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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정예10만 결집① 이누보사키의 ‘수호회’와 ‘야외연수회’(上-2)

작성자버저비트|작성시간19.01.05|조회수984 목록 댓글 0

이케다 선생님의 젊은 날의 투쟁에서 배운다

사제에 살아라!

불멸의 정예10만 결집!

이누보사키의 수호회야외연수회’(-2)

 

3대 회장

 

창가의 기세는 이해 53, 이케다 총무가 3대 회장에 취임하면서 더욱더 속도가 붙었다.

광선유포는 한 사람의 청년이 목숨을 버리면 반드시 이룰 수 있다.” - 이케다 신임 회장의 뇌리에서 은사의 이 말이 떠난 적이 없었다.

회장에 취임하던 날 신임 회장은 일기에 이렇게 썼다.

생사를 초월하여, 금세 일생의 법전을 시작한다.”

 

목숨을 건 굉장한 결심이었다. 그러나 이 결연한 결심을 아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 제3대 회장 취임을 그저 기뻐할 뿐이었다.

취임 직후 신임 회장이 품은 다짐이, 소설 <신 인간혁명>에도 나와 있다.

나는 이제 일본의 진짜 싸움을 시작하려 합니다. 그러나 정작 그 본진인 본부의 분위기는 너무나 해이합니다. 더욱이 그것조차 깨닫지 못한다는 것은 무서운 일입니다.”

 

신임 회장의 생각과 간부의 생각에 이미 커다란 격차가 생겼다.

사제는 호흡이다. 그리고 투쟁은 사제불이의 호흡이다.

신임 회장은 사제의 호흡을 어떻게 청년에게 가르칠 것인지 고심했다.

 

당시 이야기 오카와 키요사치

 

이케다 선생님이 회장에 취임하시기 전의 일이었습니다. 이케다 선생님이 전국 남자부 부대장을 데리고 도다 선생님 묘를 찾아갔습니다.

잊을 수 없는 광경이었지요. 이케다 선생님이 마치 눈앞에 도다 선생님이 계신 듯이 등을 곧게 펴고 묘를 향해 힘차게 보고하셨습니다.

 

지금 이곳에 묘를 참배한 청년들을 대표해 보고 드립니다. 도다 선생님이 맡기신 유명(遺命)을 달성했습니다.”라고 하나하나의 항목을 들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남기신 구상도 반드시 실현하겠습니다.”라고 늠름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마치 한 폭의 대서사시와 같은 광경이었습니다.

스승이 남기신 말씀이 이 정도로 중하고 엄한 것인가.’

저희가 머리로는 알고 있어도 몸으로는 좀처럼 깨닫지 못한 사제의 맹세를 몸소 가르쳐주셨습니다.

 

당시 이야기 요시다 겐노스케

 

이케다 선생님께서는 제3대 회장이 되시고도 실장시절에 맹세한 국사 10의 유언 달성을 위해 진력을 다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국사 10만 결집이 끝날 때까지는 실장의 책무는 끝나지 않는다라고.

그것은 굉장한 기백이었습니다. 그 기백의 지도를 그대로 받은 것이 이누보사키에서의 수호회 야외연수회였습니다.

 

이누보사키

 

730, 31일 이틀간에 걸쳐 수호회야외연수회가 지바 이누보사키에서 열리게 되었다.

장소를 이누보사키로 결정한 시기는 제3대 회장 취임직후였다. 이케다 신임회장이 사색 끝에 이누보사키를 선택했다. 이누보사키는 혼슈의 동쪽 끝에 있으며 태평양의 노도가 용솟음치는 용장하고 광대한 조망을 지닌 땅이었다.

이케다 회장은 말했다.

청년은 기개와 도량을 넓혀 용맹 과감하여라!”

 

6월에 접어들어 수호회 유지(有志)들이 첫 번째 현지답사를 갔다.

풍파가 거센 날 답사하러 간 멤버가 이렇게 기록했다.

태평양을 바라보면서 왜 이누보사키를 연수장소로 선택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라고.

이누보사키는 청년이 광대한 기개와 도량을 기르기에 아주 좋은 땅이었다.

 

수호회에 대한 이케다 회장의 마음은 강하고 진지했다.

나는 남자부 정예 그룹 수호회와 함께 태평양을 바라보는 지바현 조시의 이누보사키를 방문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그리운 곳이다. 수평선 저편에 혁혁하게 떠오르는 태양을 마음속에 그릴 때, 늘 나의 가슴이 뛴다.

그날, 은사 도다 선생님은 우리 앞에 모습을 보이지 못하셨다. 왜냐하면 선생님은 생애 원업을 성취하고 2년 전에 58세로 서거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자인 내 가슴 깊은 곳에는 은사가 지휘하던 모습, 제자를 격려하는 힘찬 목소리가 언제나 늘 생생하게 사제불이의 실상으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선생님이 계시지 않은 수호회는 정말 쓸쓸했다. 그렇지만 나는 광선유포의 진정한 후계자의 길’, 창가의 진정한 사제의 길을 결연히 또 정정당당히 걸어갈 수호회의 성장을 기원하며 그 훈련을 절대로 잊은 적이 없었다.”(수필·인간세기의 빛)

 

당시 이야기 와타베 이치로

 

당시 이케다 선생님께서 마음에 그리신 세계광선유포를 완수하기 위해서는 모든 분야에 걸쳐 인재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힘 있는 청년은 없었습니다.

그런 저희들 청년을 이케다 선생님께서는 엄애(嚴愛)로 감싸며 격려해 주셨습니다. 동서고금의 명저(名著) 등을 통해 만반의 학문을 자세히 가르쳐주셨습니다. 엄청난 지도자교육을 해 주셨다는 것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알 수 있었습니다.

 

광포의 인재이어라

 

본부에 집합한 참석자 중, 한 사람이 회장실로 인사를 위해 갔다. 이케다 선생님은 기대를 담아 말했다.

오늘은 수호회의 날이니 분발하세요라고.

그 장소에서 회장은 권두언집에 휘호를 적어 보냈다.

광포의 인재이어라.”

그것은 수호회 전 멤버에게 기대하는 마음이었다.

 

이케다 회장이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노래 하나를 부르는 데도 흐지부지해서는 안 됩니다. 정열을 품고 불러야 합니다! 청년은 무슨 일이든 온 힘을 다해야 합니다. 노래를 부르는 일도 지도자의 요건입니다. 노래는 이렇게 불러야 합니다.”

 

인마는 소리 없고 풀도 잠자고

가와나카지마에 안개 짙어······”

안개의 가와나카지마를 부르는 늠름한 목소리가 차안에 울렸다.

이어서 백호대’ ‘, 신선조’ ‘일고 기숙사가’ 4곡이 불리어졌다.

4곡 모두 은사 앞에서 몇 번이나 부른 추억 깊은 노래였다. 은사가 결성한 수호회였다. 그래서 그 수호회에 진정한 사제를 가르치고자 했다.

 

야외연수회 참석자가 차 안에서 있었던 추억을 이렇게 썼다.

이케다 선생님 지도를 듣고 정말 그렇다고 느꼈다. 그러나 나는 만족스럽게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있을까? 노래 하나하나에는 깊은 마음이 담겨 있다고 느꼈다.

이케다 선생님의 노래를 듣고 가슴이 뭉클했다. 선생님의 노래는 힘차고 웅대하여 한 소절 한 소절을 이렇게 불러야 한다고 강하게 가슴 깊이 느꼈다.”

 

늦은 저녁식사

 

당시의 일을 식사 담당이었던 멤버가 적고 있다.

준비에 착수하기 위해서 정해진 장소로 갔습니다. ‘식사를 옮기겠습니다.’라고 말하자 선배가 아직 식사준비는 되어 있지 않다라고 걱정스럽게 말했습니다.

이럭저럭 하는 사이에 이케다 선생님께서 식사 자리에 도착하시고 말았습니다. 식사를 만들고 있는 다과점과 연락을 취하자 아직 되지 않았다라는 것. 시간에 맞출 수 없다. 식사를 가지러 전원 함께 다과점으로 향했습니다.”


당시 이야기 츠치야 마코토

 

저는 수호회 1기생으로서 참석했습니다. 그러나 이 무렵 수호회는 결성 당시의 긴장감이 사라지고 구도심이 희미해진 분위기였습니다.

그런데도 저를 포함한 선배 간부들도 자신이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지 않고, 마치 위로여행이라도 온 듯이 태평스럽고 가벼운 분위기를 감돌게 하고 말았습니다.

이케다 선생님은 저희에게 도다 선생님이 보셨다면 얼마나 개탄하셨을까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은 항상 도다 선생님이 눈앞에 계신다는 마음으로 이 수호회에 임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염원하던 회장에 이케다 선생님이 취임하셨다는 사실에 안도해 버렸지요. 정말 한심한 제자였습니다.

 

한번 뵙고 싶다

 

등대 근처 식당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현지 조시의 동지들 10여 명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이케다 선생님의 방문 소식을 듣고 한번이라도 뵙고 싶다.’는 마음으로 기다린 것이다. 아직 이케다 회장을 만난 적이 없는 멤버들이었다.

 

당시 추억을 고바야시 데루코 씨가 이렇게 썼다.

잠시 후 식당에서 두 세분이 나왔습니다. 가장 앞장선 분이 우리 쪽으로 다가오셨습니다.

제가 이케다 입니다.’ 바로 선생님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우리를 보고 학회원임을 알고 말을 걸어주셨습니다.

저와 남편은 아직 한 번도 뵌 적 없는 선생님을 멀리서라도 좋으니까 꼭 한번 뵙고 싶어서 아이들을 데리고 기다렸습니다.

 

선생님은 저를 보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에 대해 소개해주십시오.’

저는 가슴이 두근두근하여 횡설수설하고 말았습니다.

선생님은 자녀가 많으시군요.’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보물입니다. 소중하게 키워주십시오. 어떠한 일이 있어도 퇴전하지 않도록 제가 지켜보겠습니다.하고 격려하며 우리 아이에게 용돈을 주셨습니다.

우리 가족은 모두 의논하여 그 돈으로 장식용 나무배를 샀습니다. 그 배는 지금까지도 우리 집의 보물입니다.”

 

한심스러운 모습

 

현지 동지를 격려한 이케다 회장은 캠프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예정된 식사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회장은 늦으면 모든 분에게 미안하다며 걸음을 재촉했다. 캠프장에 도착하니 식사 준비로 악전고투하는 담당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 상황이 <수필 신·인간혁명>에 묘사되어 있다.

그것은 제3대 회장에 취임하고 얼마 되지 않은 19607월에 있었던 일이다. 나는 지바의 이누보사키에 서서 쿠로시오 해류가 용솟음치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남자부 인재그룹인 수호회야외연수를 하기 위해서였다.

이 바다 저편에는 세계 평화의 제일보로서 내가 광포의 투쟁을 개시할 미국 대륙이 있다. 그 태평양의 욱일을 받으면서 앞날을 열 청년들과 연수를 하고 싶어서 내가 직접 고른 장소가 이누보사키였다.

도다 선생님이 목숨을 깎아 단련해주신 전통의 수호회다. 스승의 존귀한 뜻을 함께 이어받아 나와 함께 광선유포의 모든 책임을 짊어지고 분투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이누보사키에 도착한 멤버들은 어딘지 모르게 긴장이 풀린 공기가 감돌았다.

모두 캠프파이어에 둘러 앉아 저녁식사를 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준비가 몹시 지체되어 식사 담당 청년들은 악전고투 중이었다.

그런데도 한가하게 잡담에 열중하거나 식사 담당을 책망할 뿐,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책임한 간부도 많이 있었다. 어려움을 겪는 동지를 도와주려고 하지 않고 저것은 그 사람들이 할 일이다.’라고 말만 하는 한심스러운 모습이었다.”

 

당시 이야기 하라다 다케시

 

광장에서 저녁식사 준비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좀처럼 식사는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빈틈없이 깔린 돗자리 위에서 대기하고 있던 저는 무심코 늦는데, 배가고프다라고 중얼거렸습니다. 실은 바로 근처에 이케다 선생님께서 계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엄한 눈을 하고 계셨습니다. 그때 저는 제멋대로인 자신, 철저하지 못한 신심을 맹렬히 반성했습니다.

 

오합지졸(烏合之卒)

 

캠프장 수십 미터 앞에 있는 풀숲에서 연수회를 응시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이케다 선생님이 이누보사키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몹시 기뻐하며 회장을 뵙고 싶어 모인 조시의 동지들이었다.

그들은 선생님 곁으로 와도 좋을지 망설이는 듯한 모양이었지만 이내 마음을 정했는지 일행 중 한 사람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때의 상황이 <수필 신·인간혁명>에 나와 있다.

조시 현지의 다기찬 동지가 나를 한번 만나보고 싶어 찾아와도 그들을 대응한 간부는 오늘은 수호회 연수라서 안 된다, 안 된다라며 거만하게 함부로 말했다.

그래서 무슨 간부란 말인가, 아주 하인 근성이라며 나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한심스러웠다. 정말 분개했다.

 

고투하는 벗을 눈앞에 두고서도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무자비한 인간이 모여 무엇을 위해 연수를 한단 말인가!

가장 존귀한 부처의 사자인 창가의 동지를 소중히 여기고 진지하게 지키지 않으면서 무엇을 위한 광선유포라고 한단 말인가!

표면적으로만 간부인 무책임한 방관자, 잘난척하는 관료주의자가 늘어난다면 학회는 망한다. ‘마치 패잔병 같지 않은가!’

 

나는 수호회 멤버들에게 깊은 기대를 걸고 있었기에 엄하게 질타했다.

오늘 여러분의 모습에서는 광선유포에 대한 책임감이나 구도의 숨결도 느껴지지 않는다. 도다 선생님이 오늘 여러분의 모습을 보셨다면 뭐라고 하셨을까. 선생님과 한 맹세를 망각해버린 수호회는 이미 오합지졸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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