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전 명상할 때 보았던 과거생의 아버지로 보이는 콧수염이 많이 난 남자가 과거생의 오온인 갓난아이를 들어 올리는 모습을 보았는데 오늘도 역시 유사한 장면이 보인다.
그리고는 첫 번째 전생의 어머니의 태에 다시 들어갔다. 한 가지 이상한 것은 아버지는 보이는데 어머니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태에 들어 다시 시간을 거슬러 자궁안의 밝음과 어두움, 두근거림과 안정감을 느끼면서 첫 번째 전생의 재생연결의 순간으로 올라갔다. 역시 빛이 밝아졌고 30가지 물질의 생성을 보았다.
하지만 금생처럼 구분하는 것처럼 확연히 구분되지는 않았다. 아마도 마음집중의 힘이 약해졌기 때문은 아닌가 추측해 본다.
재생연결의 순간을 넘어 두 번째 과거 생의 마지막 죽음의 순간에 떠오른 것은 합장하고 있는 여인의 모습이었다. 어제 그리고 이틀전에는 애기를 낳고 있는 산모의 옆에서 산모를 도와주는 이미지를 보았는데 이 죽음의 순간 앞에 있었던 삶의 장면인 듯하다.
오늘도 아침명상이 끝나가고 있는 무렵에 많은 눈물을 흘렸다. 눈을 감고 있어도 흐르는 눈물은 그치지 않았다. 명상을 시작하기 전에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게 해 달라며 기원하고 촛불을 밝히는데, 명상을 마치고 눈을 뜨는 순간 촛불은 마지막 빛을 내며 꺼지고 있었다.
여러가지의 현상계는 업이 들판이고 알음알이가 씨앗이고 갈애가 수분이 되어 꽃을 피우는 것처럼 하나의 현상계는 서로가 영향을 주고 받으며 존재한다.
오늘은 스승이신 우레와따 스님께 전생을 본다는 것, 전생을 기억하는 것에 대해 이러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우레와따 스님께서 답하신다.
"이러한 수행법은 상응부경전에서 부처님께서 가르친 방법입니다. 나의 바왕가(마음의 문)는 전생의 바왕가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통로를 따라 올라가면 과거의 나의 몸과 마음을 볼 수 있으므로 그 때의 나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죽음의 순간을 보았다면 그 죽음의 순간에 떠오른 생각이 새로운 생을 어떻게 일으키는지, 어떠한 인과가 있는지 통찰지로 보려고 노력하십시오.
마치 손가락을 움직이려는 의도가 먼저 움직이고 손가락이 움직이는 것처럼 순간에 떠오른 생각은 새로운 생을 일으킵니다.
상응부경에 "비구여 수많은 과거 존재의 무더기를 통찰자로 회상함으로써 식별할 수 있는 사문과 바라문이 있다.
그러한 사문과 바라문은 5가지 취착의 무더기(오온) 또는 하나의 취착의 무더기를 통찰지로 회상할 수 있다." 는 것을 근거로 하는 것이다.
이 경전에는 전생을 기억하는 이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숙명통이 아닌 통찰지(위빠사나 수행)로 회상하는 것을 의미하고 있으며 숙명통에서 보는 종족, 음식, 피부등과 같은 것을 보는 것이 아니다. 아비담마와 위빠사나의 대가이신 레디 사야도(미얀마 고승)는 사람이 전생을 기억하는 것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이 자기의 과거 존재를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까?
-레디 사야도..물론이죠. 이것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업과 관련된 불교의 가르침에 따른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을 태어남으로부터 존재를 기억하는 이성적 존재라고 부릅니다.
다만 어려서 죽은 어린이, 늙고 노쇠하여 죽은 자들, 마약과 음주에 강한 중독이 된 사람들은 사람으로 태어나도 자기의 전생을 기억을 못합니다. 임신기간 중에 산모가 아팠거나 혹은 육체적으로 심한 고생을 하였거나, 무도한 행동 혹은 조심성 없는 행동을 하여 탯속의 어린아이가 기절하고 놀라는 경우 그들의 전생에 관한 기억은 상실됩니다.
다음의 경우는 전생에 관한 기억을 갖고 있습니다. 인간세는 아니지만 천신, 범천, 혹은 지옥에 태어난 자들은 그들의 전생을 기억합니다. 건강하게 있다가 사고로 갑자기 죽은 사람들이 그들을 잉태한 어머니가 건강하고 깨끗하게 살았고 조용한 여성이라면 다음 생에서 이러한 기능을 보유하거나 갖게 될 수도 있습니다.
안정된 삶을 살았고 공덕을 짓는 삶은 살았으며 그들의 전생에서 이러한 능력을 얻기를 자주 기원하고 노력한 사람들도 종종 이러한 능력을 얻습니다. 마지막으로 붓다, 아라한 그리고 성인들은 숙명통이라고 알려진 신통력을 얻습니다.
-정명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