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伊達輝宗[이달휘종] 다테 데루무네(1544~1585) -----생애에 할 모든 일을 마치고 무념의 죽음을 맞이하다------
데루무네가 상속자를 이은 것은 1565년의 일이었다. 데루무네의 輝는 장군 요시테루의 이름에서 한 자를 받은 것이다. 아버지 하루무네의 방침에 반발한 데루무네는 아버지를 유폐하고 호주를 승계한다. 하루무네는 총신 中野宗時(나카노 무네토키)를 우대해, 그 권세가 주가를 위협할 정도였다. 다테가의 장래를 걱정한 비장의 결단이었다.
천문대란 이후 데루무네의 대가 되면 다테령은 꽤 축소되었고, 영토의 확대는 커녕 영토를 지키기에도 여념이 없었다. 특히 소마가의 침략은 격렬하였고, 다테가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모가미 요시아키의 동생인 義姬(마사무네의 어머니)와는 정략결혼이었다. 모가미가에서 그 결혼을 간단하게 승낙한 배경에는 다테가를 손에 놓고자 기도한 것이었다.
데루무네는 가신단의 도움등으로 쇠퇴한 가문을 재건하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적자인 梵天丸(본텐마루)의 원복시에 일족의 기대를 담아 다테가 중흥의 선조 마사무네의 이름을 지어 주었다. 데루무네의 천성은 범용하다고 할 정도로 온화하였다고 한다. 데루무네는 스스로의 능력의 한계를 자각해, 가신들의 의견을 잘 들었다. 재능이 있는 것에는 진심으로 칭찬을 보냈다. 그것은 데루무네의 제일의 장점이었다. 장자인 마사무네에게는 그 애정을 아낌없이 나누어 주었다. 데루무네는 명승 虎哉宗을 資福寺의 주지로 불러들여 마사무네의 교육을 맡기고, 또 片倉小十郞景綱(가타쿠라 가게쓰나)의 재능을 간파하고 마사무네의 시종으로 발탁하였다.
다테가는 소마가와의 항쟁이 계속되고 있었다. 거기에 아버지의 총애를 믿고 권세를 누렸던 나카노 무네토키와의 대립이 일어났다. 1570년 무네토키는 小松城(코마츠성)에서 모반을 일으켰다. 데루무네는 이를 토벌했지만 나카노 일족이 소마가로 달아났기 때문에 소마가와는 더 악화되었다. 나카노씨를 대신해 遠藤基信(엔도 모토노부)를 중용해 선물을 주어 오다 노부나가에 접근을 꾀하기도 했다. 모가미가의 내분이 일어나자 의부인 모가미 요시모리의 요청으로 1570~74년 모가미 영내에 침입하여 모가미 요시아키와 싸웠다. 그러나 소마가와의 항쟁이 격화되어 요시아키와는 화해하였다. 대 소마전에서 소마가 강병과의 정면충돌을 피하고 소마군이 출진한 후 허술해진 곳을 공략하여 1584년 伊具郡을 탈환하고, 소마가와 강화해 진력하였다. 그리고 그해 적자인 마사무네에게 가문을 양보하고 은거한다.
다테령을 집요하게 침략해 오는 세력들은 모두 데루무네의 친척관계여서 데루무네는 상대의 약점을 치는 싸움을 하지 못하고, 오로지 방어전의 체제로만 일관하고 있었다. 그러한 자신을 알고 있던 데루무네는 41세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은거하고 모가미가의 혈통을 받은 마사무네에게 무언가를 바꾸어 줄거라는 기대를 담아 다테가를 맡겼다. 아버지나 조부의 대의 반복된 실패를 거울 삼아, 다테가는 마사무네를 중심으로 결속을 한층 강화해 갔다. 이 은거에 의해서 데루무네는 차남을 옹립 하려고 하는 정실 義姬의 책략, 또 그 배후에 숨어 있는 모가미가의 기대를 봉하는 것에 성공한다.
어느날 마사무네의 엄청난 무용 앞에 전山義繼(하타케야마 요시쓰구)가 몇 사람의 가신을 거느리고 항복을 신청해왔다. 마사무네는 매사냥에 나가 있었기 때문에, 데루무네가 대신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이야기도 대충 끝이나고 데루무네는 스스로 요시쓰구를 안심시키기 위해 함께 걷고 있었다. 그런데 돌연 요시쓰구가 품에 숨기고 있던 단도를 데루무네의 목에 들이대고 그대로 데루무네를 납치하였다. 그 자리에는 루스 마사카게, 다테 시게자네등이 있었지만, 순간에 일어난 일이라 막을 방법이 없었다. 사건을 안 마사무네는 현장으로 급히 돌아왔다. 잠시 후 다테령과 하타케야마령의 국경인 阿武畏川(아부쿠마강) 근처까지 오게 되자, 데루무네는 단지 지켜볼 수 밖에 없는 다테의 가신단에게 [나를 요시쓰구와 같이 공격하라! 아니면 후세까지 다테가 이름을 더럽히게 될 것이다!]라고 외쳤
다. 결국 데루무네는 다테군의 일제사격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은거 후 1년 남짓으로 마사무네의 장래를 지켜보지 못하고 불운한 죽음에 이르게 된 것이다. 마사무네로서도 자신의 최대의 이해자인 아버지를 잃은 것이었다. 이것과 동시에 귀모로 전국을 두려움에 떨게한 마사무네의 패도가 시작된다. 이때 사격의 지휘를 마사무네가 했다는 설과 마사무네 부재설, 다테 시게자네설이 있다.
음모론
마사무네의 小手森城에서의 성민 전원의 몰살은 오슈 모든 영주들에게 공포감을 안겨 주었다. 그 중에서도 사건으 당사자라 할 수 있는 오우치 사다쓰나와 행동을 함께했던 하타케야마 요시쓰구는 불안해 떨수 밖에 없었다. 요시쓰구는 몇번이나 마사무네에게 알현하여 용서를 빌고자 했으나 거절당했다. 이에 요시쓰구는 마사무네의 아버지인 데루무네를 찾아가 중재를 요청했는데, 그 와중에 요시쓰구가 데루무네를 납치해 버린다.
이 납치설에는 몇개의 설이 있다. 일반적으로는 요시쓰구의 계획된 범행으로 이는 위에 있는 내용이다. 다른 하나는 마사무네가 데루무네의 납치를 부추겼다는 다소 황당한 설이다.
마사무네는 상속자를 계승한 이래 자신만의 방식으로 다테의 세력을 확대하고 있었다. 대표적인게 小手森城의 참극이었다. 마사무네는 이때 성의 남녀노소 800여명을 모두 참하였다. 이 전술은 데루무네로서는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았다. 특히나 데루무네는 자비로운 인물이 아니었던가! 이미 베어버린 것에 대해 어찌 할 수는 없었지만, 요시쓰구의 항복에 대해서는 마사무네와 논쟁이
되었다. 일찌기 데루무네는 요시쑤구로 부터 원군의 도움을 받은적이 있어서 의리가 있었다. 데루무네는 마사무네에게 요시쓰구의 항복을 승낙하라고 하였다. 그러나 마사무네는 그 상냥함이 아버지의 단점이며, 이는 다테가를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다. 지금 이 오슈에서의 싸움의 방식이 바뀌었다고 강하게 반발하였다. 이러한 마사무네의 태도는 데루무네를 따르는 가신들에게 반감을 불러왔다. 아직 애송이인 마사무네의 호주 승계는 너무 빨랐다며 납득하지 못하는 가신도 많았다. 또 마사무네의 동생 小次郞를 따르는 가신들도 무시할 세력이 아니었다. 데루무네는 은거하였다고는 하지만 42세의 나이였다. 데루무네를 따르던 가신들도 대부분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부자의 싸움이 일어나 버린다. 다테가의 역사는 부자의 싸움의 역사이기도 했다. 마사무네로서는 당연히 아버지와 싸우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가문내에서 반 마사무네의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데루무네를 불가항력으로 잃는 상황을 획책할 수도 있다. 마사무네가 아버지에 대해 이런 일을 꾸밀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마사무네는 권모술수에 뛰어난 사람이었으며 모가미가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요시쓰구의 가신이 데루무네의 저택으로 향하는 도중, 하급무사들이 칼을 갈고 있는 것을 보고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물었다. 이에 [요시쓰구의 목을 베려고]라고 웃으면서 대답했다고 한다. 이 농담을 진심으로 받아들인 요시쓰구는 [이미 이런상황이라면]라고 데루무네를 납치한다. 요시쓰구는 이를 통해 형세의 변화를 꾀한거였지만 마사무네는 같이 죽여 버렸다. 하급무사가 말한 내용이지만, 농담이라해도 무사의 신분으로 이런 경망스러운 말을 했을까? 요시쓰구가 항복을 신청하러 온 것이지만 엄연히 일국의 영주이다. 묻는 말에 보통 [칼을 손질하고 있다]라고 얘기하는게 보통일것이다. 더 이상한 것은 보통 칼을 가는 것을 안보이는 곳에서 하면 됐을 일이다. 이런 이해 못할 행동이 실제 했다면 이는 위에서 명령이 내렸다고 밖에 볼 수 없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