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보고의 적산 법화원(赤山法華院)(中國 山東省 榮成市 石島)
산동성 영성시(榮成市) 석도진(石島鎭) 북부의 적산(赤山) 남쪽기슭에 위치해 있는 적산법화원(赤山法華院)은 서기 823년 신라 해상왕 장보고가 당나라에 머물던 시절에 거액을 들여세운 불교 사찰로 이는 당시 적산인근에 위치한 신라방, 신라촌에 살던 동포들의 단합을 도모하고, 이국땅에서 신앙의 힘으로 의지력을 북돋는데 큰 힘이 되었다고 한다.
법화원은 상당시간동안 소실된 상태였다가 지난1988년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에 묘사된 내용을 바탕으로 중건되었는데 산의 남쪽을 기대고 앉아있는 대웅보전(大雄寶殿)은 이곳의 중요한 건축물로서 보전 안에는 생동감이 넘치면서도 정교한 석가모니의 소상이 자리하고 있다.
적산법화원(赤山法華院)은 통일신라 흥덕왕(826∼836) 때 장보고(張保皐)가 신라인 집단거주지였던 산둥반도 적산촌(赤山村)에 세운 사찰로서 '신라원' 중 가장 유명하였다. 장보고는 재당시절 적산지방에서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였으며, 당나라 무령군(武寧軍)의 소장(少將)으로 있을 때(832년) 적산법화원을 창건하였다.
이 사찰은 1년 수확량이 500섬이나 되는 토지를 기본재산으로 건립된 것으로, 장보고는 이를 통해 향후 무역활동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였다. 적산법화원은 당나라에 거주하는 신라인의 신앙 거점인 동시에 항해의 안전을 기원하는 예배처였다.
이외에도 신라와의 연락기관 역할을 하였고, 당나라로 건너가는 신라의 승려는 물론 일본의 승려들도 이 곳을 거쳐가며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일본 천태종(天台宗)의 승려 엔닌[圓仁]이 쓴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에는
신라 불교의 의식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 기록에 따르면 당나라의 승려로서 신라의 승려를 시봉(侍奉)하여 스승으로 섬기는 자도 있었다고 한다. 일본 승려 엔닌 일행이 머물다 돌아가 쓴 이 기록 때문에 한때 '일본의 절'로 잘못 알려지기도 하였으나 한중수교 이후 이를 바로잡고 적산법화원 경내에 장보고기념관이 세워져 있다.
적산법화원은 당나라 무종(845년)때 불교 탄압으로 파손되었으나 일본인 승려 엔닌(圓仁)의 저술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의 내용을 근거로 1998년 중건되었다.
출처 : 카페 꿈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