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학운동’(3)
대성인의 정신으로 돌아가라!
1월 15일 오사카부 도요나카시에 있는 간사이도다기념강당에는 전국에서 교학부 교수 대표 4500명이 모여 성대하게 ‘교학부대회’를 개최했다.
12일 밤부터 일본열도에 한파가 덮쳐 눈이 쌓이고 선로에 금이 가거나 정전 소동 등이 잇달아 발생해 열차 운행에 많은 지장을 주었다.
그러나 이날 아침 오사카 지방은 눈부신 햇살에 감싸였다.
참석자는 ‘교학의 해’에 중요한 행사가 될 ‘교학부대회’였기에 수송기관의 혼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기쁨에 넘쳐 모여들었다.
신이치는 이 대회로 ‘교학 신시대’의 막을 열어야겠다는 결심으로 직접 기념강연도 하기로 정하고 준비에 힘을 쏟았다.
‘교학 신시대’는 불법의 법리를 현대사회와 세계에 전개하며 미래를 창조하는 새로운 사조(思潮)를 형성하는 시대다.
신이치는 그러려면 교학적인 문제 하나하나를 ‘인간을 위한 종교’라는 관점을 바탕으로 근원부터 다시 파악하고 의미를 분명히 밝히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교학부대회는 회순대로 진행되었다.
1월 중순에 들어선 한겨울 날씨에도 불구하고 장내에는 새로운 사상운동을 일으키려는 참석자의 열기가 가득 넘쳤다.
마지막으로 신이치가 등단했다. 모두 뛰는 가슴을 안고 신이치의 이야기를 기다렸다.
신이치는 먼저 참석자의 노고를 치하한 다음 단숨에 본론으로 들어갔다.
“불교는 본디 혁명적인 종교입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석존이 불교를 일으킨 이유도 권위주의로 타락해 고뇌하는 민중을 구제하는 일은 안중에도 없던 브라만교에 맞서 종교를 인간의 손에 되돌리기 위해서였습니다.
‘종교를 위한 인간’에서 ‘인간을 위한 종교’로 크게 방향을 바꾼 점이 실로 불교의 발상이었습니다.
불교는 참으로 민중을 소생시키기 위한 혁명 속에서 탄생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신이치의 강연은 명쾌했다. 모두 ‘그렇다!’고 생각했다. 종교가 의식이나 권위라는 베일에 감싸일 때, 그 정신은 쇠퇴하고 사라진다.
◇
불교는 민중을 소생시키기 위해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윽고 계율주의로 기울었으며 출가한 승려를 중심으로 하는 일부 엘리트의 독점물로 변했다.
그러한 불교 교단의 자세에 개혁의 봉화가 오르고, 석존 멸후 100년이 지난 무렵에는 불교 교단이 분열되기에 이른다.
출가한 승려를 중심으로 하는 보수적인 종래 ‘상좌부(上座部)’와 재가신도인 민중에게 초점을 맞추려는 진보적인 ‘대중부(大衆部)’로 나뉘기 시작한다.
그리고 석존의 정신이라는 원점에서 불교를 되물으려는 본격적인 종교혁명의 흐름이 일어난다.
바로 ‘대승불교운동’이다. 자리적(自利的)이고 형식주의에 빠져 민중의 고뇌와 유리된 출가불교와 반대로 민중 구제라는 불교의 흐름이 구축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불교의 각성이라는 커다란 물결이 인도에서 중국으로 더 나아가 일본까지 확대되기에 이르렀다.
신이치는 강하게 말했다.
“민중 속에서 탄생해 신선하게 약동한 불교가 침체되고 빈껍데기처럼 허상만 남게 된 커다란 원인 중에는 불교계 전체가 ‘출가불교’에 빠져 민중을 이끄는 기능을 잃었다는 사실이 있습니다.
본디 불교는 민중이 주체이며 출가한 법사(法師)도 민중의 지도자라는 의미였습니다.”
신이치는 석존불법이 변질되고 쇠퇴한 원인을 분명히 밝힘으로써 니치렌불법이 결코 같은 전철을 밟지 않게 경계하고 싶었다.
그런 불법흥망의 열쇠를 손에 쥔 존재가 바로 중생을 이끄는 ‘법사’였다.
이 부분에서 신이치는 니치칸 상인의 ‘선시초우기’를 인용해 ‘법사’를 논하기 시작했다.
“’대법사’는 지금이 어떤 때인지를 응시하며 광선유포 운동을 이끌고 훌륭히 법을 설하며 널리 민중이라는 너른 바다에서 자행화타(自行化他)라는 실천의 물결을 일으키는 존재를 가리킵니다.
그러려면 법사가 반드시 갖춰야 할 요건은 시대의 격류를 날카롭게 규명하고 때로는 민중의 방패막이가 되어 민중과 함께 불법을 위해 싸워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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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치는 ‘법사’의 존귀한 모습을 몸소 보여주신 분이 바로 어본불 니치렌대성인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법사’가 마땅히 갖춰야 할 본연의 자세를 밝히신 대성인의 지도를 배독했다.
“받기 어려운 인신(人身)을 얻어 간혹 출가한 자도 불법을 배우고 방법(謗法)의 자를 책(責)하지 않고 헛되이 유희잡담만을 하며 지내는 자는 법사의 가죽을 쓴 축생이니라.”(어서 1386쪽)
승려가 되었으면서 용기 있게 실천하지도 않고 나태해진 자는 법사의 가죽을 쓴 축생이며, 불법이라는 몸 안에서 불법을 멸망케 한다고 경종을 울리신 말씀입니다.
“말법의 법화경행자는 남에게 미움 받을수록 수지함을 진실한 대승의 승이라 하였더라. 또한 경을 넓혀서 남을 이익케 하는 법사이니라.”(어서 556쪽)
말법에 법화경을 수행하는 대승의 승은 남에게 미움 받고 대난을 겪으며 과감하게 싸움을 지속하는 사람이다.
또 홍교를 위해 앞장서서 몸을 내던지고 철저히 민중을 구제하기 위해 살아야 한다는 말씀이다.
그에 비해 재가신도가 지녀야 할 본연의 자세에 관해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런데 재가의 몸은 다만 여념 없이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시고 승도 공양하시는 것이 간심(肝心)이외다. 그것도 경문대로라면 수력연설(隨力演說)도 있어야 할 것이로다.”(어서 1386쪽)
승려는 오로지 절복에 투철하고 삼류강적(三類强敵)과 싸우며 광선유포 해야 함에 비해 재가는 오로지 제목을 부르고 공양하며 자신이 지닌 힘에 따라 불법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른바 재가에게는 측면에서 응원하도록 의탁하셨다.
신이치는 이 글월들을 소개한 다음 힘주어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재가와 출가의 본지에 비춰보면 현대에 창가학회는 재가와 출가 양쪽 모두에 통하는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만큼 위대한 불의(佛意)에 부합된 화합승(和合僧)은 세계 어디에도 없습니다.”
현대에 누가 광선유포를 추진했는가. 누가 법난을 받았는가. 바로 창가학회다. 그러므로 학회는 정신과 실천면에서는 출가라고도 법사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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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모토 신이치는 ‘출가(出家)’의 본뜻을 깊이 파고들었다.
본디 ‘출가’는 ‘집을 떠나간다’고 쓰며 명문명리의 집을 나와 번뇌의 진흙탕을 떠난다는 뜻이다.
삭발은 불도(佛道)를 구명(究明)할 때까지 두 번 다시 집에 돌아가지 않겠다는 결심을 상징하는 일이었다.
대승경전인〈대장엄법문경〉은 출가에 관해 이렇게 설한다.
“보살의 출가는 자신이 삭발함을 이름 하여 출가라고 하지 않음이라. 그러면 무엇으로 출가라고 하는가. 만일 능히 대정진(大精進)을 일으키고 그로써 일체중생의 번뇌를 제거함을 보살의 출가라고 이름함 이라. 자신이 승복을 입음을 이름 하여 출가라고 하지 않음이라. 삼독(三毒)에 물든 중생의 마음을 힘써 단절함을 출가라고 이름 함이라.”
보살은 일체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수행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그냥 머리를 삭발했다고 해서 보살의 출가라고 일컫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출가라고 일컫는가. 정진을 크게 일으켜 일체중생의 번뇌를 소멸함을 보살의 출가라고 일컫는다.
또 승려가 입는 가사를 입었다고 해서 출가라고 일컫지는 않는다. 중생의 마음이 탐(貪, 탐욕), 진(瞋, 노여움), 치(癡, 어리석음)라는 삼독에 물드는 일을 온 힘을 다해 단절함을 출가라고 일컫는다는 뜻이다.
형식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민중 한가운데로 뛰어들어 사람들의 고뇌를 자신의 고뇌로 여기고 싸우는 데에 진실한 출가의 길이 있다.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느냐, 지금까지 무엇을 했느냐를 물어야 한다.
신이치는 이러한 고찰을 전개한 다음 참석자에게 힘찬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우리 학회원이 비록 표면적으로 재가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정신적으로는 출세간(出世間)의 사명을 지니고 긍지도 드높이 불법(佛法)유포를 위해 더욱 앞장서서 몸을 던졌으면 합니다.”
열렬한 찬동의 박수가 울려 퍼졌다.
불교의 원점으로 돌아가면 권위나 형식이라는 허식이 벗겨지고 모든 본지가 명쾌하게 밝혀진다. 참석자는 혁혁한 태양의 빛을 받는 마음으로 신이치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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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치는 이어서 사찰의 기원부터 시작해 사찰의 의의를 논하기 시작했다.
석존은 ‘유행(遊行,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수행함)’이라는 방식으로 화도(化導)했는데 인도 전국을 걷고 또 걸으며 민중 속에서 불법을 설했다.
그런데 인도에는 우기(雨期)가 있어 1년 중 석달간은 돌아다니며 수행 할 수 없다. 그래서 우기 동안에는 제자들이 한곳에 모여 수행에 힘썼다.
그렇게 수행한 곳이 사위성의 기원정사나 왕사성의 죽림정사를 비롯한 ‘정사’였다. 그곳은 글자 그대로 수행에 힘쓰고 단련하는 수행자가 묵는 숙사였으며 훗날 사찰의 원형이 되기에 이르렀다.
수행하며 연찬을 심화한 승들은 우기가 지나면 다시 각지로 흩어졌다. 즉 당시 정사는 현재의 사찰처럼 승직에 있는 사람이 그곳에 살며 종교적 의식을 집행하기 위한 곳이 아니었다. 이른바 수행을 위한 ‘거점’이었다.
훗날 인도불교의 중심이 된 나란다 사찰에서는 충실한 연찬과 함께 일종의 대학 기능도 완수했다.
각지에서 수행자가 모여 함께 기거하면서 불교 교의와 올바른 포교자세 등을 배우고 일정 기간을 마치면 각지로 되돌아갔다. 참으로 현대에 전개하는 학회의 강습회나 연수회를 방불케 한다고 할 수 있다.
사찰이 의미하는 ‘가람’은 승가람마(僧伽藍摩, 상가라마)의 줄임 말이며 불도수행에 힘쓰는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였다는 사실에서 유래한다. 또 사찰은 그곳에 모여 불도수행에 부지런히 힘쓰고 성불을 목표로 하는 곳이었다는 점에서 ‘도량(道場)’이라고도 한다.
신이치는 사찰의 본디 의의를 분명히 밝히고 강한 확신을 담아 이렇게 강조했다.
“창가학회 본부를 비롯해 회관이나 연수원은 광선유포를 추진하는 불도실천자가 홍교하고 정진하는 데 중심 거점으로 삼고 모여 대성인불법을 탐구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활력을 얻고 각 지역과 사회로 뛰어나가 사회와 민중을 소생시키는 도량입니다. 즉 사찰의 본지에서 보면 학회의 회관과 연수원도 ‘현대의 사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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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신이치는 “해와 달의 광명이 능히 모든 어둠을 제거하는 것과 같이, 이 사람이 세간에서 행하여 능히 중생의 어둠을 멸하고” (법화경 575쪽) 라는 법화경(여래신력품)의 ‘세간에서 행하여’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세간은 사회를 가리키며 사회의 진흙탕 속에서 싸우지 않는다면 중생의 고뇌라는 어둠을 결코 몰아낼 수 없습니다.
니치렌대성인이 당시 일본 정치 등의 중심지였던 가마쿠라에서 홍교 활동을 전개하신 일도 ‘세간에서 행하여’라는 경문을 그대로 행동에 옮긴 일입니다. 그러므로 세간으로 즉 사회 속으로 불법을 전개하지 않으면 대성인의 실천과 목적관에 역행하고 마는 일을 우려하는 바입니다.
지금 저는 은사 도다 선생님이 1953년 연초에 우리 동지에게 “몸에는 공덕의 비를 받으며 손에는 절복의 이검(利劍)을 쥐고 사자왕(師子王)의 용기를 낼 것을 굳게 믿는다” 라고 하신 말씀이 떠오릅니다.
우리도 눈부시게 쏟아지는 원초(元初)의 공덕이라는 햇살을 받으며 자비의 이검을 굳게 손에 쥐고 올 한해도 사자왕처럼 유연히 창가벚꽃의 길을 개척하고자 합니다.”
공감과 맹세의 박수가 크게 울려 퍼졌다.
신이치는 사회를 떠나서 불법은 존재하지 않음을 철저히 전하고 싶었다.
거친 현실사회 속에서 비난과 중상의 폭풍을 맞으며 발버둥치고 격투하며 끈기 잇게 대화를 나누고 실증을 나타내며 정법을 홍통하는 데에 말법의 불도수행이 있고 진정한 보살도가 있다.
원점을 잃고 초창의 마음과 실천을 잊은 종교는 내용도 없이 빈껍데기처럼 형식만 남고 의식에만 치우치며 관료적이고 권위적으로 변한다. 그리고 민중에게 눈을 부릅뜨며 종교를 위한 종교가 된다. 이는 곧 종교의 타락이며 정신의 죽음이다.
니치렌불법을 결코 그렇게 만들면 안 된다. 신이치는 불법을 엄호하기 위해 직접 대대적인 ‘교학운동’의 깃발을 내걸고 ‘대성인의 정신으로 돌아가라’고 외치며 결연히 새로운 시대를 개척하는 문을 열고자 했다.
☞ 신.인간혁명 24권 ‘엄호(嚴護)’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