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향신료 무역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합니다.
향신료라 하면 인도의
후추 암보니아의 육두구 와 메이스 그리고 테르나테의 크로브라 불리는 정향을 둘 수 있습니다.
대항해시대에는 북해엔 보석 지중해엔 향신료라는 공식이 있는 듯 합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는 전혀 아니였습니다. 향신료 무역을 주도 했던 것은 네덜란드와 잉글랜드였습니다.
ㅎㄷㄷ
게임과는 동떨어진 이야기이지요. 잉글랜드와 네덜란드가 싸우는곳은 동남아시아가 아닌 보석산지인데 말이죠. 동남아시아는 에습과 폴투가 격전을 벌이던??? 곳(벌였나??? 안벌렸슬 수도 있습니다) 아닙니까
향신료의 후추의 경우 런던 도매상에서 1파운드당 8펜스(12펜스는 1실링 20실링은 1파운드 현재 금액으로 환산해 본다면 1파운드는 약 15만원 1실링은 7500원 1펜스는 625원입니다. 이것은 4천파운드를 6억원으로 환산했을 때 의 금액.)이였으니 도매가격으로 약 5000원에 1파운드의 후추를 살 수 있었다고 합니다,(파운드의 무게를 알고 싶으시면 아마도 선원들은 뭘 먹었을까를 참조해주세요)
후추가 싼이유는 공급량이 매우 많아서 였지요. 후추는 여타 다른 향신료완 다르게 사방 팔방에서 키울 수 있었거든요.
이런 후추를 유럽사람들은 얼마나 먹었을까요?
동인도 회사에서는 대략 유럽에서 1년간 소비할 후추의 양을 720만 파운드라고 생각했습니다.
대략 계산을 해보니 이정도의 후추를 팔면 톤으로만 108톤의 은을벌어들일 수 있었습니다. 이때는 주로 은화를 이용했거든요.간혹 금화가 사용되기 도 했습니다. (EX영국의 기니 금화 기니만에서 채굴한 금으로 만들어서 기니 금화라고 했다 더군요 참고 1기니는 21실링에 해당합니다. 1파운드 1실링 그리고 유럽에서 제일 신용있는 금화였습니다. 대항해시대는 베네치아의 은화인 두캇을 사용하지만요. 이시대의 금화 은화는 같은 무게의 귀금속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바로 영국의 기니 금화 입니다. 대략 1파운드 1실링 즉 21실링에 능력을 가진 금화였습니다. 기니만에서 채굴한 금으로 만들어서 기니 금화입니다. ㅎㅎㅎ
그렇다면 향신료는 어떠 했을까요. 후추의 수입량으로 볼 때 단연 으뜸이지만 가격은 안습이였지요. 쉽게 말하면 영국의 일용직 노동자가 1실링 3펜스(약 1만원)를 받았으니 하루일하면 후추 1파운드를 도매시장에서는 구입할 수 있었다는것입니다.
이때 향신료를 대표할 만한 것은 바로 육두구와 메이스 &크로브 였습니다.
1517년 관동에 상륙한 토메 페리스(포르투갈인 최초 중국대사)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신은 반다 제도는 메이스를 위해 몰루카 제도는 정향나무위해 만드셨다.”이 두종류의 향신료는 이 지역 왜에는 자라지 않습니다.
이러한 향신료의 가격을 알아 봐야겠지요.
대략 가격은 육두구 메이스 정향유 계피는 파운드당 6~15실링이였습니다. 허걱
대략 최소 45000원~최고112500원까지 했다는것이군요.
네달란드를 동인도 회사의 기록에 보면 전체 수입량은 약 18%가 육두구와 메이스 정향유 그리고 계피를 사는데 사용하였고 53%는 후추가 차지했습니다(가격은 1620년대 기준)
하지만 가격의 차이가 대략 31배정도 차이가 나니 주되 무역은 후추이나 네덜란드 동인되 회사의 주무역은 육두구 메이스를 기준으로 하는 향신료 무역이였던 것이지요. 후추는 대중음식이 되다 보니 gg
이러한 무역은 잉글랜드 동인도 회사의 약진으로 점점 쇠락하게 됩니다. 런던이 시장의 후추 가격은 날이 갈수록 떨어졌고.한때 18펜스하던 후추는 1675년에 이르러는 7.2펜스까지 떨어져 버렸습니다.
또한 후추대신에 잉카 로즈 혹은 툼바가 무역을 할 때 받는 생각의 배송퀘스트 중에 생강이 서인도 제도에서 대규모로 재배되어 2펜스의 가격으로 유입되어 후추대용품으로 사용됨에 따라 비싼 후추는 잘 먹지 않게 되었습니다. 2펜스(1230원)이면 고기의 누린네를 잡을 수 있는데 5천원주고 왜 사겠습니까?
뭐 후추가격은 나중에 14펜스로 올라가게 됩니다. 무역량이 줄어서 후추가격이 올랐거든요.
이러한 것을 보면 유료때 리스본 작업장 육메가 2만 두캇이상으로 했다가 작금에 시대에 1만9천 두캇으로 변해버린 것을 보면 알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설날에 있었던 작업장 고향으로의 귀향에따른 공급의 감소로 다시 육메가 2만 두캇으로 오른 것을 보면 대항은 보이지 않는 손이 정말로 있는 것 같습니다. ㅎㅎ
이러한 향신료 무역은 동인도 회사 초창기때 주된 사업이 되고 나중에는 주로 켈리코&모슬린이라고 불리는 직물의 수입하게 됩니다. 이러한 것은 나중에 후반에 차를 수입하게 됩에따라 향신료는 더더욱 적어지게 됩니다.
참고로 제가 계산한 돈의 가격은 나폴레옹전쟁때의 화폐로 계산한 것이므로 오차가 클 수 있습니다. 참고하길 바랍니다.
허접한 글이지만 재미있게 읽으셨으면 짮은 댓글이나 써주세요. 감사합니다.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mr2004an 작성시간 10.04.08 헛! 향신료에 대해서 저의 주워먹은 약간의 지식이 +.+
육메가 유럽에서 그 어느 향신료보다 가격이 높게 책정된 이유는 당시의 전염병(흑사병)의 치료제료 쓰인다는 소문에 의해서 그 비싼 가격에도 없어서 팔지 못했다고 하네요(진짜 효과가 있는지는 모름). 실제로 당시에 후추와 육메의 가격차이는 2.5배정도 되었대요.
내가 아는건 딱 이것만 -_-;;
암튼 촘스키님의 넓은 지식은 대박인듯... 담엔 툼박좀 알려주세요 -0- 그 못난이가 왤케 비싼건지 매우 궁금함... -
작성자소다쥬스 작성시간 10.04.08 잉글의 향신료와 밀접한 관계가있는...동인도회사 역사..
http://blog.naver.com/jjy0501/100067924664
내용이 방대해서리..링크;;
이야기 6이나 7까지만 읽으셔두되는..
읽어보세요 매우재미있어요.
쓰신분이 책을 쓰시려다가..블로그를 통해서 쓴 내용인듯 -
작성자향기짱인듯 작성시간 10.04.09 재미있게 읽엇습니다~ 이런 글 자주 올려줏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