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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제4법문/ 무엇을 줄 것인가?(4-1)

작성자산띠빠다|작성시간21.02.03|조회수145 목록 댓글 8

제4법문/ 무엇을 줄 것인가?

 

 

세상 사람들이 행하는 행위에는 두 가지 부류가 있습니다. 좋은 행위와 나쁜 행위가 그것입니다. 좋은 행위는 좋은 결과를 맺고 나쁜 행위는 나쁜 결과를 맺습니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모든 행위는 언젠가 그 결과를 맺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행위를 하기에 앞서 그 결과에 대해 신중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주위에서 여러 가지 격차를 봅니다. 어떤 이들은 부유하고 어떤 이들은 가난합니다. 어떤 이들은 외모가 아름답고 어떤 이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어떤 이들은 장수를 누리고 어떤 이들은 단명합니다. 어떤 이들은 유명해지고 어떤 이들은 평범하게 살아갑니다. 어떤 이들은 영향력을 가지고 어떤 이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이런 격차는 우연히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건강한 사람들은 단지 운이 좋아서 그런 것이 아니며, 건강하지 못한 이들 또한 단지 운이 나빠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 사이의 모든 격차는 그 자신들의 의도와 행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개개인은 그 자신이 행한 행위의 결과를 거두는 것입니다.

 

한때에 부처님께서 이런 질문을 받으셨습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보이는 우월함과 열등함의 이유와 조건은 무엇입니까? 세상에는 단명하거나 장수하는 사람들, 언제나 아프거나 건강한 사람들, 못생겼거나 잘생긴 사람들, 영향력이 있거나 없는 사람들, 가난하거나 부유한 사람들, 신분이 낮거나 높은 사람들, 멍청하거나 현명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고타마님, 사람들 사이에서 보이는 우월함과 열등함의 이유와 조건은 무엇입니까?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모든 존재들은 스스로가 행한 행위의 주인이며, 행위의 상속자이며, 스스로의 행위로부터 비롯되었고, 그 행위에 붙들려 있으며, 자신들의 행위를 피신처로 삼는다. 존재들 사이의 우월함과 열등함은 그들의 행위에 의해 결정된다.“

 

이어서 부처님께서는 이 말씀의 뜻에 대해 설명하셨습니다.

”생명을 죽이는 자는 스스로의 단명을 초래할 것이다. 생명을 죽이는 것을 삼가는 이는 스스로의 장수를 부르는 것이다.

생명을 해치는 자는 스스로의 병약함을 초래할 것이다. 생명을 해치는 것을 삼가는 이는 스스로의 건강을 부르는 것이다.

분노와 증오와 신랄함을 밖으로 쏟아내는 것은 추한 외모를 초래하고, 그러한 부정적인 감정을 비워내는 것은 아름다운 외모로 보답 받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 이익과 명예와 존경을 얻고 추앙 받는 것에 대해 시기하는 이는 주위에 사람이 없게 되고, 다른 사람이 존중 받고 영예롭게 되는 것을 함께 기뻐하는 이는 주위에 좋은 사람이 가득하게 되는 복을 받을 것이다.

출가한 수도자나 브라민들에게 먹을 것과 의복과 탈것과 화환과 향과 침구와 주거지와 불 밝힐 것을 보시하기를 아까워하는 것은 가난을 초래하며, 그런 필수품들을 보시하는 것은 스스로의 부유함을 부르는 것이다.

존경받아 마땅한 이를 공경하지 않는 사람은 천한 신분으로 날 것이며, 존경할 만한 이를 공경하는 사람은 높은 신분으로 날 것이다.

출가한 수도자나 브라민을 찾아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여야 한다.

'공경하는 분이시여, 무엇이 건전한 것이고 무엇이 건전하지 않은 것입니까? 어떤 것이 비난 받을 것이고, 어떤 것이 흠 없는 것입니까? 어떤 습성을 길러야 하며 어떤 것을 지양해야 합니까? 어떤 행위들이 스스로를 해치면서 기나긴 고통을 초래하고, 어떤 행위들이 안위와 행복을 가져옵니까?'

출가한 수도자나 브라민을 찾아가지도 않고 이 같은 질문을 하지도 않는 것은 어리석음에 빠지는 길이다. 출가한 수도자나 브라민을 찾아가 이 같은 질문을 하는 것은 지혜를 얻는 길이다."

 

모든 결과에는 그 이유가 있습니다. 각기 다른 이유들은 각기 다른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현재의 환경에서 우리가 겪는 일들은 우리가 지난날 행했던 행위들의 결과입니다. 외부의 존재들은 현재 우리가 처한 삶의 조건에 대해 책임이 없습니다. 우리가 과거에 저지른 행위들이 현재 삶을 조건 짓는 것입니다.

 

스스로의 의도와 행위들이 현재 우리 삶의 틀을 형성합니다. 우리가 오늘 하는 행동이 내일의 열매를 맺게 할 것이며, 이 생뿐 아니라 거듭되는 다음 생에까지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장인이 오랜 기술의 연마를 통해 걸작을 만들어 낼 능력을 지니게 된 것과 마찬가지로, 공들여 스스로를 닦는 사람은 매사를 대함에 있어 앞으로의 삶을 걸작으로 만들도록 할 행위들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이와 반대로, 잘 닦이지 못한 행위들은 그 반대의 결과를 가져 올 것입니다.

 

걸작을 만들어 내기 위해 우리에게는 올바른 지식과 기술이 필요합니다. 이 지식은 오직 거룩하신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는 것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이띠유따까(Itiyutaka:如是語經)에서 말씀하시기를,

 

“선업이 되는 행위에는 세 가지 기반이 있느니, 그 세 가지는 주는 행위를 통해 쌓이는 선업의 기반과, 덕행을 통해 쌓이는 선업의 기반과, 명상계발을 통해 쌓인 선업의 기반이다. 이 세 가지가 선업의 기반이다.”

 

이 세 가지 중 오늘 저녁에는 '주는 행위를 통해 쌓이는 선업의 기반'에 대해 더 깊이 알아보는 데 중점을 두도록 하겠습니다. 주는 행위를 통해 사람들은 더 나은 삶을 위한 보다 바람직한 틀을 창조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무릇 존재들이 나누어 주는 것의 결과를 내가 아는 것처럼 안다면, 아무도 나눠주지 않고는 먹지 않을 것이며, 이기심의 얼룩으로 마음이 뒤덮이지 않을 것이다. 비록 그들이 가진 것이 마지막 한 숟갈, 마지막 한 잎 뿐이더라도 만일 받을 사람이 있기만 하다면 나누어 주지 않고는 먹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중생들은 나누고 주는 것의 결과를 내가 아는 것처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주지 않고 혼자 먹는다. 이기심의 얼룩으로 마음이 뒤덮이고 있다.”

 

부처님께서 아시는 것처럼, 나누고 주는 것의 결과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인색함이 우리 마음을 덮습니다. 그 때문에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는 일은 마치 전쟁을 치르는 것처럼 보인다. 인색함과 소홀함으로 인해 선물은 주어지지 않는다.”

 

오늘 밤에 나는 여러분께 주는 것과 나누는 것의 이익에 대해 말하려고 합니다. 이 법문은 □사가타왁가 상윳따(Sagatha Vagga Saṁyutta)□에 나오는 「데와따 상윳따(Devata Saṁyutta)(하늘 사람의 모음경)의 경전에 근거한 것입니다. 이 경전은 무엇을 줄 것인지 아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지적합니다. 경전의 제목은 「킨다다(Kiñdada)」, 즉 ‘무엇을 줄 것인가’라는 뜻입니다.

 

 

우 레와따 반떼 지음/ 레이님 번역

사두 사두 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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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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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웨사랏자 | 작성시간 21.02.05 사~두 사~두 사~두 ._()_
  • 작성자빛을찾아서 | 작성시간 21.02.05 사두 사두 사두
  • 작성자조아백 | 작성시간 21.02.05 사두 사두 사두
  • 작성자아리야왕사 | 작성시간 21.09.25 사두 사두 사두
  • 작성자Dhammapala | 작성시간 23.11.23 사두 사두 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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