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한 미국인 학생이 나에게 상담을 해왔다. "선사님, 괴로움이 있는데요." "무엇입니까?" "저는 멋있는 여자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돈도 많이 벌고, 좋은 직업도 갖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제 능력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참선한다고 앉아 있으면 저는 계속 이런 생각만 들어요. 여자 친구, 돈, 직장, 여자 친구, 돈, 직장..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습니다. 겉으로는 불경을 외면서도 속으로는 계속 여자 친구, 돈, 직장만을 되뇝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더 크게 내가 원하는 것들이 내 안에서 울려 퍼집니다. 고통스러워 견딜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런 상황에서는 사실 참선 수행이 잘 먹혀들지 않는다. 마음속에 집착이 보물처럼 들어 있어서 다른 아무 것도 들어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에게 오히려 이렇게 조언했다. "지금보다 더한 고통이 필요합니다." 그러자 학생은 당혹스런 표정이 되었다. "더 많은 고통을 겪으라니요. 저는 이미 무척 힘듭니다." 나는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더 많은 고통을 겪으면 여자 친구도 생기고 돈도 벌고 좋은 직장도 생길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매일 1천 배를 하고, 관세음보살을 5천 번씩 외세요." "과연 그렇게 하면 제가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을까요?" "중국 속담에 이열치열, 이한치한이라는 말이 있지요. 고통은 고통으로 치유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당신은 지금 힘들어 하고 있지만 그 고통은 깨끗하지 않은 것입니다. 1천 배를 하고 관세음보살을 외는 것도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깨끗한 고통입니다. 고통을 다른 고통으로 치료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본래 당신의 고통은 사라지고 지혜가 생길 것입니다." 그 학생은 내 말을 따라 1백 일 동안 열심히 절과 염불 수행을 했고 나중에 거짓말처럼 여자 친구와 일자리가 나타났다. 그리고 나는 그에게 좀 더 깊은 수행을 권하여 불법의 이치를 알도록 이끌어 주었다. 이와 같이 어떤 소원을 이루기 위해 시작한 수행이라 하더라도 일단 수행을 시작하면 수행에 관하여 이야기를 할 수 있고 그 결과로 상당히 높은 수준까지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 만든 작은 세계에 갇혀 산다. 마치 모기가 작은 병 속에 들어가 '앵앵' 탈출구를 찾듯 모든 인생은 이 고통의 연옥에서 벗어나기를 바라고 있다. 자기 마음속에 강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들이 자유로운 인생을 사는 데 방해가 된다. 연옥에서 빠져 나오려고 발버둥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감각에 더욱 집착한다. 무상을 모르기 때문이다. 이 세상 모든 고통은 스스로 만든 것이다. "늙는 게 싫어." "그와의 관계는 끝났어. 너무 비참해."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니 믿어지지 않아." 이 세상이 결국 무상하다는 것을 알면 고통에서 헤어나올 수 있지만 모르면 집착하게 된다. 그 결과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오히려 계속 고통을 만들어가면서 살 뿐이다. -숭산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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