난과 같다.”(어서 1136쪽), “대난이 오면 강성한 신심은 더욱더 기뻐하느니라.”(어서 1448쪽)고 말씀하셨습니다.
대난은 법화경 행자의 생명을 강하게 합니다. 대난에 용감하게 정면으로 맞서야 비로소 불계 생명이 더욱더 빛납니다.
대성인께서는 이 ‘난즉성불’의 궤도를 밝히고, 이케가미 형제에게 끝까지 싸우는 각오를 촉구하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삼장사마와 싸우고, 완전히 승리하는 궤도는 스승이신 어본불 니치렌 대성인께서 몸소 걸으신 길입니다. 참으로 “니치렌 자신에게 해당”하는 실천입니다.
그리고 이케가미 형제에게 스승의 뒤를 이어 같은 영광의 대도를 걸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니치렌 자신에게 해당될 뿐만 아니라, 문가(門家)의 명경(明鏡)이니”라는 말씀입니다.
또 이케가미 형제가 실천하고 승리한 모습이 뒤를 잇는 문하들의 미래 영원한 본보기가 됩니다. 그러므로 “삼가 배우고 전하여 미래의 자량으로 삼을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도 마키구치 선생님, 도다 선생님에게 배운 ‘마와 싸우는 신심’을 삼가 배우고 전해 창가학회가 만대에 걸쳐 발전하는 인(因)을 지금 바로 구축하지 않으시겠습니까.
◇
<본문> (형제초 1088쪽 15행~16행)
마음의 스승이 될지언정 마음을 스승으로 삼지 말라 함은 육파라밀경(六波羅蜜經)의 문(文)이니라.
설사(說使) 어떠한 괴로운 일이 있을지라도 꿈으로 돌리고 다만 법화경(法華經)의 일만을 사색(思索)하시라.
<현대어역>
“마음의 스승은 되어도 자기 마음을 스승으로 삼으면 안 된다.” 이것은 육바라밀경에 나오는 경문이다.
설령 마음을 괴롭히는 어떤 일이 있을지라도 꿈이라 여기고, 단지 법화경의 일에만 전념하기 바란다.
‘마음만이 중요’라는 승리의 인생을
“마음만이 중요”(어서 1192쪽)합니다. “마음이야말로 소중”(어서 1316쪽)합니다.
‘마음’에는 생명에 더할 나위 없는 존극성을 여는 힘이 있습니다. 한편 무명에 동요해 타락하는 것 역시 ‘마음’입니다. 따라서 모든 일의 근간은 ‘마음’을 변혁하는 일입니다.
그때 범부가 동요하는 자신의 ‘마음’을 기준으로 삼으면 삼장사마라는 열풍(熱風)이 부는 험준한 산등성이를 오르지 못합니다.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 성불이라는 정상을 응시하며 ‘마음의 스승’을 끝까지 구도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마음의 스승은 될지언정 마음을 스승으로 삼지 말라.”는 구절입니다.
‘마음의 스승’ 다시 말해 단연코 동요하지 않는 부동(不動)의 근거는 ‘법’뿐입니다.
그러므로 ‘법’을 깨닫고 홍통하는 부처가 설해 남긴 ‘경전’이 중요합니다. 우리로 말하면 ‘어본존근본’ ‘어서근본’의 자세가 ‘마음의 스승’을 구도하는 일이 됩니다.
그리고 ‘법’과 우리를 연결하는 것이 불법을 실천하는 ‘스승’이라는 존재입니다.
자기중심의 만심이 아니라 사제불이라는 구도의 신심을 끝까지 관철하는 일이 다름 아닌 ‘마음의 스승’을 구도하는 삶의 자세입니다.
그리고 어디까지나 ‘마음의 스승’ 다시 말해 ‘법’을 근본으로 한 삶을 관철해야 한다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설령 아무리 마음을 번잡스럽게 하는 일이 생겨도 꿈이라 생각하고 오직 법화경에만 전념하세요.”
어떤 현상도 영원이라는 장대한 규모에서 보면 모두 한 때의 꿈과 같습니다. ‘법’은 영원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삼장사마에 패해서 ‘법’에서 멀어지면 영원히 후회를 남깁니다.
오직 “법화경의 일만”, 오직 광선유포를 응시하며 영원한 승리를 위해 신앙을 관철하라는 말씀입니다.
현대에 “다만 법화경의 일만”이라는 ‘마음의 스승’을 구도하는 삶의 자세를 견실하게 걸어 온 학회원은 모두 훌륭하게 승리의 실증을 나타냈습니다.
일본과 세계 모든 곳에 신심의 수많은 서민영웅이 계십니다. 그런 여러분이 바로 ‘광선유포의 보배’입니다. 또 ‘인류의 보배’입니다.
‘법’을 근간으로 또 투철한 ‘사제불이’로 자기 숙명을 전환하고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행복한 경애를 확립하시고 있습니다.
동시에 사회번영과 세계평화를 위해 있는 힘을 다하고, 자타(自他) 함께 행복 실현이라는 무상(無上)의 인생을 걸으셨습니다.
보배 같은 이 학회원을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 지성도 찬탄하는 시대에 들어섰습니다.
☞ 승리의 경전 ‘어서’에서 배운다 (4) 형제초(하) 에서
☞ 승리의 경전 ‘어서’에서 배운다 (4) 형제초(하) 全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