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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⑬](13) 보은초(報恩抄)- 영원히 인류를 윤택하게 만드는 ‘광선유포의 대하’

작성자다사랑|작성시간13.12.26|조회수899 목록 댓글 0

희망의 경전 ‘御書’에서 배운다

제13회 보은초(報恩抄)


영원히 인류를 윤택하게 만드는 ‘광선유포의 대하’

제자의 승리가 최고의 보은


  ‘보은(報恩)'은 생명이 지닌 선성(善性)의 극치입니다.

  ‘망은(忘恩)’은 생명이 지닌 마성(魔性)의 현상입니다.

  신심을 깊게 하고 무명을 타파하며 ‘대아’를 근본으로 사는 사람에게는 자신과 인연이 있고 자신을 성장하게 해 준 많은 사람에게 한없이 감사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리고 ‘지은(知恩)’ ‘보은’이라는 상쾌한 길을 힘차게 끝까지 걸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신심을 잊고 무명에 뒤덮여 ‘아집’에 사로잡히면 ‘만심’, ‘겁내는 마음’ ‘분노’ 등이 마음을 좀먹습니다. 다른 사람의 선성을 존경하는 힘이 희박해지며 결국 부지은(不知恩)과 망은의 인생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대아’를 근본으로 사는가, ‘아집’에 사로잡혀 사는가. 엄하게 말하면, 생명 깊숙한 곳에 있는 이 일념의 차이가 ‘보은’의 인생이냐, ‘망은’의 인생이냐를 결정짓습니다.


‘지은’ ‘보은’은

불법자의 인생이 뿜어내는 광채


  ‘지은’은 가장 풍요로운 인간성을 개발하려는 불법(佛法)의 정신이 겉으로 나타난 현상입니다. ‘보은’은 무명을 타파하고 승리한 지혜로운 생명이라는 증명입니다.

  지은, 보은은 불법자이 인생을 물들이는 생명의 빛입니다.

  니치렌 대성인은 그 누구보다 몸소 인간으로서, 또 불법자로서 보은을 관철하는 인생을 사셨습니다.

  “나는 석존의 유법(遺法)을 배우고 불법에 들어온 이래 지은을 최고로 삼고 보은을 제일로 삼았노라.”(어서 491쪽)


  대성인이 어린 나이게 세이초사에 올라가 “일본 제일의 지자(智者)가 되게 하소서.”라는 간절한 소원을 세우고 수학하신 까닭은 무엇보다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불법을 구도해 ‘생사(生死)의 고(苦)’를 해결하지 못하고 부모의 참된 행복은 없다고 생각하신 것입니다.


  또 20년에 걸쳐 불법을 탐구한 끝에 남묘호렌게쿄라는 종지(宗旨)를 세우고, 파사현정(破邪顯正)이라는 험난한 봉우리를 향해 각오를 정하고 동반을 개시하신 까닭은 ‘일체중생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모든 생명, 모든 인간을 구하는 보편적인 ‘생명의 대법’을 법화경에서 찾아내고 체득(體得)하셨기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불의(佛意)를 위배하는 당시 제종(諸宗)의 방법(謗法)을 훈계하고, 민중의 불행과 국토의 혼란에 수수방관하는 국주(國主)를 간효(諫曉)하신 까닭은 ‘국은(國恩)’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국은 보사(報謝)’는 본디 국주와 국가에 종속되는 것이 아닙니다. 국은을 현대적을 말하면 ‘사회의 은혜’를 말합니다.

  좋은 사회를 구축하기 위해 필요한 근본적인 개혁을 제언하시는 ‘입정안국’의 실천이 바로 국은 보사의 길이었다고 해도 좋습니다.


  그리고 대성인은 대난을 극복하고 발적현본(發迹顯本)하셨으며 어본존을 나타내셨습니다. 말법 만년을 향해 유포할 법체(法體)로 삼대비법(三大秘法)을 나타내 보이고 세우셨습니다.

  그것은 법화경 문저(文底)에 남겨진 민중구제에 정법을 나타내는 투쟁이며 ‘삼보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한 대투쟁이셨습니다.

  삼대비법을 나타내 보이는 일은 ‘부모의 은혜’ ‘일체중생의 은혜’ ‘나라의 은혜’에 대한 보사를 완결하는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인류의 은혜’ ‘세계의 은혜’에 대한 보사인 ‘세계 광선유포’를 향한 새로운 출발이었다고 삼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대성인의 인생은 장대한 보은행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을 옛스승 도젠보의 사은에 보답하고자 밝히신 어서가 <보은초>입니다.


‘대사(大事) 중의 대사’를 쓰신 중서


  대성인은 1276년 6월 세이초사에서 처음으로 불법을 배운 스승 도젠보가 서거하신 소식을 접하고, 즉시 추선회향과 ‘사은 보사’를 위해 <보은초>를 집필하셨습니다.

  그리고 7월 하순, 수학 시절 동문 선배이자 나중에 대성인에게 귀의한 조켄보와 기조보에게 옛 스승 도젠보의 묘소 앞에서 읽기 바란다는 전언과 함께 이 어서를 보내셨습니다.

  <보은초송문>에서 이 어서를 “대사(大事) 중이 대사의 법문을 썼느니라.”(어서 330쪽)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보은초>에서는 처음으로 불법을 배운 스승의 은혜에 보답하는 형식으로 대성인이 젊은 시절 구도한 간요(肝要)를 밝히고 대성인 홍교의 전체상을 밝히셨습니다.

  그리고 말법 만년에 걸쳐 유통해야 할 민중구제의 대법인 ‘삼대비법의 남묘호렌게쿄’가 지닌 무량한 공덕을 결론으로 밝히셨습니다. 또 그 공덕이 모두 최초의 스승인 도젠보에게 돌아간다는 회향의 말로 끝맺으셨습니다.

  이른바 대성인은 <보은초>에서 파사현정의 인생이라는 격투의 발자취를 집대성하셨으며, 삼대비법의 불법으로 말법 만년에 걸친 모든 민중을 구하는 길을 열렸다는 승리의 결론으로 매듭지으셨습니다.


  <본문> 보은초 328쪽 17행~329쪽 8행

  일본(日本)·내지(乃至) 한토(漢土)·월지(月氏)·일염부제(一閻浮提)에 사람마다 유지무지(有智無智)를 가리지 않고 일동(一同)으로 타사(他事)를 버리고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를지니라. 이 일은아직 홍통(弘通)하지 않았느니라. 일염부제(一閻浮提) 안에 불멸후(佛滅後), 이천이백이십오년간(二千二百二十五年間) 한 사람도 부르지 아니하였으며, 니치렌(日蓮) 한 사람이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등(等)이라고 소리도 아끼지 아니하고, 부르느니라.

  예(例)컨대 바람에 따라서 파도의 대소(大小)가 있고, 장작에 의하여 불의 고하(高下)가 있으며, 못에 따라서 연화(蓮華)의 대소(大小)가 있고 비의 대소(大小)는 용(龍)에 의함이라, 뿌리가 깊으면 가지는 무성하고, 수원(水源)이 멀면 흐름이 길다 함은 이것이니라.

  주대(周代)의 칠백년(七百年)은 문왕(文王)의 예효(禮孝)에 의하며, 진세(秦世)가 곧 망(亡)한 것은 시황(始皇)의 좌도(左道)에 의했음이라.

  니치렌(日蓮)의 자비(慈悲)가 광대(曠大)하면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는 만년외(萬年外)·미래(未來)까지도 유포(流布)하리라. 일본국(日本國)의 일체중생(一切衆生)의 맹목(盲目)을 여는 공덕(功德)이 있으며, 무간지옥(無間地獄)의 길을 막았느니라.

  이 공덕(功德)은 전교(傳敎)·천태(天台)보다도 초과(超過)하고 용수(龍樹)·가섭(迦葉)보다도 뛰어났느니나. 극락백년(極樂百年)의 수행(修行)은 예토(穢土)의 일일(一日)의 공덕(功德)에 미치지 못하고, 정상이천년(正像二千年)의 홍통(弘通)은 말법(末法)의 일시(一時)만 못하니라.

  이는 오로지 니치렌(日蓮)의 지혜(智慧)가 뛰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때가 그렇게 시킬 뿐이로다. 봄은 꽃이 피고 가을은 과실(菓實)을 맺고, 여름은 덥고 겨울은 추운데, 때가 그렇게 만드는 것이 아니겠느뇨.


  <현대어역> 어서 328쪽 17행~329쪽 4행

  일본에서 중국, 인도 그리고 일염부제(전 세계)에서 불법의 지혜가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한 사람 한 사람이 마찬가지로 다른 수행을 버리고 남묘호렌게쿄라고 불러야 한다. 이것은 아직 넓혀지지 않았다. 석가불이 입멸하고 나서 2225년 동안은 일염부제에서 한 사람도 부르지 않았다. 오직 니치렌 한 사람만이 남묘호렌게쿄, 남묘호렌게쿄라고 소리도 아끼지 않고 부르고 있다.

  이를테면 바람의 강함에 따라 파도의 크고 작음이 있고, 장작의 양에 따라 불길의 높고 낮음이 있으며, 연못의 깊이게 따라 연꽃의 크고 작음이 있고, 비의 많고 적음은 용의 크기에 따른다. “뿌리가 깊으면 가지가 무성하고, 수원이 멀면 그 흐름이 길다.”는 말은 이 일을 의미한다.

  중국 주나라 시대가 700년 동안 이어진 까닭은 문왕의 예(禮)와 효(孝) 때문이다. 진나라 시대가 얼마 지나지 않아 멸망한 까닭은 시황제의 비도(非道)한 행위 때문이다.


  대성인이 확립하신 홍교의 귀결은 광선유포의 법체인 삼대비법의 남묘호렌게쿄입니다.

  만인의 생명에 본디 갖춰진 가장 존귀한 생명을 한 사람 한사람이 자각할 수 있도록 대성인이 몸소 깨달은 가장 존귀한 생명을 나타내신 ‘본문(本門)의 본존(本尊)’. 남묘호렌게쿄라는 가장 존귀한 생명의 이름을 자행화타에 걸쳐 부르는 ‘본문의 제목(題目)’. 그리고 남묘호렌게쿄를 분신하지 않도록 서로 훈계하며 대법 홍통과 입정안국 실현을 서로 맹세하는 화합승을 구축하는 ‘본문의 계단(戒壇)’.

  이상 세 가지가 모든 사람의 생명과 국토에 가장 존귀한 묘법의 빛을 뚜렷이 나타나게 하고 광선유포를 이룩합니다.


  대성인은 본문에서 가장 먼저 삼대비법의 남묘호렌게쿄는 국가의 차이를 초월해 일념부제에 넓혀야 할 대법(大法)이며, 게다가 불법에 관한 지혜의 유무(有無)를 비롯한 모든 차별을 초월해 실천해야 할 보편적인 대법이라고 밝히셨습니다.


“소리도 아끼지 아니하고” 불법 실천을


  이어서 대성인은 “일염부제 안에 불멸후, 이천이백이십오년간 한 사람도 부르지 아니하였으며, 니치렌 한 사람이 남묘호렌게쿄․남묘호렌게쿄 등이라고 소리도 아끼지 아니하고 부르느니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보편적인 법도 때를 만나서 목숨을 걸고 진지하게 홍통하는 사람이 출현해야 비로소 유포됩니다.


  “소리도 아끼지 아니하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대성인이 몸소 길 없는 길을 “소리도 아끼지 아니하고” 유포하셨기 때문에 말법유포의 대법인 삼대비법이 확립됐습니다.

  민중불법은 투쟁하는 속에 비로소 흥륭한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혼자 조용하게 부르기만 해서는 악세 말법의 중생에게 넓혀지지 않습니다. 자타 함께 무명(無明)을 타파해야, 한 사람 한사람이 생명을 변혁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대성인은 입종선언 후에 하루도 빠짐없이 꾸준히 “소리도 아끼지 아니하고” 계속 부르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숨이 위태로운 대난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전혀 겁내지 않고 말법유포라는 사명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그야말로 “소리도 아끼지 아니하고”는 바로 불석신명의 정신입니다.


  본문에는 대성인의 사신홍법으로 말미암아 남묘호렌게쿄가 오랫동안 유포되는 비유로, 바람의 강도에 따라 파도의 크기가 다른 것을 비롯한 자연계 현상과 천태대사의 말, 그리고 중국의 역사적인 사례가 나와 있습니다.

  여러 비유 가운데 “뿌리가 깊으면 가지가 무성하고, 수원(水源)이 멀면 흐름이 길다.”라는 글월은 본디 천태대사의 <법화문구>에 나오는 말이며 부처의 지혜가 본디 심심무량함을 비유한 말입니다.

  ‘뿌리’와 ‘수원’은 부처의 지혜를 비유하고, 무성한 ‘가지’와 긴 ‘흐름’은 부처가 갖춘 지혜의 위대한 역용을 비유합니다.

  니치렌 대성인은 <어의구전>(어서 715쪽)에서 이 제불이 갖춘 지혜의 본체는 다름 아닌 남묘호렌게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천태대사는 이 비유를 바탕으로 가르침이 깊으면 깊을수록 오랜 세월에 걸쳐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다는 도리를 나타내셨습니다.


  중국의 역사적인 사례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성인은 주나라가 700년에 걸쳐 번영한 연원도 나라의 토대를 구축한 문왕이 정중히 예의를 갖추고 효양을 소중히 여긴 점에 있다고 설하셨습니다.

  반대로 중국에서 처음으로 본격적인 통일 왕조를 이룬 진나라 시대는 불과 15년 만에 멸망했습니다. 그 까닭은 초대 시황제가 도리에 어긋났기 때문이라고 갈파하셨습니다.

  요는 창시자에게 민중이 근본이라는 철학이 있느냐 없느냐, 또 그 철학을 계승하는 전통적인 기반을 구축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한 나라가 오래도록 존립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문제도, 그 기반을 이루는 사상의 깊이와 그 사상을 실천하고 계승하는 사람의 진지함으로 결정됩니다.


  어쨌든 다양한 종교는 본디 인간의 고뇌를 해결하기 위해 가르침을 설했을 터입니다. 그러나 그 가르침이 고뇌의 근본 원인까지 해명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 하는 차이는 뚜렷이 있습니다.

  얕은 차원밖에 파악하지 못하는 가르침으로는 그 힘이 좁고 짧은 범위에만 미칩니다.

  이에 비해 남묘호렌게쿄는 생명의 근원적인 법입니다. 그러므로 미래 영원에 걸쳐 사람들을 구할 수 있습니다.


  또 남묘호렌게쿄의 힘이 미래 영원히 미치는 까닭은 법이 깊기 때문이고, 또 이 묘법을 가장 먼저 홍통한 니치렌 대성인이 불석신명으로 투쟁하셨기 때문입니다.

  ‘법의 깊이’와 ‘투쟁의 깊이’.

  이 두 가지를 갖춰야 비로소 광선유포가 발전하고 광선유포를 이룰 수 있습니다. 오늘날 세계 192개국에 이르기 까지 광선유포가 발전한 까닭도 이제껏 동지 여러분이 사제삼대와 함께 대성인에게 직결하는 불석신명의 신심으로 꿋꿋이 분투했기 때문입니다. 니치렌 대성인의 뒤를 잇는 강성한 신심에 바로 광선유포와 행복의 원천이 있습니다.

  세계 SGI 동지가 광선유포를 위해 일어나 진지하게 실천할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마키구치 선생님, 도다 선생님이라는 창가(創價)의 스승이 대성인의 정신대로 광선유포를 위해 불석신명․사신홍법으로 투쟁하고, 그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에게 ‘뿌리가 깊고, 수원이 먼’ 것은 신심이 깊고 견고하다는 의미입니다.

  인생과 광선유포의 투쟁에서 어떠한 삼장사마가 다투어 일어나도 신심의 힘으로 승리해야 합니다.

  광선유포를 위해 투쟁하려는 강한 사명의 일념을 관철하면 어떤 마(魔)도 마라고 간파하고 타파해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모든 장마를 절단하는 이검(利劍)이 바로 깊은 신심입니다.


  그리고 ‘가지가 무성하고 흐름이 긴’ 것은 장마에 지지 않는 용기 있는 신심이 있으면 현재 자신의 인생이 반드시 번영할 뿐 아니라 그것이 근본의 공적이 되어 자자손손에 걸쳐 번영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지금 진지하게 광선유포를 위해 투쟁하는 일이 현재와 미래에 걸친 행복과 번영의 인(因)을 만듭니다. 광선유포를 위한 고생은 모두 삼세 영원에 걸친 일가와 권속의 복운으로 바뀝니다. 이것이 묘법의 인과이법(因果理法)입니다.


  <현대어역> 어서 329쪽 4행~6행

  니치렌의 자비가 광대하다면 남묘호렌게쿄는 만년이 훨씬 지난 먼 미래까지 유포 될 것이다. 일본국 일체중생의 맹목을 여는 공덕이 있다. 무간지옥의 길을 막은 것이다.


대성인의 삼덕이 광선유포를 실현


  대성인은 ‘원원류장(源遠流長)’의 원리를 근본으로 자비에 넘친 자신의 격투로 말미암아 미래 영원히 민중을 구하는 기반을 확립했다고 선언하셨습니다. 다음 구절은 정말 유명한 말씀입니다.

  “니치렌의 자비가 광대하면 남묘호렌게쿄는 만 년 외 미래까지도 유포하리라. 일본국의 일체중생의 맹목을 여는 공덕이 있으며 무간지옥의 길을 막았느니라.”

  니치렌 대성인의 자비에 넘친 투쟁으로 남묘호렌게쿄가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대성인의 깊은 일념의 힘으로 말미암아 이 남묘호렌게쿄가 말법 만년을 반드시 초월하여 전 인류를 완전히 구한다는 대확신을 밝히셨습니다.


  ‘만인성불’이 부처의 서원입니다. 그리고 ‘멸후 광선유포’가 바로 석가․다보․삼세시방의 제불이 지닌 근원적인 소원입니다.

  그런 제불의 소원을 대성인이 실현하셨다고 분명히 말씀하신 부분이 이 글월입니다.


  또 이 구절에서는 대성인이 갖추 주사친의 삼덕을 밝히셨습니다.

  ‘니치렌의 자비가 광대’는 ‘부모의 덕’, ‘일체중생의 맹목을 여는 공덕이 있으며’는 ‘스승의 덕’, ‘무간지옥의 길을 막았느니라’는 ‘주군의 덕’입니다.


  ‘부모의 덕’은 사람들을 육성하고 자비를 베푸는 작용입니다.

  대성인이 거듭되는 대난을 극복하셨기 때문에 비로소 말법 만년을 넘어 민중을 구하는 대법이 확립됐습니다. “니치렌의 자비가 광대하다면”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자비는 결코 평온한 사회 속에서 나타내시지 않았습니다. 대성인은 삼독(三毒)이 충만한 악세(惡世)에 말법 만년의 일체중생을 위해 온갖 삼류의 강적과 투쟁하고 광선유포의 흐름을 구축하셨습니다. 이만큼 광대한 자비는 없습니다.

  또 ‘스승의 덕’은 사람들을 올바르게 이끄는 작용입니다.

  “일본국의 일체중생의 맹목”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맹목’은 말할 나위 없이 신체적인 맹목이 아닙니다. 생명의 근원적인 미혹인 무명으로 법성의 생명이 열리지 않음을 말합니다.

  대성인은 사람들의 그런 무명을 타파하기 위해 법화경 행자로서 몸소 삼장사마와 투쟁하는 모습을 보이며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에 동집생의를 일으키셨습니다.

  그리고 ‘주의 덕’은 사람들을 지키는 작용입니다.

  “무간지옥의 길을 막았느니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지옥에 떨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는 깊고 강한 경애입니다.

  이 지상에서 비참과 불행을 없애겠다는 강한 의지가 없으면 모든 사람을 끝까지 지키기 못합니다.

  이처럼 주사친의 삼덕은 대성인이 몸소 악세 말법에 불석신명의 격투를 관철했기에 비로소 실증하신 경애임을 꿈에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불법은 어디까지나 행동입니다. 행동이라는 뒷받침 없이 “부처와 같은 내증이 있다.”는 식으로 권위를 내세우는 무리가 출현한다면 이야말로 ‘육사외도’의 말류(末流)라고 단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대성인의 광선유포를 위한 불석의 정신을 그대로 계승해 현실사회 속에서 실현하려고 일어선 분이 창가의 아버지 마키구치 선생님, 은사 도다 선생님이십니다.

  창가학회가 불칙(佛勅)으로 출현함으로써 대성인을 원류로 받드는 ‘광선유포의 대하’가 21세기의 세계로 도도히 흐르고 있음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세계 광선유포의 기반을 완벽하게 확립되었습니다. 더욱더 이 대하를 광선유포의 대하로 전 세계에 넓혀야 할 때가 도래했습니다.


  <현대어역> 어서 329쪽 6행~8행

  이 공덕은 전교나 천태보다 초과하고 용수나 가섭보다 더 뛰어나다. 극락에서 백 년 동안 수행하는 공덕은 예토에서 하루 수행하는 공덕에 미치지 못한다. 정법․상법 이천 년의 홍통은 말법의 한때의 홍통보다 못할 것이다.

  이는 오로지 니치렌의 지혜가 뛰어나서가 아니라 때가 그렇게 시키는 것이다. 봄에는 꽃이 피고 가을에는 열매를 맺는다. 여름은 따뜻하고 겨울은 차다. 이러한 일도 때가 그렇게 시키는 것이 아닌가.


‘예토 하루의 공덕’은 ‘변혁의 종교’


  이어서 대성인은 말법 만년에 걸쳐 남묘호렌게쿄를 광선유포하는 공덕은 전교천태, 용수가섭보다 더 뛰어나다고 설하셨습니다.

  말법 탁세의 중생을 근저에서 구하는 공덕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이 점을 “극락 백 년의 수행은 예토의 일일의 공덕에 미치지 못하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렵고 힘든 때야말로 가장 존귀한 불도수행을 할 수 있습니다. 그 노고가 무량한 대공덕으로 됩니다.


  ‘극락 백 년의 수행’은 한마디로 말하면, 아무런 어려움도 겪지 않고 혜택 받은 환경에서 하는 불도수행입니다. 그렇게 해서는 자신의 인간혁명을 실현하기가 어렵습니다.

  생명을 연마하고 변혁하지 않으면, 설령 백 년 동안 수행을 거듭해도 성불의 길을 완수하지 못합니다.

  이 말씀은 당시 극락에 왕생하고 나서 불도수행을 한다고 강조하는 염불의 가르침을 통렬하게 파절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많은 종교가 현실을 도피해 ‘극락세계’를 지향하는 가운데 “어디까지나 이 현실세계가 바로 참된 불법수행의 도량이다. 혹독한 시련 속에서 승리의 길을 개척해야 비로소 생명을 연마하는 불도수행이 된다.”고 설하셨습니다.


  ‘예토의 하루의 공덕’은 탁세의 중생을 진실로 구하는 ‘변혁의 종교’의 진수를 표현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남묘호렌게쿄는 탁세에 사는 인간 한 사람의 가슴속에서 부처가 깨달은 가장 존귀한 생명을 즉시 여는 대법입니다.

  일념의 변혁하면 즉시 경애를 변혁할 수 있습니다. 악세이므로 우리에게는 나날이 무엇인가 과제가 생깁니다. 하물며 커다란 사명을 위해 사는 인생에는 그만큼 커다란 시련이 이어집니다.

  그것을 오히려 도약대로 삼아 묘법의 기원을 진지하게 실천하고 과제를 극복하기 위해 도전해야 합니다. 그런 하루하루가 변혁하는 수행이며, 그렇게 지속하는 속에 일생성불이라는 위대한 공덕이 뒤따릅니다.

  그리고 몹시 거친 현실사회에 행동하는 ‘변혁의 종교’는 정말로 사바세계를 불국토로 전환하고 ‘입정안국’을 가능하게 합니다.


  또 말법 한때의 홍통이 정상 이천 년의 홍통보다 뛰어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정법시대와 상법시대의 불법은 기본적으로 기근이 높은 사람을 위한 가르침이며 부분적이고 간접적인 교법(敎法)이지만 공덕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말법은 그렇게 부분적이고 간접적인 교법이 각자 자신의 주체성을 주장하며, 오히려 정법을 방해하는 악연으로 바뀌는 투쟁언송의 시대입니다.

  그런 시대이기 때문에 직접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불성을 촉발하는 하종불법(下種佛法)인 남묘호렌게쿄가 아니면 사람들을 구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부분적이고 간접적인 교법이 넓혀진 정상 이천 년의 홍교보다 직접 불성을 촉발하는 대법을 홍통하는 말법 한때의 홍교가 뛰어난 것입니다.


악세가 바로 광선유포를 개척할 '때'


  대성인은 말법 만년에 걸친 광선유포의 대법을 몸소 확립한 일에 관해 대성인 자신의 지혜가 뛰어나서가 아니라 “때가 그렇게 시킬 분이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혜가 뛰어나서가 아니라는 말은 겸손한 말씀입니다. 그러나 “때가 그렇게 시킬 뿐이로다.”는 말씀은 깊은 진실을 표현하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도 어떤 분야든 참으로 위대한 사람은 ‘때를 얻는다.’ ‘때의 부름에 나온다.’는 면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불법에서는 ‘때’가 중요합니다. 인간에게 정신적인 변혁이 필요할 때는 그 변혁을 추진하는 성인이 출현합니다.

  또 탁세야말로 시대와 민중을 구하는 위해단 법을 설하는 진실한 부처가 출현한 때이기 때문입니다.


  대성인이 ‘때’를 강조하신 까닭은 남묘호렌게쿄가 바로 말법의 때에 맞는 대법이라는 절대적인 확신을 지니셨기 때문입니다.

  불법사와 인류 역사를 보더라도 대성인이 출현하신 말법의 시대상을 귀족시대에서 민중시대로 바뀌는 기로에 서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세계가 전체적으로 크게 연결되었고, 역동적으로 변하며 크게 교류하는 시대에 들어섰습니다.

  대성인은 그런 시대에 앞장서서 보편적인 세계 종교이자 민중불법인 남묘호레게쿄의 대법을 나타내고 홍통하셨습니다.

  현대로 바꿔 말하면 20세기 전반에 창가학회가 탄생했습니다.

  니치렌 대성인 불법을 세계로 홍통하는 단체가 이 ‘때’에 출현한 의의는 20세기 인류사의 커다란 전기를 이룬 일과 전혀 무연(無緣)하지는 않습니다.


  20세기는 세계대전이 두 차례 일어났고 인류가 멸망할 위기를 초래하는 핵무기도 만드는 등, 인류사에 획을 긋는 특필할만한 시대입니다.

  인류는 ‘세계’라는 단위로 경제행동을 시작하고 ‘우주’까지 비행했습니다. 그리고 환경파괴를 비롯해 지구가 유한한 존재임을 인식한 일도 분명히 20세기에 일어났습니다.

  인류의 의회라 할 수 있는 유엔을 비롯해 평화를 수립하기 위한 세계 기구가 생기고, 식민지 지배나 노예를 제도상으로 폐지했으며 인권의식 확대를 이룬 때도 20세기 입니다.

  이런 인류 미문의 틀 속에서 새로운 인류의 지혜를 필요로 할 때 창가학회를 창립했습니다.

  그리고 ‘인간을 위한 종교’를 높이 내걸며 불행의 길을 막고 참된 행복을 여는 '지혜'를 인류에게 제시했습니다.


  마키구치 선생님은 ‘가치창조’ 철학을 표방하며 인격 형성의 골격을 만드는 창가교육을 탄생시키셨습니다.

  그리고 도다 선생님은 ‘지구민족주의’ ‘원수폭금지선언’ ‘인간혁명’ 사상으로 20세기 인류의 무명과 투쟁하는 지혜를 개척하셨습니다.

  나도 그 불이(不二)의 직제자로서 ‘인간주의 대화’로 문명 간, 종교 간의 틈을 메우고 또 ‘선(善)의 유대’를 확대해서 21세기를 ‘인간의 세기’ ‘생명의 세기’ ‘평화의 세기’로 만들기 위해 행동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 창가 시대의 도래가 그야말로 “때가 그렇게 시킬 뿐”이기 때문이라고 확신합니다.


“최후의 승리는 부처에게 기원하라”


  대성인은 이 어서 마지막에서 악세 멸후 남묘호렌게쿄의 광선유포가 바로 부처의 ‘원(悲願)’이며 지금 대성인이 직접 부처의 비원을 성취했다는 확신을 밝히셨습니다.

  그리고 대성인이 민중을 구하는 대법을 확립하고 말법 만년에 걸친 광선유포의 길을 개척한 공덕은 모두 옛 스승인 도젠보에게 돌아간다고 말씀하며 <보은초>를 끝맺으셨습니다.


  대성인은 다른 어서에서 “스승은 대지이며 제자는 초목이다.”(어서 900쪽, 취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가 피운 승리의 꽃은 반드시 대지에 돌아와 스승의 복덕으로 바뀝니다. 그리고 그런 사제의 대지에서 다시 새로운 승리의 꽃이 피어 향기를 풍기리라는 사실 또한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나도 그런 확신으로 61년간 도다 선생님을 섬겼습니다. 지금도 하루 또 하루 새롭게 결심하며 도다 선생님에게 보답하려고 분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이 있어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도다 선생님은 늘 “스승에게는 명예로운 제자를 두는 일이 가장 행복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도다 선생님이 빙그레 웃으며 내 행동을 기뻐해 주시리라 확신합니다.

  1957년 연말, 도다 선생님은 생애 서원인 75만 세대를 달성하고 나서 내게 시를 한 수 지어주셨습니다. 내가 선생님에게 마지막으로 받은 시이기도 합니다.


  승부는 / 사람 생명의 / 상사(常事)이지만 / 최후의 승리는 / 부처에게 기원하라


  반드시 승리하라!

  가혹한 현실도 끝내는 서원의 기원으로 승리하라!

  고난을 돌파하고 승리의 종을 쳐서 울려라!

  제자의 승리를 믿는 도다 선생님의 자애로운 얼굴이 눈앞에 떠오릅니다.

  승리가 바로 스승에게 보은하는 일입니다.

  학회 창립 78주년이 되는 ‘1118’을 향해 사제승리의 새로운 역사를 구축할 '때'가 도래했습니다.

  나는 장래가 촉망되는 사랑스러운 제자가 반드시 승리하리라고 믿습니다. 참된 우리 제자인 청년의 승리를 기다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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