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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평화를 위해 소신공양 : 베트남 틱꽝득(釋廣德)스님

작성자향상일로|작성시간18.01.07|조회수1,974 목록 댓글 1

불교와 평화를 위해 소신공양 : 베트남 틱꽝득(釋廣德)스님

  

 

   틱꽝득(釋廣德)스님은 1963년 6월 11일 베트남 사거리에서 응오딘지엠 독재정권의 불교탄압과 미국의 공격에 맞서 소신공양(燒身供養) 감행 했다. 스님의 소신공양 모습은 물질문명과 현대무기로 얼마든지 힘없는 동양을 농단할 수 있다고 여겼던 서양 세계에 엄청난 충격을 가했다.

 

 

 

 

   틱꽝득(釋廣德) 스님은 베트남을 유린한 프랑스와 미국 등 서양제국과 불교를 탄압한 부패한 독재 응오딘지엠정권에 항거하며 65살에 소신공양을 단행했다. 3년간 무문관에서 처절히 정진하기도 한 스님은 베트남 불교를 위해 언제든 소신공양을 하겠다고 베트남불교본부에 청원을 한 상태였다. 그의 소신공양은 군과 경찰의 방해를 피하기 위해 수많은 젊은 승려들이 틱광둑 스님을 둘러싼 채, 십자대로에서 서양의 특파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단행됐다.

 

   당시 독신이던 응오딘지엠 대통령 위세를 업고 절대 권력을 휘둘렀던 동생 응오딘뉴의 처로 베트남의 여왕으로 불렸던 마담 뉴는 스님이 소신공양하자 중의 바비큐라니 재미있네.”라고 비웃었다. 하지만 스님의 소신공양 이후 독재정권에 대한 미국의 포기로 응오딘지엠 정권이 붕괴되어 독재자의 일족들이 오히려 세계의 비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틱꽝득 스님의 몸이 불길이 휩싸이자 누워 있던 비구 스님들은 일어나 틱광둑 스님을 향해 절을 올렸고, 곁에 있던 비구니 스님들은 울부짖었다. 불길이 거세지자 틱꽝득 스님의 상반신이 앞으로 쓰러질 듯이 기우뚱했다. 그러나 다시 가부좌를 하더니 10분 후 뒤로 넘어졌다. 틱꽝득 스님은 소신공양 전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유언을 남겼다.

 

  “내일 만약 내 몸이 앞으로 넘어지면 흉한 것이니 그때는 해외로 망명하라고 했다. 하지만 뒤로 쓰러진다면 우리들의 투쟁은 승리하고 결국 평화를 맞이할 것이라고 했다.”

 

소신공양과 데모 대열을 막기 위해 총을 들고 나섰던 병사들도 받들어 총자세를 취했다.

 

                                     불에도 타지 않고 황산에도 녹지 않은 심장

 

  틱꽝득 스님의 장례행렬엔 무려 10만 명의 군중이 모여들었다. 그의 관에 다이너마이트가 설치돼 있다는 독재정권의 유언비어에도 불구하고 그의 관을 따르는 사람들도 7킬로미터가 이어졌다.

 

  소신공양 후 남은 스님의 법체는 소각로에 옮겨져 디젤 연료를 사용한 4천도의 불로 6시간 동안 태워졌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의 심장은 타지 않고 남았다. 다시 연료를 보충해 두 시간을 더 태워도 심장은 타지 않았다. 그러자 등 서구 언론은 이를 영원의 심장이라고 불렀다.

 

   응오딘지엠 정권은 틱꽝득 스님의 심장이 더욱 거센 활화산이 될 것을 염려해 비밀경찰청장인 쩐낌 때웬을 파견해 스님의 심장에 황산을 뿌렸다. 그런데도 심장은 녹지 않았다.

 

   비밀경찰들이 그 심장을 강제로 가져가려고 하자 스님들은 금속 용기에 담아 구리줄로 봉인하고 사이공 시내의 프랑스 은행에 맡겼다. 전쟁이 끝난 후 틱꽝득 스님의 심장은 하노이국립은행으로 옮겨져 보관돼 있다고 한다.

 

   그 후 미국 정부는 응오딘지엠 정권의 지지를 철회하였고 승려, 시민, 대학생들의 시위가 거세지면서 그 해 11월 쿠테타가 일어나 응오딘지엠 독재 정권 무너졌다.

 

 

당시 베트남의 젊은 승려였던 틱낫한 스님은 미국의 마틴 루터 킹 목사에게 소신공양에 대한 편지를 보냈다.

 

  "1963년 베트남 스님들의 소신공양은 서구의 기독교 사회가 가진 도덕적 관념과는 아무래도 좀 다릅니다. 언론들은 그 때 자살이라고 했지만 그 본질을 살펴보면 그것은 그렇지 않습니다.그것은 극단적 저항행위도 아닙니다. 소신공양 전에 남긴 유서에서 스님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오로지 제자들의 마음에 경종을 울리고 그들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베트남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하여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을 뿐입니다.“

 

틱광득 스님은 베트남 불교계의 중앙기관이라 할 수 있는 통일불교회에 제출한 ‘소신공양 청원서’를 통해 그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불교도는 공공연하게 억압되거나 배제되었으며, 어떤 곳에서는 생매장 당하거나 유배형을 받기도 했다. 또 어떤 곳에서는 종교활동이나 집회, 독경이 금지되었다. 인간의 불가침권인 신앙의 자유가 유린당하고 있다. 숭고한 자비를 배우고 단련하여 온 우리 불교도는 성실하게 참고 견뎌왔다. 그러나 맹목적인 무리들이 우리들의 그 아름다운 행위를 악용하고 베트남 불교도에게 고통을 안겨주었다.”

 

스님은 이어 신앙의 자유를 위해, 그 이상을 위한 투쟁에 베트남 불교도는 일어설 때가 되었다우리들의 입장을 분명히 하기 위해 스스로 이 몸을 불사른다.”고 했다. 결국 정부 당국의 불교탄압에 항거한 순교였던 셈이다.

 

  물질적인 힘과 과학적 논리로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미국 대 베트남의 전쟁에서 미국의 패배는 이미 틱꽝득 스님이 소신공양을 한 순간 결정되었다고 할 수 있다.

 

 

출처 : http://df3714.tistory.com, MBC 서프라이즈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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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향상일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5.10.07 2019년 친구 2명과 4박 6일 (1.12 ~ 19) 일정으로 다낭, 후에. 호이안를 여행하면 티엔무 사원을 찾아 소신공양 때 샤용한 파란색 자동차를 보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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