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처승(帶妻僧) - '부인을 허리에 차고 있는 스님'이라는 뜻, 결혼한 스님을 폄하하는 표현. 일본불교도 원래는 독신주의였지만 메이지유신 때 천황주의를 확립하기 위해 그동안 막부하고 결탁되어 있던 불교를 억압하고 신도(神道)를 높이면서.. 승려의 결혼과 육식을 허용함. 한 번 둑이 무너지면서 결국 대처승 문화로 바뀜. (만약 어느 한 절에서 비구와 대처승이 갈등하면 가족의 생계도 걸려 있기 때문에 대처승이 이길 승산 매우 높아.. 비구는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 일제시대에 일본불교의 영향으로 우리 불교도 대처승이 96%까지 증가. 영국이 인도 식민지 경영할 때 소수였던 이슬람을 지원해서 기득권 힌두교를 대항케 하여 작은 힘으로도 인도통치를 수월하게 했던 것처럼 일본은 유교에 대항하여 불교를 지원하였고 (미신고 토지 국유화 정보를 제공하는 등), 이승만은 우리나라를 기독교 국가로 만들기 위해 불교에서 소수(4% 정도)였던 비구승을 지원해서 '정화'를 수년간 진행하였다. 비구승들이 대처승 절을 폭력으로 점거하면 대처승은 소송을 제기하고 서로 맞소송으로 막대한 자금 낭비., 그렇게 불안정한 상황에 대한 우려로 사찰 소유 토지를 마구 매각하여 불교재산 막대한 타격, 그리고 사찰 5개만 있으면 종단을 만들 수 있게 하여 수많은 분파를 조장하여 불교의 힘을 뺐다. 그래서 현재 불교종단이 기독교 분파보다 훨씬 많고, 조계종 명칭 들어가는 종단만 60개가 넘는다. 조계종 스님 숫자보다 타종단 스님의 합이 더 많은데 그 중 98% 정도는 결혼을 한다. 결혼과 육식을 허용하는 종단은 옛 일본식의 영향으로 속복(일반 복장)이나 유발이 가능한 경우도 있다. (천주교도 그리스정교, 러시아정교, 성공회 등은 결혼) 이승만 대통령은 우리나라를 기독교 국가로 만드는 게 서원이었다. 이에 기독교는 이승만 시절 급성장. 사찰은 국립공원 등 제한으로 대출이 불가했던 반면 교회는 대출을 가능케 하여 도시에 진출 가능 & 대형건물,. 그러나 승자의 저주.. 현대에는 종교인구 감소로 시설 유지비 부담 급증으로 앞으로는 몰락의 길 예상. 유럽이 그랬다. 유럽은 문화재로 지정된 성당은 어쩔 수 없지만 작은 성당은 일반에 매각되어 나이트클럽으로 많이 전용됨. (뼈대가 튼튼해서 리모델링하기 좋고 층고가 높아서 미러볼 달기가 너무 좋아) 1940년에 일제는 조선불교 전체를 남산에 있던 이등박문 추모사찰 박문사 하부조직으로 넣으려고 하였는데 이에 강력 반발한 한암스님이 조계종을 창단하였는데, '임제종으로 할까?' 뭐 이런 말을 하면 일본이 '그럼 일본이랑 합칠까?' 자꾸 이런 말을 해서 '일본에 전혀 없는 말을 찾아라' 그래서 조계종 탄생. 이후 정화 때에도 계속 이 명칭을 사용하다가 안정된 다음 1962년에 앞부분만 바꿈. '조선불교 조계종'에서 '대한불교 조계종'으로. (일제시대엔 조선불교, 해방이후 대한불교, 요즘엔 한국불교) -자현스님- |
다음검색
스크랩 원문 :
사즐모 - 댄스스포츠ㆍ사교댄스ㆍ리듬댄스 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