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우주 삼라만상 모든 것의 근본은 바로 이 일심 뿐이다.
한마음에서 우주가 전부 나왔고,
다시 이 한마음으로 돌아간다.
오직 이 한마음 뿐이다.
세상이 이토록 혼란스럽고, 복잡다단하고, 많고,
거대하고, 다 다른 것 같아 보이지만, 전혀 다를 것이 없다.
마치 바다 위에 인연 따라 온갖 파도가 치겠지만,
그 파도의 모양은 다 다르겠지만,
다 다른 모양이 전부 하나의 바다인 것과 같다.
모든 파도는 오직 하나의 바다일 뿐이다.
삼계가 어지럽게 일어나지만 모두가 한마음으로 돌아갈 뿐이다.
이 사실이 믿어지는가?
어떻게 이 세상, 우주, 모든 존재가
서로 다르지 않은 하나일 수가 있지?
이것이 바로 선불교의 핵심이다.
이것이 불이법이요, 불이중도다.
이것을 확인하는 것이 깨달음이며, 견성(見性)이다.
이 한마음, 일심을 다른 말로,
자성(自性), 불성(佛性), 본성(本性), 본래면목(本來面目),
주인공(主人公), 본각(本覺), 열반, 해탈,
일불승(一佛乘), 마음, 법(法)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부른다.
이 한마음에 여러 가지 이름이 붙은 이유가 뭘까?
어떤 언어, 말로도 이것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도 없고,
이것은 어떤 말로 가리킬 수 있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언어적인 이름은
그 이름이 가리키는 대상이 정해져 있다.
그러나 이것, 일심은 그 모든 것들이 나오는 바탕 전체이기 때문에,
따로 이것만을 떼어낼 수가 없다.
어쩔 수 없이 허망한 이름을 붙인 것일 뿐이다.
그러니 어떤 이름도 이름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이름이 가리키는 바가 무엇인지를 확인해야 한다.
이 모든 이름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일 뿐이다.
우리가 확인해야 할 것은 바로 ‘달’ 자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것은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고, 생각할 수도 없다.
이것은 크기도 없고, 모양도 없고, 색깔도 없으며,
심지어 있다거나 없다는 말로도 이것을 드러낼 수 없다.
이것은 불성이니 일심이니 자성이니 하고 말은 붙였지만,
그 말로 표현되는 무엇이 아니기에
어쩔 수 없이 ‘이것’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바로 이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 하는 바로 ‘이것’!"
-법상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