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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팔만대장경 지킨 - 김영환 장군

작성자향상일로|작성시간26.06.10|조회수40 목록 댓글 0
김영환 장군

6.25 당시 지리산과 가야산에 숨어있는 공비를 토벌하기 위해 해인사 폭격을 지시한 상부 명령을 항명하며 우리민족의 국보인 팔만대장경을 지킨 고 김영환 장군의 공덕비가 해인사에 건립했다..

 

공덕비의 주인공 김영환 장군(당시 공군제1전투비행단 대령)은 51년 12월18일 상오 지리산 가야산 등지에 숨어있는 공산패잔병 소탕작전을 위해 공중 지원차 출격했다. 김영환 장군을 편대장으로 한 4대의 F-15기는 5백 파운드 폭탄 2발 5인치로케트탄 6발 기총 1천8백발을 장착했으며, 편대장은 7천5백 파운드짜리 네이팜탄 2발을 보유하고 있었다.

 

해인사와 인근지역 공비소굴을 폭격하여 지상군을 지원하라는 훈령을 받은 김장군은 미정찰기의 뒤를 따라 해인사를 향해 급강하여 공비들의 도주현황을 살폈다. 그때 정찰기가 해인사 법당에 흰 연막탄을 터트리며 폭격지점을 가리켰다.

 

편대가 공격에 돌입하려 할 때 김장군은 급상승하며 휘하의 편대원에게 다음과 같이 명령했다.

 

"편대장의 지시 없이 폭탄과 로케트 탄을 사용하지 말라" "기관총만으로 사찰주변의 능선을 소사 공격하라" 이때 미정찰기는 "해인사를 네이팜탄과 폭탄으로 공격하라" "편대장은 무엇하고 있는가"하며 독촉 훈령을 내렸다.

 

그러나 김장군은 끝까지 부하들에게 "공격하지 말라"고 재차 강조하고 해인사 뒤쪽 능선으로 몇 개의 폭탄과 로케트탄을 터뜨리고 귀대했다. 그날 저녁 미공군고문단은 김장군에게 목표를 알리는 연막탄을 보고 왜 폭격을 하지 않았느냐며 "사찰이 전쟁과 무슨 관계냐" "사찰이 국가보다 더중요하냐"며 따졌다. 이에 김장군은 "사찰이 국가보다 중요하지 않지만 공비보다는 사찰이 중요하다"라며 "그 사찰엔 7백년을 내려온 우리민족 정신이 어린 문화재가 있다"라고 답했다. 또 김장군은 "2차대전 때 프랑스가 파리의 문화를 살리기 위해서 프랑스전체를 나치에 넘겼고, 미국이 일본문화를 살리려고 교토를 폭격하지 않은 사실을 상기하기 바란다."라며 자기 주장을 밝혔다.

 

미 고문단은 김 장군의 말에 부동자세를 취하며 경레를 하고 "김대령과 같은 지휘관을 가진 한국공군의 앞날은 희망뿐이다"라고 말했다고 당시 김 장군과함께 폭격에 가담했던 전우들이 전했다. 그러나 김장군은 54년 3월 34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김영환 장군은 “영국 사람들이 인도를 잃더라도 셰익스피어와는 바꾸지 않겠다고 말했듯 우리 민족은 파리, 인도와 바꿀 수 없는 세계적인 보물 팔만대장경을 가지고 있다”며 명령을 거부했다. 그는 명령 불복종으로 징계를 받았으나 이후 을지무공훈장, 충무무공훈장, 미 비행훈장 등을 수훈하며 국내외에서 공로를 인정받았다.

 

정부는 고(故) 김영환 장군에게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인 동시에, 이제는 온 세계인이 지키고 가꾸어야 할 세계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을 6.25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지키는데 결정적으로 이바지한 공적을 기리고자 금관문화훈장(1등급)을 추서했다.

 

[출처 : 법보신문, 불교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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