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간혁명 제4권 <입정안국>①
학회의 사명은 입정안국(立正安囻)의 실현에
8월 2일부터 10일까지 총본산 다이세키사(大石寺)에서 연례행사인 하계강습회가 4기로 나뉘어 실시되었다.
야마모토 신이치는 이번 강습회에서는 니치렌 대성인의 중서(重書) 중의 중서인 <입정안국론(立正安國論)>을 중심으로 어서 강의를 하기로 했다.
신이치가 그렇게 결정한 것은 7월 초순의 일이었다.
학회가 200만 세대를 달성한 이 시점에서, 입정안국이라는 불법자의 목적과 사명을 재확인해 두고 싶었던 것이다.
‘입정(立正)’이란 ‘정(正)을 세운다(立)’ 요컨대 정법을 유포하는 것이며, 생명존엄과 인간 존중이라는 철리(哲理)를 사람들의 흉중에 확립시켜 사회의 기본 원리로 해 가는 것이라고 해도 좋다.
그리고 목적은 ‘안국(安國)’ 즉 ‘나라(國)를 안온(安)케 한다’는 것이며, 바로 사회의 번영과 평화의 건설을 의미하는 것이다.
창가학회의 사명은 니치렌 대성인께서 밝히신 이 입정안국의 실현에 있다.
종교가 현실 사회에서 인간의 고뇌를 해결하는 것을 외면한다면 그것은 이미 종교의 죽음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패전(敗戰)의 불탄 벌판에 광선유포의 깃발을 내걸고 홀로선 도다 조세이의 소원도 비탄에 허덕이는 민중에게 영원한 행복과 평화의 빛을 비추는 것이었다.
또 신이치가 회장에 취임한 이래, 나날이 기념해 온 것도 세계 평화였으며 대지진 등의 재해가 없어지고 곡물이 풍작을 이루게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도다도 신이치도 사회의 번영과 평화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 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항상 심사숙고해 왔다.
예를 들면, 도다 조세이가 <원수폭 금지선언>의 발표에서 비록 전쟁에 이겼다고 해도 원자폭탄, 수소폭탄을 사용하는 것은 사탄이라고 단언, 청년들에게 이 사상을 전 세계에 넓혀 줄 것을 의탁한 것도 그 사색의 결과였다.
또한 동지들 가운데 재능이 있는 인재를 지방의회와 참의원으로 배출한 것도 정치를 민중의 손에 되돌려 주어 사람들의 생활을 향상시키고 일본이라는 나라에 항구평화의 길을 열기 위해서였다.
게다가 앞으로 학회가 사회를 위해, 평화를 위해 착수해야 할 과제는 점점 증가해 갈 것이 틀림없다.
그 때, 입정안국의 원리를 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상태라면 혼란을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것을 우려하여 신이치는 이번 하계강습회에서 <입정안국론>을 강의하기로 했던 것이다.
하계강습회를 앞두고 신이치는 촌음을 아껴서 <입정안국론>의 연찬에 힘써 왔다. 어떤 때는 학회본부의 집무실에서, 어떤 때는 자택에서 심야까지. 또 어떤 때는 여행지의 숙소에서 어서를 배독하고 사색을 거듭했다.
<입정안국론>은 지금까지 몇 번이나 공부한 어서였다. 그러나 신이치는 새로운 기분으로 술작(述作) 유래부터 세밀하게 연찬해 갔다.
<입정안국론오서(奧書)>에는 “정가(正嘉)로부터 이를 시작해서 문응(文應) 원년(1260년)에 감고(勘考)를 필(畢)하다”(어서 33쪽) 라고 있어 정가 원년(1257년) 8월 23일 밤, 가마쿠라일대를 덮친 대지진을 보고 <입정안국론>을 저술하기에 이르렀다고 있다.
대성인이 이 지진을 만나신 것은 36세, 가마쿠라의 마쓰바가야쓰에 있는 초암(草庵)에 계셨을 때였다.
4년 전인 건장(建長) 5년(1253년) 4월 28일의 입교개종(立敎改宗)이래, 목숨을 노리는 지두(地頭)에 의해 고향인 아와 지방에서 쫓겨나신 대성인은 정치의 중심지 가마쿠라로 나와 거기에서 광선유포의 기치를 세우셨던 것이다.
이 무렵, 일본에는 매년같이 기근이 계속되고 역병이 만연하고 있었다.
오처경(吾妻鏡) 등의 기록에 의하면 이해부터 문응 원년(1960년)까지인 4년간, 수많은 천변지요(天變地夭)가 일어났다.
이 정가 원년(1257년) 8월의 대지진 후에도 여진(余震)이 오랫동안 계속되고 11월에도 다시 대지진이 일어난다.
다음 정가 2년(1258년) 6월에는 한겨울 같은 추위가 계속되었고, 8월에는 가마쿠라에 대풍, 교토에 폭풍우가 덮쳐 농작물에 큰 피해를 준다. 그리고 10월이 되자 가마쿠라에 폭우로 홍수가 발생, 민가(民家)가 유실되고 다수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게다가 역병이 유행하였으며 여러 지방으로 대기근이 확산되었다.
정가 3년(1258년) 3월, 재앙에서 벗어나기 위해 개원(改元)을 실시하여 ‘정원(正元)’으로 연호를 바꾸지만 역병은 해가 바뀌어도 끝나지 않자 4월에는 다시 ‘문응(文應)’으로 개원한다.
그러나 그 4월에도 가마쿠라에서 큰 화재가 발생했고 6월에는 대풍과 홍수가 일어났다.
대성인은 가마쿠라에 있으면서 지진에 의한 피난민 등의 비참한 모습을 접하고 가슴 아파했다.
굶주림에 괴로워하고 상처 입은 몸으로 의지할 곳 없이 떠도는 사람, 울부짖는 아이들. 젖먹이아이를 껴안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어머니 ···.
길바닥에 쓰러져도 구해 주는 사람조차 없는, 수많은 ‘죽음’이 눈앞에 드리워 있었다.
막부는 사태를 타개하기 위해 진언종의 승려에게 가지기도(加持祈禱: 부처의 가호를 비는 기도) 등을 명했지만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왜 이렇게 괴로워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인가?’
그것이 사람들의 공통된 심정이었다. 그러나 그것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 지옥도(地獄圖)와 같은 사태를 어떻게 전환시켜 갈 것인지. 니치렌 대성인은 끝없이 고뇌하고 사색하셨음에 틀림없다.
야마모토 신이치는 어서를 배독하면서 대성인의 모습을 그려 보았다. 민중의 고뇌를 눈앞에 두고 함께 고뇌하고 괴로워하는 대성인의 행동이 그의 가슴에 생생하게 떠올랐다.
정가 2년(1258년) 경, 가마쿠라에서 스루가로 향하는 한 승려가 있었다.
그의 눈에는 깊은 근심이 어려 있었다. 니치렌이었다.
그는 천태종 사원인 이와모토의 짓소 사(實相寺)를 찾았다.
거기에는 일체의 경들이 정비되어 있었다.
니치렌은 이 절의 경장(經藏: 경문을 넣어 두는 곳)에서 모든 경들을 읽고, 인간의 근본을 이루는 종교의 혼란에 천변지요, 기근역려의 근본 원인이 있다는 것을 경문 상으로도 또 도리 상으로도 분명하게 하려고 결심하고 있었다.
경장에 들어가자 니치렌은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일심으로 경전에서 눈길을 떼지 않았다.
대집경(大集經)을 펼쳐들었을 때, 니치렌의 눈은 예리하게 빛났다. 거기에는 불법(佛法)이 은몰(隱沒)했을 때 일어나는 천변지요 등의 모습이 자세하게 씌어져 있었다. 그것은 전부 정가의 대지진 이래 일어난 세태와 부합하고 있었다.
“이 대로이다!”
‘불법의 은몰’은 니치렌 자신이 가장 통감하고 우려해 온 일이었다.
불교 각파의 사원은 가마쿠라에도 즐비하게 서있어, 오히려 점점 더 그 융성을 자랑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석존이 설하려고 했던 진실한 불법도 그 정신도 이미 거기에는 없었다.
경문에는 무엇이 석존의 진실한 법인지 명료하게 나와 있었다.
예를 들면 법화경의 개경(開經)인 무량의경(無量義經)에는 “40여 년 미현진실(未顯眞實: 아직 진실을 밝히지 않았음)”이 라고 있다. 석존이 50년 동안 행한 설법 중, 앞의 40여 년간의 설법은 이전권교의 가르침이며 여기에서는 아직 진실을 나타내지 않았다는 것이 명확하게 서술되어 있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법화경이 생명의 진실한 모습, 전체상을 설하는 것에 비해 법화경 이전의 가르침은 비유 등으로 밝힌 임시의 가르침이고 생명의 부분 관을 설한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법화경의 비유품에는 “불수여경일게(不受余經一偈: 여경의 일게도 받아들이지 말라)”라고 있다. 근본이 되어야 할 가르침은 어디까지나 법화경이라는 말씀이시다.
당시 불교계에는 천태(天台), 구사(俱舍), 성실(成實), 율(律), 법상(法相), 삼론(三論), 화엄(華嚴), 진언(眞言)의 팔종(八宗)이 있었으며 또한 신흥 종파로서 염불(念佛)과 선(禪)이 있었다.
이 중, 천태종 외에는 모두 이전권교의 경전을 의처(依處)로 하고 있었다. 또 법화경을 근본으로 하고 있던 천태종조차도 전교 대사가 죽은 후, 진언 밀교나 염불에 물들어 본래 석존의 가르침을 잊은 지 오래되었다.
비유나 부분관일 뿐인 가르침에 집착하여 그것이 전체상이고 진실이라고 믿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예를 들면 호랑이의 꼬리를 보고 이것이 호랑이의 전부인 양 생각하여 무방비 상태로 다가간다면 습격당할 것이다.
그러므로 니치렌은 1253년 4월 28일에 입교개종(立敎開宗)의 사자후를 발한이래, 그러한 제종의 잘못된 가르침을 지적해 온 것이다.
그 당시, 민중 사이에 가장 깊이 침투해 있던 것은 호넨의 정토종(淨土宗)이었는데 이것은 이전권교의 정토삼부경을 근본으로 하고 있었다.
호넨은, 사바세계는 예토(穢土)이며 오로지 한결같이 나무아미타불이라고 봉창만 하면 죽은 후에 아미타불이 있는 서방극락세계에 태어날 수 있다고 설했다. 그리고 정토종의 의경(依經)인 정토삼부경 이외의, 법화경을 비롯한 일체의 제경을 부정했던 것이다.
석존이 아미타불의 서방극락세계 등, 다른 세계에 불토(佛土)가 있다고 설한 것은 방편이며 비유였다. 사바세계의 고뇌에 잠긴 사람들을 격려하기 위해 임시로 저편에 있는 세계의 이야기로서 불국토를 묘사한 것이다
석존의 진의(眞意)는 이 사바세계야말로 본래 정토(淨土)라고 가르치는 것이었다. 사바즉적광토(娑婆卽寂光土)이며 중생의 마음이 더러워져 있으면 살고 있는 세계도 예토가 되고, 마음이 청정하면 정토가 된다. 중생의 일념 전환에 이해 이 사바세계에 정토를 출현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을 설해 나타낸 것이 법화경이었다.
저편의 세계에서 구제를 추구하는 염불의 가르침은 예토인 현실 사회에 대한 체념과 무기력, 도피를 가져오게 한다.
더구나 천변지요, 기근역려가 계속되는 어수선한 세상이다. 이 염불 사상에다 일종의 종말론으로 펴지고 있던 말법사상이 겹쳐 사람들의 불안과 절망은 깊어져 갔다.
실로 “염불의 애음(哀音)”(어서 96쪽) 이라고 부르듯이 그 염세적인 소리는 피로에 지친 인심을 더욱더 쇠약하게 만들어 갔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