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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부처를 친견하는 법

작성자신비아|작성시간24.10.04|조회수0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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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처를 친견하는 법 월산스님 노사께서 법상에 오르사 주장자를 세우고 금강경 사구게를 읊으셨다. 若而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모양으로 나를 보고자 하거나 소리로써 나를 찾고자 한다면 그는 사도를 행하는 것이니 능히 여래를 보지 못하리라. 불교공부를 하는 궁극적 목적은 견성성불하는데 있나니 부처를 보지 못하고 부처를 찾지 못하면 백년동안 불교공부를 해도 헛수고를 하는 것이니라. 부처는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니 심즉시불(心卽是佛)이라 마음이 곧 부처이기 때문이니라. 이 세상에 마음 없는 사람 없으니, 부처를 보기란 세수하다가 코만지는 것보다 쉽다고 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고인이 이르기를 막멱외구(莫覓外求) 즉 밖에서 구하지 말라 했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 견문각지(見聞覺知)에 빠져 고인의 경계하심을 듣지 않나니 안타까운 일이로다. 산승이 결단코 말하리니 부처는 결코 언어나 문자 속에 있지 않다. 책 속에서 부처를 찾으려는 것은 나무 위에 앉아 고기를 구하려는 것과 같으니 이는 부처님도 《금강경》 사구게(四句偈)에서 이미 말씀하신 바다. 언어나 문자에 부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림자가 참모습인 줄 착각하는 것이다. 그림자란 햇빛이 비추면 따라서 없어지니 그 때 가서 부처가 사라졌다고 한다면 이는 어리석은 사람일 뿐이다. 요즘 사람들은 영화를 좋아하는데 그렇다면 산승이 한 가지 물어보겠다. 영화 속의 사람이 진짜 사람인가 그림자인가?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일체의 유위법은 꿈이요 환상이요 물거품이요 그림자 같으며 또한 아침이슬 같으며 번개불 같은 것이니 마땅히 이와 같이 관찰해야 하느니라. 거짓을 보고 참이라 믿고, 남의 지식을 자기 것인 양 자랑하는 사람은 끝내 실체를 보지 못한다. 이런 사람은 책에 없는 얘기가 한 줄만 나와도 이내 벙어리가 되나니 저 유명한 덕산의 고화(古話)가 좋은 예가 된다. 옛날 《금강경》을 거꾸로도 읽고 옆으로도 읽는 덕산(德山)이란 교학자가 있었다. 그 사람은 금강경에 매우 해박하여 주금강(周金剛)이란 별명을 얻을 정도였다. 그는 남쪽의 외람된 무리들이 ‘마음이 곧 부처’라면서 교학자들 알기를 떨어진 짚신처럼 여긴다는 말을 듣고 일언지하에 박살을 낼 요량으로 《금강경소초》를 짊어지고 용담 숭신(龍潭崇信)화상과 법거량(法擧良)을 하러 나섰다. 그가 용담에 이르자 점심 때가 되어 떡집에 들려 노파에게 요기할 것을 시켰다. 그런데 워낙 오만방자했던 덕산이라 뒤에 한 마디 덧붙였다. “용담이라 하길래 찾아왔더니 어디를 둘러보아도 용이 살 만한 곳은 한 군데도 없구만 ….” 이 말을 들은 떡집 노파가 덕산을 한 번 쳐다보더니 말을 붙였다. “스님이 갖고 계신 그 책이 무슨 책입니까?” “《금강경》이라는 아주 귀한 경전이요. 나는 소초(疏抄)를 썼지요.” 다시 한번 으쓱하는 덕산에게 노파가 송곳을 내밀었다. “그렇습니까. 저도 절 밑에 살다보니 귀동냥으로 금강경 법문을 들어 조금은 알고 있는데 한 가지 도저히 모르는 것이 있습니다. 스님이 좀 가르쳐 주시겠습니까?” “그러지요. 《금강경》에 대해서라면 뭐든지 물어 보시구려.” “경에 ‘과거심불가득 현재심불가득 미래심불가득 (過去心不可得 現在心不可得 未來心不可得)이라 했는데 이 중 스님은 어느 마음으로 점심(點心)을 하시려 합니까?” 노파는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만일 스님께서 그대답을 하신다면 내가 점심을 그냥 대접할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점심값을 내신다 해도 공양을 올리지 않겠습니다.” 덕산은 과거심도 미래심도 찾을 수 없는데 어느 마음으로 점심을 하겠느냐는 질문에 땀만 뻘뻘 흘리고 대답을 못했다. 물론 점심도 굶었다. 덕산은 노파에게 숭신장로가 있는 곳을 물어 그곳으로 찾아가 금강경소초를 불살라버리고 처음부터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그리하여 덕산은 나중에 임제의 할(喝)에 비견되는 몽둥이(棒)를 가장 잘 쓰는 선문의 대종장이 되었다.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나거니와 산승도 이 법문이 끝나면 점심공양을 해야 하니 밥값이 되는 질문을 하나 해야 하겠다. 경에 이르기를 ‘삼세심불가득(三世心不可得)’이라 했으니 시회대중(時會大衆)은 어떤 마음으로 점심공양을 하시려는고? 대중들은 반드시 밥값을 내고 오늘 점심공양에 들어오라.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무릇 모든 모양있는 것은 다 허망한 것이다. 만약 모든 모양을 모양이 아니라고 본다면 즉시 여래를 친견하리라. 모셔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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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행복한 중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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