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 시작하자
월운스님
새로 시작하자.”
선지식은 다시 말했다.
“지금 주변을 둘러보라.
이대로 가서 무슨 발전이 있겠는가?
발전이라 말한다고 다 발전은 아니다.
모두가 뒤섞이고 왜곡되고 어지럽다.
무엇보다 지금 승(僧)들이 너무 많은 일을 한다.
근거도 없이 그 범위가 너무 넓어졌다.
별별 것에 다 구색을 맞추고 산다.
실천할 수 있는 것,
실천해야 할 것만으로도 승의 살림살이가
벅찬데 너무 범위가 넓다. 근거도 없이….”
현대사회,
도심으로 내려 온 불교는
아직 그 중심을 잡지 못했다.
인터넷 시대, 휴대폰 시대에
신세대들의 톡톡 튀는 감각을
따라잡기에 역부족이고 노력부족이다.
그런 가운데 불교는 사회적으로 존경의 대상으로
자리 잡기는 커녕 온갖 의혹과 질타의
눈초리를 받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선지식은 그 원인을
“스스로 새로워지려고
노력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절망적이야. 이제 내일모레면
팔순의 나이를 맞을
나 같은 노인네야 절망으로 살 수밖에….”
선지식은 절망을 말하면서도 눈이 빛났다.
절망 속에서 제대로 된 희망이 피어나오기 때문이다.
우리시대 최고의 강백이 절망을 말하는 것은
절망하고자 함이 아니라 희망을 길어 올리고자 함이다.
새해 아침에 희망을 말하는
선지식의 어법(語法)이 절망일 뿐.
희망도 절망도 다 잊어버린 자리에서
세상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오늘날 불교계가 바라보아야 할 양지(陽地)가
어디인가를 깨우쳐 주려는 간절함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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