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습적 진리의 중요성(The Importance of Conventional Truth)
비록 관습적 진리가 궁극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어쨌든 그것이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결론짓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것이 필수적으로 중요함을 인식해야 합니다.
보시를 하는 행위가 그 사례로서 도움이 될 것입니다.
보시를 하는 데에는 네 가지 조건이 필요하지만, 즉 보시하는 자와, 보시 받는 자, 보시물, 그리고 보시의 의도입니다.
이 네 가지 중에서 앞의 세 가지는 관습적 진리(빤냣띠)입니다.
보시의 의도는 궁극적 진리인데 그것은 ‘쩨따나’(의도)가 됩니다.
그것은 52가지 ‘쩨따시까’(마음부수) 중의 하나이며, 궁극적 진리로 분류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관습적 진리 없이는 보시를 할 수가 없는데, 이는 네 가지 필수적인 조건들 중에 세 가지가 관습적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관습적 진리는 단지 보시를 잘 하려고 할 때에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 됩니다.
더욱이, 우리는 보시의 유익함을 알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임을 생각해 보십시오.
보시를 함으로써 우리는 천상계나 인간계와 같은 좋은 세계에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천인과 천상계, 그리고 인간과 인간계도 말하자면, 이 모두가 관습적 진리입니다. 그것들은 개념(빤냣띠)이지요.
그래서 다시 말씀드리지만, 관습적 진리 없이는 우리가 보시를 할 방법이나 기회를 얻을 수도 없게 될 것인데, 이는 그러한 진리가 없다면 천인도 인간도 또한 선업을 닦은 과보도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관습적 진리와 궁극적 진리를 모두 가르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태어나게 하고 먹여주고 키워준 사람을 지칭하여 ‘어머니’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여러분은 다른 어떤 여성들과는 별개로, 그분과는 어머니로서 연관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다른 여성들을 대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어머니를 대할 수는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여러분은 자신의 아버지와는 아버지로서 연관되어 있어서, 다른 남성들을 대하듯이 그분을 대하지 않습니다.
이는 여러분의 형제자매에게도 그렇고 또한 비구나 비구니승과 같은 출가자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모든 사람들과는 특별한 방식으로 연관되어 있어서,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는 별개로 대하는 것이지요.
사실 이러한 인간관계는 관습적 진리에 속합니다만, 그러나 관습적 진리라고 해서 이러한 사실이 진실성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냥 하찮은 것으로 치부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가 만약 이런 면에서 관습적 진리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상식에 벗어난 행위가 되겠지요.
오히려, 관습적 진리는 우리가 여기서 보듯이 매우 중요합니다.
사람들이 관습적 진리를 존중하지 않을 때, 이 세상은 많은 불선함으로 시달리게 됩니다.
미얀마에 있는 쉐다곤 파고다는 독실한 불교신도들이 공경하는 곳입니다.
그곳에는 네 분의 과거불의 유물과 그분들의 소지품들이 모셔져 있습니다.
독실한 불교신도들은 신발을 벗고 적절한 복장으로 공손하게 성지를 방문하며, 그곳에 있는 동안 예의바르게 행동합니다.
그들은 불교신도가 아닌 사람들이 그 성지를 방문해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행동하길 요구합니다.
독실한 불교신도가 아닌 일부의 사람들은 이러한 헌신적인 행동에 불만을 나타내기도 하고, ‘불교신도들은 벽돌 더미에 존경심을 표한다’고 말하기조차 합니다.
그러나 쉐다곤은 파고다(불탑)이고 진정으로 그렇게 불릴만하며, 더 이상 단순한 벽돌더미로 치부해선 안 됩니다.
그곳은 우리가 경의를 표해야 할 중요한 곳이지요.
마찬가지로, 어떤 곳을 명상 센터로 지정을 하게 되면, 사람들은 그 안에서는 특정한 방식으로 예의 바르게 행동을 하지, 마지 다른 종류의 집회장이나 강당에 와 있는 것처럼 행동하지는 않잖아요?
관습적 진리에 관해서 마땅한 존중을 하지 않으면, 불선한 행동이 일어납니다.
이것이 관습적 진리의 중요성이지요.
싱갈라 경에서, 부처님께서는 아버지와 어머니, 아들과 딸, 그리고 다양한 사회적 지위에 있는 사람들의 의무에 대해 설법하셨습니다.
만약 우리가 아버지의 입장에 있다면, 우리는 아버지의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그것은 어머니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우리의 역할이 아들이나 딸이라면, 우리는 아들과 딸로서의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조화롭게 살 수 없으며, 인간 사회는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치기 위해서 관습적 진리를 활용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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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레와따 반떼 지음/성덕거사 번역
이 사경과 읽음의 공덕행이 닙바나 실현의 원인이 되어지이다. 사두 사두 사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