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명하는 혼 (이케다 SGI 회장 대담록) 제8회
아프리카 ‘녹색 대지의 어머니’ 왕가리 마타이 박사

2006년 2월 17일, 소카대학교를 찾은 마타이 박사가 학생들과 인사했다. 기념강연에서 “결의와 인내 그리고 지속으로 인생에서 늘 최선을 다하세요.” 하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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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즐겨야 한다!
“그렇게 멋지게 웃는 비결은 무엇인가요.”
이케다 SGI 회장이 묻자 해바라기 같은 ‘마타이 웃음’이 빛났다.
“인간은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면 자연히 웃게 됩니다. 저는 태양을 올려다보면 ‘태양도, 하늘도 우리를 보고 웃는다’고 느낍니다.”
케냐의 왕가리 마타이 박사는 아프리카에서 나무 4천만 그루를 심은 ‘그린벨트 운동’의 창시자다. 노벨상을 수상하고 두 달 뒤인 2005년 2월 18일, 박사가 이케다 SGI 회장을 만나려고 도쿄에 있는 세이쿄신문 본사를 찾았다.
박사가 웃는 얼굴로 청년에게 거는 기대를 말했다.
“‘무언가 바꾸고 싶다’면 먼저 ‘자신부터’ 바꿔야 합니다.”
“‘살아 있는 것은 멋진 체험’이기 때문에 그것을 즐겨야 합니다.”
이케다 SGI 회장도 크게 수긍했다.
“불법의 진수도 ‘살아 있는 것이 즐거운’ 자신을 만드는 점에 있습니다. 자신을 바꾼다, 그것이 바로 ‘인간혁명’의 철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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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다 SGI 회장이 “나중에 소카(創價)대학교와 미국소카대학교(SUA)를 방문해 주세요” 하고 말했다.
그리고 박사를 위해 소카대학교에는 벚나무를, 미국 소카대학교에는 무화과나무를 심자고 제안했다.
벚나무는 말하자면 ‘일본에서 보내는 진심’을 상징한다. 그리고 무화과나무는 박사가 나무 심기 운동을 시작한 원점 중 하나다.
기억은 20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박사는 케냐의 산림이 불과 몇 년 만에 크게 훼손된 모습에 깜짝 놀랐다. 정부가 산업용 경작지를 넓히려고 나무를 벌채했다.
여성들이 몇 세대에 걸쳐 ‘신성한 존재’로 소중히 여기던 고향의 ‘무화과나무’마저 무참히 잘라 버렸다.
산사태가 자주 일어났고 마실 물의 수원도 부족했다. 식량 생산이 줄어들어 빈곤에 허덕이는 원인이 되었다.
박사는 결단했다. 1977년 6월 5일, 무화과나무 등 일곱 그루를 심어 그린벨트 운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국민은 대부분 나무를 심는 일이 자신들의 생활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몰랐다. 박사는 끈기 있게 거듭 대화했다.
박사가 이렇게 물었다.
“여러분은 어떤 고민이 있나요?”
“그야 아주 많지요. 가난하고 병에 걸렸고 영양실조로 늘 배가 고파요.”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나요?”
그러자 예상대로 ‘정부의 책임’이라고 답했다.
확실히 억지로 토지를 개발한 배후에는 정부가 있었다. 그러나 박사는 정부가 나쁘다고 불평만 하면 상황을 개선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여러분의 땅입니다.”
“여러분 땅인데도 여러분은 소중히 여기지 않습니다. 땅이 침식되는 것을 보고만 있는데, 무언가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 까요.”
한 사람 또 한 사람, 자연을 지키는 ‘녹색 투사’가 탄생했다. 대부분이 서민 여성이었다.
나무 심기 운동에 동참하는 사람이 늘어나자 독재 정부는 점차 이 운동에 위협을 느꼈다. 권력자는 민중이 배우고 단결하는 일을 두려워한다. 동서고금에 통하는 탄압의 방정식이다.
박사에게 편견과 중상을 퍼부었다. 박사는 몇 번이나 체포당하고 투옥되었다. 몽둥이로 맞아 의식을 잃은 적도 있었다.
나무 심기 운동은 늘 경찰이 방해하거나 괴한의 습격을 당했다.
그러나 여성들은 힘으로 저항하는 대신 비폭력으로 맞서는 방법을 생각해 냈다.
그 중 하나가 ‘노래’였다. 숲에서 나무를 심으면서 함께 노래하고 춤을 췄다. 그러면 무장한 남자들은 삼엄한 얼굴도 부드러워지고 사나운 기분도 가라앉는다.
반면 여성들은 노래를 부르며 마음이 강해졌다.
“우리가 두렵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 일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올바른 일을 하고 있으며 신념을 바탕으로 일어섰기 때문입니다.”
그린벨트 운동은 단순히 나무를 심은 것이 아니었다. 학대를 받아 스스로 무력하다고 생각한 여성들에게 용기와 긍지를 심어 주고 민주주의와 평화 그리고 인권의 마음을 불어넣었다.
따라서 박사는 ‘인간혁명’의 철학을 세계로 넓혀 민중을 강하게 한 이케다 SGI 회장의 행동에 깊이 공명했다.
박사가 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여러분이 불교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한 깊은 가치관을 지닌 점에 감명했습니다.
여러분의 사상은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사상’입니다. ‘자연을 소중히 여기는 사상’이며 ‘인간의 생명과 사회를 소중히 여기는 사상’입니다.”
“이케다 SGI 회장은 일생을 걸고 몇백만이라는 사람들에게 소중한 가치관을 넓혔습니다. 저는 이 중요성을 이해하는 분들과 함께 이케다 SGI 회장에게 진심으로 커다란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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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에도 계속 교류했다.
박사는 ‘약속’을 지켜 2006년 2월, 소카대학교에서 강연했다. 케냐 그린벨트 운동의 사무소에 창가(創價)교육 동창생을 초대한 적도 있다.
제3대 회장 취임 50주년(2010년)에는 “‘행복’이라고 하면 SGI 분들이 떠오릅니다”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2011년 9월, 박사는 일흔한 살로 생을 마감했다. 너무도 빠른 이별을 세계가 슬퍼했다.
미국소카대학교는 방문할 수 없었지만 그해 탄생한 신 교실동을 훗날 ‘마타이동’이라고 명명했다. 오렌지군 캠퍼스에는 박사의 이름을 붙인 ‘무화과나무’가 쑥쑥 자라고 있다.
“미래는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미래는 바로 지금 이 순간에 탄생합니다. 장래 무언가를 이루고 싶다면 지금 행동해야만 합니다.”
박사가 이케다 SGI 회장에게 한 말이 청년을, 여성을, 이상에 나아가는 민중의 혼을 지금도 계속해서 고무하고 있다.
◆ 왕가리 마타이
1940년 4월, 케냐에서 태어나 2011년 9월에 서거했다. 미국 피츠버그대학교에서 석사학위, 케냐 나이로비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나이로비대학교의 첫 여성교수로 취임했다.
1977년, 비정부기구(NGO)의 ‘그린벨트 운동’을 설립했다. 주로 농촌 여성들과 협력해 일생 동안 나무 사천만 그루를 심었다. 자녀 셋을 키우는 한편, 이 운동으로 국민의 인권 의식을 계발하는데 힘쓰고 여성의 지위를 향상시켰다.
2002년 국회의원에 당선해 다음해 환경부대사에 취임했다. 2004년 아프리카 여성 중 처음으로 환경 분야에서 첫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2002년, SGI가 협력하고 지원해 제작한 환경영화 ‘조용한 혁명’에도 출연했다.
(2014.4.4)공명하는 혼 - (8) 아프리카 ‘녹색 대지의 어머니’ 왕가리 마타이 박사.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