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동안 용맹정진 했으나
도무지 불법의 대의를 깨닫지 못한 한
수좌가 석상경저선사에게 물었다
“달마가 서쪽으로 온 까닭은 무엇입니까”
“낙화가 물 따라 흘러간다”
“그게 무슨뜻입니까”
“길게 자란 대나무가 바람을 끌어오는구나”
이 선문답은
이른바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로 잘 알려져 있다.
선의 세계에서 해답은 없다는 것을
이 선문답은 잘 표현하고 있다.
깨달음과 깨달음을 여는 법거량은
마음과 마음의 계합에 의해서 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불법의 본질을 묻는 우문(愚問)에 대해
자연의 이법에 빗대어
본질에 접근해야함을 넌지시 제시하고 있다
.깨달음의 세계에서는
어떠한 일을 하더라도
법계심(法界心)을 잃지 않아야 한다.
우리들의 마음은 법계를 본체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춤을 추고 광대노릇을 하더라도
법계 밖으로 빠져나가서는 안된다.
백척간두 경계의 참뜻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위의 선문답에 비견될 만한 선문답이 또 있다.
조산본적선사와 한 수좌의 선문답이 그것이다.
한수좌가 조산본적선사에게 물었다
“세상에서 무엇이 가장 값지고 귀한 것입니까”
“죽은 새끼고양이 대가리가 가장 귀하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아무도 값을 매기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선의 세계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바로 분별심이다.
분별심은 모든 번뇌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이 선문답은
분별심과 이원적 경계에 빠진 수좌에게
바른자리로 돌아올 것을 권하고 있다.
선의 길을 가는 사람은
두가지 견해에 머물지 말아야 한다.
또한 이것이다 저것이다 재지도 말아야 한다.
조금이라도 옳고 그름을 두면
마음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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