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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올바른 가르침과 그릇된 가르침을 구별하기

작성자산띠빠다|작성시간20.03.15|조회수134 목록 댓글 6

올바른 가르침과 그릇된 가르침을 구별하기

(Differentiating Right Teaching from Wrong Teaching)

 

부처님께서 궁극의 열반에 드시기 전에, 그의 제자들은 부처님께 어떻게 하면 올바른 가르침과 그릇된 가르침을 구별할 수가 있는지에 대해 여쭈어보았습니다.

 

부처님은 이렇게 밝혀주셨습니다.

여기 비구가 법에 대해 말하기를, “도반들이여, 내가 말하는 것은 세존의 면전에서 듣고 받아 지닌 것입니다.” 라고 한다면, 일단 그런 비구의 말을 인정하지도 말고 공박하지도 말아야 한다.

그의 말을 경과 대조해보고 율이나 교법에 비추어보아서, 내가 가르친 바와 맞는다는 결론에 도달하면 그의 말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내가 가르친 바와 맞지 않는다면, 이것은 물리쳐야 한다.’

                                                       (디가 니까야 제16- ‘대반열반경에서 인용함)

 

그러므로 우리는 스승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이 참으로 진리인지 아닌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 자신의 책임입니다.

 

부처님의 사례를 보면, ‘도반들이여, 내가 말하는 것은 세존의 면전에서 듣고 받아 지닌 것입니다.’라고 말한 사람은 어떤 비구였습니다.

만약 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그 비구는 실제로 부처님을 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이런 상황에서도 즉시 그의 말을 받아들이지는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은 부처님을 직접 뵈었다고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습니다만, 그래도 만약 어떤 스승이든 부처님 법을 받들어서 가르치지 않는다면, 그러한 사람은 다른 이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처님 법을 존경해야 하며, 부처님을 존경해야 하고, 또한 우리 자신을 존경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자신을 존경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관점이 어떠한지를 이해해야 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일체지가 없음으로 하여 그냥 우리가 원하는 아무 방식대로나 남을 가르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열반으로 이르는 길에 대한 가르침은 정등각자의 출현으로 하여 세상에 나타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만약 우리가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가르치지 않는다면, 이는 우리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나 다른 사람의 이익을 위해서도 제대로 행하고 있지 않는 것이 됩니다.

오히려, 이것은 다른 이들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도 망쳐놓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드리는 이러한 충고를 항상 마음 속에 새겨두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세상에는 특별한 악의가 있어서는 아니겠지만, 부처님 법을 완전하게 가르칠 능력이 부족하거나, 아니면 그 가르침이 어떤 식으로든 맞지가 않으면서도 가르치려 드는 스승들이 많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전해주신 그 완전무결한 법을 그대로 가르치지 않는 스승들이 많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러한 스승들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그들 자신의 능력에 따라서 가르치며, 그들 자신도 그들이 가르치고 있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음을 우리는 잘 고찰해보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러한 스승들에게서 뭔가를 아주 잘 배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뭔가를 배워야 하긴 하겠지만, 그러면서도 또한 우리는 그런 스승들의 지도하에 계속 배우고 수행해야 할지 않을지를 잘 분간하는 법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비록 그들이 부처님이 가르치신 바와 같이 가르치지는 못하고, 대신에 그들 자신의 제한된 이해력에 따라 부처님의 말씀을 설명하고 해석하여 명상을 가르친다 할지라도, 그들은 어쨌든 우리에게 명상 수행을 할 기회를 제공하긴 합니다.

 

만약 그들이 나쁜 의도를 가진 게 아니라면, 그들은 사실 아무런 나쁜 짓도 하는 것이 아니겠지요.

중점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은 우리가 그들을 추종해서는 목표에 도달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단지 우리를 수행으로 가는 진로에 함께 하도록 데려다 주는 것까지만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스승들이 유명하기도 하고 또한 출가자들을 위시하여 많은 사람들이 찬탄을 함으로써 이들에게 빠져들게 되고, 그럼으로 해서 이들에게 배웠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로 인하여 우리는 명상에 관심을 갖게 되고 수행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기회를 가짐으로써, 우리는 나중에 또 다른 기회를 갖게 되고, 우리는 처음의 스승에게 배운 것과 지금 것을 비교해 볼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전에 공부하고 수행했던 것이 그 당시 스승의 전통적인 사상에 따른 것일 뿐,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른 게 아니었음을 알게 되지요.

그러나 이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명상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게 이전의 스승들 덕분임을 상기하며 이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제 자신의 삶에도 이러한 일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재가불자였을 때도 명상 수행을 했었지요.

그 당시에 저는 모든 비구 스님들이 부처님께서 몸소 가르치신 바대로 가르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을 믿은 것이지요.

 

재가자로서 우리는 성공하고 돈 잘 벌고, 유명해지를 원했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감각적인 목표였지요.

그런 상태에서 법을 구한다는 것은 단지 일시적인 추구일 뿐이지, 우리의 주된 관심사는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판별할 수단도 부족해서, 스승이 가르치는 것을 배우기에는 아무런 준비도 안된 처지였지요.

 

그래서 저는 제 자신이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 건지 아닌지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제 마음 속에 긴박감이 일어났을 때에야 드디어 출가자로서의 삶을 선택하기로 결심하였지요.

그 시점에서 저의 출가의 목적은 괴로움의 소멸이었습니다.

 

저의 목표는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저는 더 이상 이득이나 명성을 찾는 길로 나아가지 않고, 대신에 저의 목표는 해타로 가는 길을 찾는 것이 되었지요.

따라서 저는 부처님께서 실제로 무엇을 가르치셨는지를 알아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바로 그때에 가서야 저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공부할 기회를 갖게 되고, 제가 이전에 수행했던 것과 부처님의 가르침을 비교해 볼 수도 있었습니다.

그 시점에서야 저는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매우 운이 좋았지요.

 

만약 우리가 승가의 제도권 밖에 있다면, 올바른 가르침과 그릇된 가르침 간에, 그리고 올바른 수행과 그릇된 수행 간에 미세한 차이점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오직 승가의 제도권 안으로 들어올 때만이 법을 좀 더 심도 있게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여러분이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공부를 심화시켜 나가야 하고, 스스로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기 자신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태어난 곳의 환경에 엄청난 영향을 받습니다.

만약 제가 미국에 태어났다면, 저는 아마도 기독교도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라크에 태어났다면 이슬람교도가 되었을지 모르고, 대만에 태어났다면 거의 확실히 대승불교의 비구가 되었을 것입니다.

 

저는 미얀마에 태어난 고로, 상좌부 불교의 비구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이해를 해야 할 사항이고, 우리의 탄생을 둘러싼 환경적 요인을 불평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태어나 충분히 성장하게 되면, 우리는 무엇이 진실인지를 알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만큼 충분히 지적인 사람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우리의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저에게는 다양한 나라에서 온 많은 제자들이 있습니다.

미국도 있고, 독일, 캐나다, 일본 등지에서 말이지요.

그들 중의 일부는 기독교를 믿는 환경에서 태어난 고로 기독교도로 자라났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성장한 다음, 자유로이 생각하게 되고, 지적인 사람이 되어서는, 이것 저것을 공부하게 되었지요.

결국 그들은 부처님의 가르침 속에서 그들이 원하던 것을 찾아내었고, 그런 다음엔 자신의 길을 이에 따라서 선택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무조건 자신이 있는 곳에서의] 전통적인 것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진정한 가르침을 따라가는 것이지요.

이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현실입니다.

 


 

우 레와따 반떼 지음/성덕거사 번역

이 사경과 읽음의 공덕행이 닙바나 실현의 원인이 되어지이다. 사두 사두 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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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앎 행 삶 | 작성시간 20.03.16 사두사두사두
  • 작성자위사카 | 작성시간 20.03.16 사두사두사두
  • 작성자Nayana | 작성시간 20.03.26 사-두! 사-두! 사-두!
  • 작성자스스로충만함 | 작성시간 20.04.21 사두사두사두 !
  • 작성자아리야왕사 | 작성시간 21.10.02 사두 사두 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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