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승법사로 있을 때 군종병이 어느 날 이런 말을 했다.
"보니까 스님은 어떤 질문을 해도 답을 주시던데
저에게는 절대로 답을 못 하실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어렸을 때부터 가지고 있던 고민이고, 지금도 아주 큰 컴플렉스이어서
'이것만 아니면 내 인생은 정말 좋을 텐데..' 하지만 도저히 해결방법이 없는..
그런 고민이라고 해서 뭐냐고 물었더니 키가 작아서 고민이라고 했다.
"아주 간단한 문제네~" 그랬더니 깜짝 놀랐다.
"아니, 이게 어떻게 간단한 문제입니까? 키 크는 약도 없는데~"
"간단한 문제이긴 한데, 그 방법을 말해 줄 순 있지만 네가 실천할 수 있을 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만 실천할 수 있으면 그건 전혀 문제가 아니다."
그의 고민은 '남자 키는 이 정도는 돼야 해. 그런데 내 키는 그것보다 작아' 하는 생각,
그 비교하는 생각 때문인데 키가 커야만 행복할 수 있을까? 키가 커야만 연애도 할 수 있을까?
키는 작아도 사랑하는 사람 만나서 잘 사는 사람도 많을 텐데..
'나는 키가 작아서 문제야' 라는 그 생각을 집착하면 집착할수록
그 생각은 점점 더 굳어지고 강해져서 무슨 실제처럼, 진실인 것처럼 느껴질 것이고
아마도 그것은 죽을 때까지도 해결될 수 없는 문제로 남을 것이다.
'크다, 작다'는 그저 생각일 뿐이고, 그 생각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되는데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 된다.
어떤 모습이 있나? '크다, 작다'가 아니라 다만 이런 키의 내가 있을 뿐이다.
키 작은 나, 못생긴 나, 험상궂은 나.. 이건 다 자기 생각일 뿐이다.
있는 그대로의 진실은 '그냥 이러 할 뿐'이다. 그냥 이러 할 뿐.
그런데 그것을 남과 비교하고 '나는 반드시 이래야 돼' 하면
그것이 되지 않을 때 괴로운 것이다.
키는 나를 괴롭히지 않는다. 괴롭힐 수가 없다.
나의 판단과 해석, 나의 생각이 나를 괴롭히는 것이다.
그 허망한 생각을 붙잡으면 죽었다 깨어나도 풀지 못하는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 돼 버린다.
그러나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허용하고 받아들이면 더 이상 문제될 게 없다.
이것이 우리가 괴로움에 벗어날 수 있는 길인 것이다.
어떤 보살님은 층간소음이 너무 힘들어서 가서 항의도 해 보고, 같이 쿵쿵대 보기도 하고
정말 별짓을 다 해 보았는데 안 되고, 그렇게 몇 년을 시달리다 노이로제가 걸려서 병원도 다녀 보고
도저히 어떻게 해야 될 지 몰라 쩔쩔매다가 우연히 스님의 법문을 들었는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말을 듣고 처음엔 콧방귀를 뀌었다고 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았다.
그러나 정말 이것만 극복하면 인생의 어떤 고민도 극복할 것 같을 정도로 고통이 심각해서
'그래도 부처님 가르침엔 무언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다시 법문을 찾아 듣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알게 되었다. '아, 받아들이라는 말이 윗층에서 쿵쿵거릴 때
'받아들여야지, 받아들여야지. 받아들이면 없어지겠지' 그러라는 게 아니라
그냥 함께 살아기를 허용해 주라는 말이로구나~'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렇게 같이 살아주기로 마음먹고 생각해 보니까
정말 그 소리 자체가 문제라면 다른 사람도 자기랑 똑같이 힘들어 해야 할 텐데
남편이나 애들은 그렇게 심하지는 않았다. 에이, 엄마는 뭐 그렇게 신경을 쓰냐고, 맨날 그러더라는 것이다.
'왜 나만 더 힘들까? 아, 이것은 마음의 문제이지 소리의 문제가 아니구나 ~'
그렇게 허용하기로 한 다음부터 윗층에서 쿵쿵거릴 때마다 오히려 마음공부 기회로 삼아서..
그 소리로부터 도망치려 하지 않고 온몸으로 흠뻑 받아들여 들었더니 그 소리와 내가 둘이 아니더라..
그냥 하나로 함께할 수 있더라..
그런데 정말 놀라운 것은, 그렇게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나니까 삶에 놀라는 전환이 일어나더라..
그동안 직장에서도 좋은 사람, 싫은 사람 때문에 마음이 불편하고 이리저리 휘둘리면서 살아왔는데
층간소음 허용하듯 좋든 싫든 그냥 있는 그대로 대해 주고 보니까
싫은 사람은 그런 대로 또 배울 점이 보이고, 좋은 사람은 집착을 덜 했더니 관계가 더 좋아지더라..
층간소음 문제가 층간소음만의 문제가 아니라 삶 전체의 문제였더라 ~~
받아들임은 단순한 치유나 힐링의 문제가 아니라 불이법(不二法)의 실천이다.
집착하는 습관이 있는 사람은 대상을 바꿔가면서 계속해서 집착하고, 그에 따르는 괴로움이 반복된다.
피해의식이 있는 사람은 어디를 가든 동일한 문제로 피해의식을 느낀다.
밖에 있는 누가 괴롭히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의 문제이기 때문에 동일한 패턴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마음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현실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래서 부처님의 가르침은 설사 생활법문이라 하더라도
소위 속된 표현으로 '얄팍한 힐링'이나 '힐링팔이 장사'가 아니다.
겉으로 보기엔 너무 쉽고 단순해 보여도 한 발작 더 들어가서 보면
분별심으로는 도저히 가 닿을 수 없는 무분별지(無分別智) 진리의 소식을 담고 있다.
결코 가벼운 힐링이 아니라 괴로움의 근원적인 벗어남인 것이다.
그 보살님은 층간소음을 해결했더니 직장생활도 좋아지고
남편과의 갈등, 아이들과의 부딪침도 개선되더라고 하였다.
온전한 허용으로 하나가 해결되면 모든 게 해결되는 것이다.
우리는 누가 나를 속박하는 게 아니라 나 스스로 속박하고 있다.
자승자박, 아니 무승자박(無繩自縛).. 있지도 않은 허상을 움켜쥐고, 그걸로 자신을 묶어 괴로워하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괴로움의 구조를 이해하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마음공부를 통해서 마음 하나 바꾸면 반드시 행복해질 수 있다.
걸림없고 자유로운, 정말 가벼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법상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