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념의 억겁의 신로(辛勞)를 다한다’는 성훈의 의미를 잘 이해할 수 없습니다만….” - 수필. 인간세기의 빛 (14) ‘우리의 상승 간사이성(城)’ 에서
작성자다사랑작성시간14.06.07조회수1,003 목록 댓글 0
용기로 이겨라! 인재로 이겨라!
어느 날, 오사카에서 실시한 질문회 때다.
힘없이 손을 든 간부가 있었다.
“‘일념의 억겁의 신로(辛勞)를 다한다’는 성훈의 의미를 잘 이해할 수 없습니다만….”
<어의구전>의 심심(甚深)한, 한 구절에 대한 질문이다. 나는 힘차게 말했다.
“인간은 행복해지기 위해 이겨야 한다. 절대로 정의는 이겨야만 한다. 이겼을 때 비로소 행복이 있고 정의가 있다.
대성인이 ‘불법(佛法)은 승부를 우선으로 한다.’ 라고 지남하신 대로다.
그러므로 성훈대로 광선유포의 투쟁에서 이긴다. 인간혁명의 투쟁에 이긴다. 사회를 변혁하면서 이긴다.
자기 흉중의 일념에 그 무수한 신로를 다했을 때 비로소 인간 승리왕이 되고 부처의 경애를 회득(會得)할 수 있다.
즉 부처와 똑같은 경애가 되어 영원한 생명으로 이어지는 승리한 자신의 흉중의 생명을 감득(感得)할 수 있다.”
인재 육성도 이 신로를 다한 진지한 마음 없이는 결코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초조할 것 없다. 하지만 절대로 때를 놓치지 마라. 만남의 순간순간이 승부다.
자신이 얼마나 성실하게 벗을 만나고, 벗을 알고, 벗과 대화하고, 벗을 격려했는가. 얼마나 많은 벗에게 발심과 성장의 씨앗을 심었는가. 여기에 모든 승패는 걸려 있기 때문이다.
불법의 눈으로 보면 ‘모두 부처’다.
먼저 자기 자신이 광선유포의 승리를 위해 일어나 ‘새로운 광선유포의 영웅이여, 모여라!’고 기원하고 또 기원할 때, 사명의 인재가 용출한다는 것은 절대 틀림없다.
그런 인재를 발견해야 한다. 그런 인재를 길러야 한다.
인재육성의 요체는, 첫째로 ‘만나는’ 것이다.
만나서 그 사람을 알아야 한다. 알아서 그 사람을 격려하고 성장을 바라며 기원해야 한다.
고락을 함께 투쟁한 동지다. 얼마나 소중한 분들인가. 그러므로 내게 있어서 결전장인 간사이를 방문할 때마다 한번 만나면 잊지 않겠다고 진지하게 동지 여러분을 만났다.
언제나 내 마음에 떠오르는 것은 경애하는 간사이 동지다. 내가 바라는 것은 여러분이 성장하고 행복을 획득하는 것이며 강인한 생명력으로 승리 또 승리의 대도를 걸어가는 것이었다.
일본 각지 어느 지방에 있어도 “반드시 이겨라”라고 이 사람에게 저 사람에게 격려 편지와 엽서를 보냈다.
어느 벗에게는 간디의 “비겁한 자에게 희망 없다”는 신념을 기탁하며 “용기를 내야 한다!”라고 써서 보냈다.
동지를 생각하여 마음 편할 시간이 없을 정도로 일념에 담아 깊은 기원을 해야 한다. 그것이 광포 지도자의 수행이다.
둘째로, 벗과 함께 움직이고 함께 투쟁해야 한다.
말로만 떠드는 지도는 통하지 않는다. 우리는 함께 투쟁하는 정의의 동지다.
인도의 시성 타고르는 씩씩하게 호소했다.
“단호하게 정의에 편에 서면 부정을 완전히 물리칠 수 있다.”
‘광선유포의 투쟁’은 공전(公戰)이고 자신의 ‘인간혁명의 투쟁’은 자전(自轉)이다.
‘자신이 광포의 주체자’라는 자각을 깨우쳐 주지 않으면 신심의 무작(無作)의 기쁨을 가르쳤다고는 할 수 없다.
나는 간사이에 싸움터를 두고 하루 24시간 사적인 시간은 전혀 없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심불란으로 투쟁하고 있는 모습 그대로의 나를 간사이의 벗이 항상 보고 있었다.
준엄한 사제의 세계도, 투쟁의 어려움도 즐거움도 전부 그 모습에서 배우고 자기 것으로 만들어 주었다.
어쨌든 대간사이의 투쟁은 인재육성의 투쟁이자 확실히 정의의 진영을 증강시킨 투쟁이었다.
사람을 길러라! 철저하게 사람을 길러라! 지금도 그 원리는 완전히 똑같다.
◇
또 다른 면에서 보면 오사카투쟁은 ‘가장 역풍에 맞선 투쟁’이었다.
미증유의 홍교에 도전한 5월, 갑자기 일반 신문이 창가학회를 ‘폭력종교’ 등이라고 대대적으로 보도하기 시작했다. 내 가슴에 용기가 샘솟았다.
“행해(行解)를 기위(旣爲) 힘쓰면 삼장사마가 분연히 다투어 일어난다”(어서 1087쪽)라고.
니치렌 대성인의 가르침대로가 아닌가! 우리의 신심이 올바르다는 증명이 아닌가!
“현자(賢者)는 기뻐하고 우자(愚者)는 물러남이 이것이니라”(어서 1091쪽)다.
반격이다! 정의는 침묵해서는 안 된다. 유언비어나 날조기사로 무고한 사람을 상처 입히고 정의를 짓밟는 언론의 폭력은 지금도 횡행하고 있다.
정의의 사람 타고르는 분노에 넘쳐 외쳤다.
“거짓말을 하는 것은 죄입니다. 거짓 비난을 더 큰 죄입니다.”
틀림없다. 그리고 ‘이렇게 많은 부정에 가만히 참는 것이 부정’이다.
◇
대간사이여! 상승 간사이여!
나와 일체불이(一體不二)의 정의로운 영웅들이여!
‘우리는 이겼다’ ‘우리는 강하다’ ‘우리는 위대하다’는 저력을 단호하게 위풍도 당당하게 일본 각지의 벗에게, 전 세계의 벗에게 보여 달라!
마하트마 간디는 말했다.
“세계의 변혁을 바란다면, 먼저 자기 자신이 변혁 그 자체여라!”
그 간디의 후계자 네루는 말했다.
“행동하지 않는 것은 완전히 실패의 고백이자 악에 굴복하는 것이었다.”
더 나아가 이렇게 외쳤다.
“어디서 해악을 발견하든 반드시 이것과 투쟁하라!”
☞ 인간세기의 빛 (14) ‘우리의 상승 간사이성(城)’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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