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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달샘의 수난

작성자lilly|작성시간22.08.28|조회수53 목록 댓글 0

                                                                             옹달샘의 수난

                                                                                                                                             맹 영숙

 

   옹달샘 모임은 30대에 시작한 친목계이다.

   K대학 평생교육 합창단에 입단 하면서였다. 합창이 끝나고 나면 서로간의 코드가 잘 맞는 사람끼리 어울린다. 흥겹게 모여 식사를 하곤 하였다. 좀 친숙해지니 친목을 도모하는 의미에서 계모임으로 발전 하였다.

   나는 어디서나 늘 그랬듯이 엇박자로, ‘쿵’하고 먼저 튕겨 나가는 버릇이 있다. 이러다 보면 자연적 던진 그물에 걸려들기 마련이다. 코 꿰어 임시 총무 직을 맡게 되었다. 모임은 회칙이 서지 않으니 질서가 없고 된통 시끄럽기만 하다. 부칠 명패(名牌)는 어떤 이름이 좋을까. 싱크대 앞에서 수도꼭지를 틀어놓고 야채를 씻으며 온통 머릿속에는 낱말이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열린다.

   여러 생각 끝에 잦아 올린 ‘옹달샘’ 이란 단어가 머리에서‘반짝’ 반응이 일어났다. 우선 부르기 쉽고 친근감이 가야한다고 생각했다.

‘깊은 산속 옹달샘’ 얼마나 좋은가. 한데, 유감스럽게도 회원 중 두 여자의 시위가 있었다. 옹달샘은 여성의 성(性)을 떠 올리게 한다며 선정적(煽情的)이라고 반기를 든다. 그렇게 선정적이면 초등학교 음악책에는 어떻게 ‘옹달샘’ 노래가 기재되어 있는가. 생각 할수록 부아가 스멀스멀 밀려왔다.

   가만히 정황(情況)을 살펴보니 그들의 뜨거운 풀무질을 무참히 당하고만 있는 격이다. 나는 임시총무를 사퇴하겠다고 반기를 들었다. 회원들 모두가 이러지 말라하며 격려하는 전화가 쇄도하게 왔다. 그들은 하나같이 똑똑하다. 사람의 심리는 다 그런가 보다. 한눈으로 가혹하게 비판하기는 좋아 하지만, 막상 발 벗고 뛰어들지는 못한다. 결국 어쭙잖은 두 사람은 자진 사퇴했다. 회원은 열 명, 선을 긋고 더 이상 받지 않았다.

   옹달샘 회원들은 그때 당시 하나같이 빼어난 미모, 무르익은 젊음의 옷치장까지도 마치 대구를 대표하는 미(美)의 사절단 같았다. 그러고 보니 옹달샘 회원들은 재주꾼만 모인 것 같았다. 재 나름대로 장기를 하나씩 갖고 있었다.

    그 중에는 영화에 나오는‘타이타닉’의 여 주인공 ‘케이츠원슬렛’ 같이 오동통하고 고전적인 선화는 어디서나 시선을 끌었다. 열 명 중에 막내인 그녀는 매사 자신감이 넘친다. 그녀는 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하였고 뉴욕에 거주한 경험의 토대로 영어 과외지도의 선생님이다. 본토 발음이라며 우리 앞에서 입을 쑥, 내밀고 혀를 날름거리는 그 모습이 동물세계에서 보는 비단뱀의 분홍 혀를 보는 느낌이다. 이러다보면 한껏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오로지 영어가 본인을 돋보이게 하는 자랑꺼리라 생각된다. 그래서 누구와 대화중에는 영어 단어가 본인 모르게 희석되어 튀어나온다.

   영미는 국악을 잘했다. 장구를 멋들어지게 친다 했더니 어느새 가야금까지 잘 타고 있다. 복지회관이나 여러 행사장에 뽑혀 다닌다. 이조 여인의 한복차림으로 맵시를 내며 앉아 가야금을 여유 있게 타는 손놀림이 보통 솜씨가 아니다. 우리들 중에 왕언니는 약사다. 옹달샘 회원들은 아프면 병원에 가지 않고 약사님께 의뢰하여 약을 짓는다. 약 짓는 솜씨가 약손이고 병에 대하여 설명을 잘해준다. 회원들 모두 단골손님이다. 왕언니는 언니의 품위를 지키는 존경대상의 인물이었다.

   선화 그녀는 때로는 잠자는 공주같이 고요 하다가도 어느 한순간 새로운 변신으로 나타난다. 어느 날은 모나리자 여인의 직모 검은 머릿결에 검은 드레스 차림의 우아 함이다. 또 어느 날은 아네모네 마담의 화려함이 온몸을 휘감고 나타난다. 옹달샘 모임이 다가오면 이 여인이 어떤 차림으로 나타날지 모두 기대에 부풀어 상상의 나래를 편다. 스타는 늦게 나타난다 하였든가.  

   이 년 전 얘기다. 옹달샘 모임에서 첫 초상이 났었다. 나와 갑장인 정순 남편이 별세했다. 남편은 교직에 몸담고 있는 고교 영어선생님 이었다. 수업을 하러 교무실에서 교실로 가다가 복도에서 뇌졸중으로 쓸어 져 119에 실려 병원에 갔으나 운명 하였다.

   정순은 술을 좋아하는 남편을 원망 했다. 앞으로 살아 갈 길이 꿈같다며 장례식 운구차에서 나의 어깨에 매달려 계속 울었다. 아이들 셋은 공부를 하고 있는데 앞길이 구만리 같다고 눈물을 하염없이 흘린다. 정순은 순직한 남편의 퇴직금을 일시불로 받아, 풀어서 아무도 몰래 선화 집에 일부 돈 이자를 놓았나보다.

   장대비가 내리는 한여름, 맨드라미가 비를 흠뻑 들이켜고 있었다. 낮인데도 어두움이 드리운 오후,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한 회원한테 전화를 받고 까무러칠 뻔하였다. 나는 넋 나간 사람처럼 석고상이 되었다.

   우리는 까마득히 모를 일이다. 선화 집이 부도가 나서 집안이 풍비박산이 되었다한다. 빚쟁이들이 몰려와서 욕설로 난동을 부리고 집안을 온통 벌집처럼 들쑤셔 놓았단다.

   우선 먹기 좋은 곶감이 달 다고 사업자금으로 여기저기 유통해서 당겨 쓴 뚫린 구멍은 막을 수 없이 커지고 결국 부도를 내고 말았다. 더욱 그녀를 괴롭히고 슬프게 하는 것은 정실부인이 아닌 내연의 처란 사실이 부도가 나면서 낱낱이 모든 사람 앞에서 공개되었다. 그녀는 머리가 뜯겨 헝클리고 화장기 없는 초췌한 얼굴은 아무 능력 없는 나한테 안겨들며 울고 있었다, 나도 같이 울었다. 

   늘 상큼 발랄한 기쁨조였던 그녀가 이런 처절한 모습은 정녕 어울리지 않았다. 난생 처음 일어난 일이다. 여기에 옹달샘 회원 중 3명이 채권자였다. 정순은 돈을 늘일까 하고 남편 퇴직금 일부를 떼서 건설업 하는 선화 집에 회원들 몰래 이자놀이를 한, 햇수가 어느덧 한해가 지났다고 한다.

   선화 남편은 빌라, 원룸 등을 짓는 건설업자이다. 건설업이 경기가 좋지 않아 결국 부도를 맞게 되었다. 선화 집은 모델하우스 남은 빌라 한 채에다 그림같이 예쁘게 꾸미고 꿈의 궁전같이 살고 있었다. 이 집은 먼저 잡는 사람이 임자였다. 사람들은 서로 낚아채려고 아귀다툼이다. 그녀가 그렇게 당하는 것은 나의 살점 한 점이 피를 흘리며 떨어져 나가는 것같이  아팠다.

   동생처럼 아끼는 그녀가 실추(失墜) 당하고 있었다. 내 수중에 돈이 있다면 물심양면 아낌없이 도와주고 싶은 심정이다. 선아는 박식하고 견문이 넓은 여자다. 여자로서 내숭도 적당히 있고 인간미도 넘친다. 그녀는 대전이 고향이라 결국 이사를 가버렸다. 그곳에서 남편은 거래처를 뚫고 다시 건설업을 시작하였다.

   정순 네 집에 푼푼이 돈을 부쳐왔다. 세월이 얼마인가? 40년의 세월이 훨씬 넘었다. 티끌모아 태산이라 돈 계산은 깨끗이 정리 되었다. 우선 몫 돈 주고 푼돈 받는 덧 하였으나 정순은 통장하나를 개설하여 빼 쓰지않고 들어오는 데로 차곡차곡 모우니 몫 돈이 쌓여 졌다. 정순네는 외아들이 부산서 결혼식이 있었는데 대전에 사는 선화가 나타났다. 구름이 덧없이 흘러가고 바람 부는 세월, 곡예를 잘한 탓인지 선화는 아직 아름다웠다. 입시생 열명 과외가 바쁘다고 미소를 보낸다.

   나는 한 번씩 그녀를 떠 올린다. 크리스마스 때 준 선물이다. 진주 브로치는 아직도 소중히 보석함에 간직하고 있다. 그녀를 떠올리며 한 번씩 손위에 얹어 놓고 바라본다.

    45 회를 넘기며 옹달샘 모임의 해묵은 뚜껑을 열어보면 봄 ,여름, 가을, 겨울, 바쁘게 살아온 흔적을 볼 수 있다. 세월은 구름을 안고 바람인가. 회원 10명중 남편 네 분은 벌써 하늘나라로 가셨다. 이집 저집 자녀들이 결혼을 하여 자손들이  별 탈 없이 잘 살아가고 있다. 어느새 우리들도 육십 고개를 훌쩍 넘겼고 얼굴은 주름지고 머릿결도 탈색되어 하얗게 바랬다. 삶의 흔적을 어떻게 외면할 수 있을까. 웃음과 울음이 상극되는 옹달샘 , 홀로 길을 걷고 있노라면 어디서 언니! 하고 정다운 소리가 환청(幻聽) 속에서 나를 부른다.

깊은 산속 옹달샘 물은 긴 해가가도 마르지 않고 꽃잎을 동동 띄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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