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시작
(이당시 예비군은 애국심이 넘쳐흘렀습니다.)
시민들은 열광 했습니다. 전쟁! 그것은 어쩌면 아름답고(전혀 아름다울리 없지만) 무엇인가를 아름답게 보여주었습니다.(전쟁은 전쟁을 격지 않은 사람들에게 유흥거리 일뿐이지요)
시민들은 애국적인 노래를 부르면 전쟁을 찬성했습니다.
프랑스의 대사 모리스 팔레올르그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그곳에는 엄청난 군중이 차르를 표현한 깃발과 휘장,, 조상 초상를 들고 집결해 있었다. 황제가 발코니에 나타났다. 전 궁중은 즉시 무릎을 꿇고 러시아 국가를 불렀다. 차르는 신이 임명한 전제군주였으며 민족의 군사적 정치적 종교적 지도자였고 그 신체와 영혼의 절대적인 주인이였다.”라고 표현했습니다.(하지만 이들이 러시아 혁명을 일으키잖아.)
(히틀러는 오스트리아 사람으로 오스트리아가 싫어서 독일에서 입영합니다.)
독일에서는 바이에른의 수도 뮌헨의 오데온 광장에는 동원 선포를 듣기위해 똑같은 군중이 모였습니다. 이중에 아돌프 히틀러도 있었습니다.베를린에서는 카이저 빌헬름2세는 암회색 제복을 입고 왕궁의 발코니에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열광했습니다.
“독일은 중대한 시점을 맞이했다.! 사방의 질시하는 민족들이 우리로 하여금 정당방위에 나서도록 압박하고 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검을 들고 있다.....그리고 이제 나는 그대들 모두에게 교회에 가서 하느님 앞에 무릎을 꿇고 우리의 용감한 군대를 도와주십사 기도할 것을 명한다.!” 빌헬름은 130편을 낭송했고 랍비(유대교의 일종의 성직자)는 승리를 위한 기도회를 이끌었습니다.(이것은 무엇인가. 아니러니 히틀러는 유대인을 800만을 학살했지요)
(전쟁을 미화하는것은 개드립정도가 아니라 패드립입니다.)
연합국도 만찮가지였습니다. 전쟁은 빨리 끝날것이라고 생각했고 해외여행을 한다는 개념이였습니다. 보충대로 들어가긴 전날은 자유일로써 가족과 고용주들에게 안부의 인사와 작별을 고했습니다.
그리고 프랑스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인사말이 등장했습니다.
“당신은 무순요일인가.?”
“나는 자랑스럽게도 첫날이오”
“나는 불행하게도 아홉 번째 날이오”
“하하하 재미보기 힘들겠구먼! 그대가 동원될쯤에는 모든 것이 끝났을것이오”
“하하하하”
이렇게 되는 것이였습니다.
사람들만 동원된 것은 아니였습니다.
아직은 자동차가 대량생산되기 전이고 유럽 전역에서 수십만 마리에 말이 소집되었습니다.(말은 등록대상이였고 현재 우리나라도 4륜구동자동차는 소집대상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영국육군(영국군은 징병제 국가였습니다. 단발식 볼트액션소통을 독일군의 2배이상의 사격 속도를 보여주었습니다.)도 16만5천마리를 끌어모았고. 오스트리아는 60만마리. 독일은 71만마리(2차세계 대전때에도 독일군은 말을 징집했습니다. 기계화군단이라고 생각하시겠지만 군마에 의한 수송을 중시여겼습니다.)러시아는 기병사단만 24개였으므로 100만마리이상을 말을 소집했습니다.
참모장교들은 말과 병력의 비율을 1:3으로 했습니다.
귀족장교들은 자신의 애마에 여행물품챙겼습니다.
전쟁의 개념은 일종의 여행이였고 흥분이였습니다. 이들에게 전쟁은 살육이 난무하는 것이 아니라. 여행으로 향하는 길이였습니다.
슐리펜 계획은 몰트케에 의해 수정이 가해집니다. 그리고 전쟁이 시작되지요.
독일군은 전쟁 계획대로 전쟁을 진행하기 위해서 벨기에 중립을 지킬 이유가 없었습니다.
(방학생활계획은 짜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지키라고 있는 것이다.-초등학교 담임 선생님)
그러기 위해서 네덜란드와 아르덴 지역 사이의 모즤강 유역에 나있는 비좁은 회랑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아르덴 지역같은 경우 유럽에 있는 울창한 산림지역이고 이 지역은 2차세계대전에도 독일군이 똑같이 2번이나 공격의 시작된 지역입니다. 한번은 프랑스 침고 이였고 한번은 아르덴 대공세였지요
1차세계대전의 독일군은 아르덴 숲으로 진격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회랑을 돌파해야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리에주를 점령해야했지요.
하지만 벨기에도 바보는 아니였습니다. 리에주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기에 리에주를 지키기위해서 요새 밭을 만들어 놓은것입니다.
이러한 요새는 21cm의 중포의 포격에고 견딜 수 있는 요새를 였습니다. 독일은 이곳을 돌파하기위해서 최정예여단 6개와 305mm 중포와 420mm중포를 가지고 왔습니다.(너희의 방어력과 나의 공격력은 완전 상하관계에 있다)
(마지노 요새 사실 히틀러가 마지노요새로 진격했으면 끝났습니다.)
하지만 몇 대 없었고 요새는 12개나있었습니다. 즉 공세를 지연시켜서 프랑스군과 영국군이 오면 역관광을 하는 작전으로 간것이지요.
그래서 벨기에의 국왕은 리에주와 나무르지역을 지키도록 명령했습니다. 하지만 총참모장은 총사령관인 벨기에왕과 다른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벨기에의 수도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그래서 안트베르펜(엔트워프-잉글랜드의 자존심 이곳에 얼마전에 보니 1천억을 투자하신 굇수분이 계신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철수 할수 있는 지역에 배치하는 것이 더 낳다는 생각을 했습니다.(흔히 머리나쁘고 부지런한 사람은 죽이라고 1차세계대전의 영웅 한스 폰 젝트 장군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유능하고 부지런한 사람은 참모로 유능하고 게으른 사람은 지휘관으로 게으로고 멍청한것은 일반 부하로 머리나쁘고 부지런한 사람은 즉각 배제하라)
그래서 전쟁 발발시 이 중요한 요충지에 벨기엔 군은 2개의 사단밖에 보낼 여력이 업었습니다.(즉 스타에서 입구를 포기하고 본진내부에서 싸우는 것을 선택한것입니다.)
하지만 입구는 좁았고 요새화 되어 있었습니다. 벨기에군은 철저하게 방어를 시작한것입니다.(입구에 병력이 있는데 그것이 다크템플러 였어.으악!)
요새에 의해서 피해가 늘어나자 평화는 전쟁과 전쟁사이의 전간기일 뿐이다라는 말로 유명하신 에리히 폰 루덴도르프장군이 구원투수로 등장하게 됩니다. 그러자 요새는 함락되었습니다.
8월 7일에 말이지요
독일군은 리에주로 입성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요새도 12일까지 전부 평정되었습니다.
벨기에 군은 혼란에 빠졌습니다. 연합군은 오지 않고 있었고 독일군은 입구를 돌파했습니다.(그러기에 입구에 병력을 증강했어야지)
그래서 벨기에군은 엔트워프로 퇴각을 선택합니다. 8월 18일에 말이지요
독일군은 20일에 벨기에수도 입성합니다.(그리고 독일군 장군은 이런말을 했겠지요 벨기에 국왕을 뵐기회가 있겠군-본격 2차세계대전 만화에 롬멜장군이 하는 말입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토끼는 매우 시간에 쫒겨 있었습니다. 독일군도 작전계획대로 움직이기 위해서 움직여야 했습니다.)
독일군은 생활계획표그대로 진격을 하고 있었기에 치안을 안정화시킬 여력이 없었습니다.(지금 12시 59분 나는 1시까지 집에가야해! 지금 무단횡단을 하면 갈 수 있어라고 생각하는 어른아이가 되었습니다. 어린아이의 오타 아닙니다.)
독일군은 그래서 후방에 공포를 뿌립니다.루벵시에서 저항운동을 벌이자. 독일군은 곧바로 도시를 불태워 버립니다.
벨기에의 저항은 이미 슐리펜 계획에 들어가 있는 오차범위안에 들어와 있었고(모든 것이 계획대로군)
독일군은 프랑스로 진격을 개시합니다.
프랑스도 작전계획이 있었습니다. 전쟁이 발발하자마자 프랑스도 계획대로 움직였습니다.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빼앗은 알자스 로렌지역에 대한 공세를 시작한것입니다.
하지만 독일군의 진격에의해 도망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포장군이 이끄는 알자스군은(빼았겨서 고향을 등장 프랑스인들로 구성된 군인) 물루즈를 점형했습니다. 하지만 프랑스군 총사령관은 예비대가 필요했고 알자스군은 차지한 지역을 포기하고 물러나가 됩니다.
(예비군과 예비대는 다른 개념입니다. 예를 들어서 1사단 2사단 3사단이 전선면을 지키고 있고 4사단이 예비대로 있을 경우 1사단이 위험하면 1사단 대시 4사단이 치고 들어와서 1사단의 작전위치를 보조하고 1사단이 재정비할 시간을 보장해주는것이지요 )
(위에서 부터 코사크 영국의 영원한 용병 구르카 스코틀랜드 하이랜더 연대 미군, 휴가짤린 병장????러시아를 이긴 체첸인. 특수부대 흔히 우리가 부리는 전투종족 마샬레이스!)
8월 14일 뒤벨장군의 프랑스군 제1군과 카스텔노 장군의 제2군이 로렌지역에 대한 공세를 시작합니다.(독일군은 이미 벨기에 리에주를 돌파했다 이노마)
독일군의 좌익은 공간방어를 통해서 프랑스군을 내륙으로 들어오게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독일의 주공이 이루어지는 우익으로부터 병력이 멀어지게 되고 우익의 병력의 농도가 옅어지게 되는것입니다.)하지만 독일군은 전투종족이였습니다. 바이에른 루프헤히트 왕세자(독일은 황제국입니다. 황제국은 다양한 제후국을 거느리고 있는 법이지요 독일제국은 완벽한 통합이 되지 않고 있던 시점이였고 제후국들은 지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는 반격작전의 제안합니다. 자신의 6군과 헤링엔의 7군이 연합해서 프랑스군의 공격하면 이길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제안을 했고 몰트케는 우왕 생각 좋으시네요. 허가를 내렸습니다.
프랑스군은 20일(벨기에 수도 함락)에자르부르크와 모랑주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반자이돌격<<<<<넘을수 없는 사차워의벽(사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점이 4차원인데 말이지요. 시간과 공간은 붙어 있는 개념인지라.잡설은 때려치우고)<<<<<기관총의 화력을 느끼게 됩니다. 뼈저리는 교훈은 프랑스군은 요새선으로 물러나게되고 독일군에게 반격을 가함으로써 독일군은 최후의 한방을 날리는데 실패하고 전선이 고착됩니다. 조르프(프랑스군 총사령관)은 전선이 고착화 되자 독일의 주공을 막기위해서 좌익에 병력을 증강 하게 됩니다.(하지만 조르프는 병력의 규모를 몰랐고 아르덴 지역을 향해 공격을 개시하라고 했지만 독일군에게 의해서 크게 당하게 됩니다.(역시 멥핵이 필요해하지만 이때는 비행기도 없잖아 우린 아마 안될 거야)지원군이 안온 것이 아니라 못온 것이 되는것이지요.
프랑스의 삽질보다 독일의 삽질이 더큰 문제였습니다. 독일군은 대회전을 하여서 프랑스군은 포위 격멸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가장 밖에 위치한 부대에는 공격적인 전술을 펼치는 클루크장군을 배속한것이였습니다. 하지만 참모가 참모가 완전한 신중을 가지고 있는 장군이였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스즈미야 하루히에 나오는 화자이자 주인공 쿈입니다. 하루히에게 춧코미를 날리는것이지요)
클루크행동에 뵐로브의 츳코미는 클루크 대장(상급-독일군의 장군체계- 상급대장-대장. 중장. 소장 대령 중령 소령 상급대위 대위 중위 소위 )
은 상처를 받았고 진격이 느려졌습니다.(너는 나에게 상처를 주었어)
다음이야기는 나중에 올리겠습니다. 이제 본격적인 전쟁으로 가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