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복지회관 강의에 열심히 나오시는 보살님 중에
'왕언니'라 불리는 분이 계신다. 올해 연세가 여든 다섯..
그런데 오늘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일전에 김장을 해서 출가한 딸을 불러 승용차에 실어 보냈는데
분명 도착할 시간이 넘었는데도 '잘 도착했다'는 전화가 없었다고 한다.
언제나 친정에 왔다 가면 도착했다고 꼭 전화를 하던 딸이었는데..
은근히 걱정이 돼서 전화를 해봤더니.. 신호는 가는데 받질 않더라고..
상황이 이쯤 되니, 이젠 걱정이 아니라 불안해서..
별별 생각이 다 들더라고 한다.
그래서 얼른 정좌를 하고 앉아
'옴마니반메훔' 염불을 했더니..
불안하던 마음이 차차 가라앉으면서..
'그래 뭐 별일이야 있겠어? 전화하는 걸 잊었겠지..
전화 받을 수 없는 어떤 사정이 있겠지..'
이렇게 마음이.. 한 생각이 돌이켜지더라고 한다.
그래서 편안해졌는데..
잠시 후,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하도 피곤해서 오자마자 목욕탕엘 갔는데
전화한다는 걸 깜빡했고.. 목욕중이라서 전화를 못 받았고.. 죄송하다고..
그 이야길 들려주면서 왕언니께서 한 마디 덧붙이셨다.
"아이고, 부처님법 없었다면 어찌 살았을까 몰라.. ㅎㅎ"
언젠가 종범스님께서 이런 법문을 하신 적이 있다.
우리 중생들은 그저 항상, 껄껄.. 지지.. 까까.. 하면서 산다고.
과거에 다 지난 일 생각하면서, '아이고 그때 이랬을 껄, 저랬을 껄..' 하면서 후회하고
미래에 오지도 않은 일 생각하면서, '아이고 이러면 어쩌지? 저러면 어쩌지?' 하면서 불안해 하고
그리고 현재 일은 딱 원칙과 지혜가 없어서, '이럴까? 저럴까?' 고민하면서 헤매고
이렇게 사는 게 우리 중생의 인생살이라고..
정말 그때 왕언니 보살님도 딸 생각하면서..
혹시 얘가.. 이러면 어쩌지? 저러면 어쩌지? 하면서 불안해 했던 것이다.
그런데 딱 앉아서 염불을 하니까..
과거로 미래도 돌아다니던 마음이 점차 오롯이 '지금 여기'로 돌아오니
쓸데없는 상상, 공상, 망상.. 번뇌들이 봄날에 눈 녹듯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것이 수행의 효능이며, 수행의 원리이다.
-햇빛엽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