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아(無我)는 ‘내가 없다.’가 아닙니다.
무아(無我)는 제법무아(諸法無我)’를 줄인 말로
‘모든 존재는 끝없이 변하는 것으로 영원불멸한 고정된 개체가 없다.’는 뜻이다.
무아(無我)를 덮어놓고 숨 쉬고 있는 ‘실체적 나’라는 존재가 없다는 뜻으로 이해하는 사람이 많다.
무아(無我)에서 ‘아(我)’는 영원성을 의미한다.
무상(無常)과 무아(無我)를 핵심으로 하는 불교에서 업(까르마)은 변하고 소멸될 수 있다. 그러니 이 얼마나 희망적이고 창조적이며 기분 좋은 일인가? 무상(無常)은 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이고, 무아(無我)는 모든 존재는 인연에 따라 순간순간 그 모양을 달리 한다는 것이다.
무아(無我)는 영혼 불멸한 어떤 존재 즉 이생에서 내생으로 이어지는 아트만(atman: 진아)은 없다는 것이다. 만물 속에 내재하는 영묘한 힘은 없다. 자동차 운전사가 자동차를 바꿔 타듯이 이생의 육체에서 내 생의 육체로 이동하는 영혼 불멸한 개체는 없다. 불성, 법성, 본래면목, 순수의식, 진아(참나), 본성 등등 명제는 고차원의 생각이 정교하게 만들어낸 허상과 망상으로 지금까지 이런 말들이 명쾌하게 진리로 설명하거나 증명된 적이 없다.
모든 수행에서 참나(眞我)를 찾으려고 하는 것은 모래로 밥을 짓고 기와로 거울을 만들려는 것과 같다. 무아(無我)는 중생들이 몸과 인식 작용을 참된 자신이라고 착각하거나 혹은 어떤 사물이나 관념 등에 집착하여 스스로 괴로움에 떨어지는 것을 막아주려는 가르침이다.
무아(無我)는 살아 숨쉬는 내(我)가 없다는 ‘허무한 말’이 아니라 ‘만물에 영원한 실체가 없다.’란 뜻이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절대적 존재는 없고 모든 것은 인연에 따라 무상하게 변한다. 우리의 생은 연기의 흐름에 따라 ‘찰나생 찰나멸(刹那生 刹那滅)’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연기의 흐름 속에서 순간순간 좋은 인(因)을 심고 좋은 연(緣)을 맺으면 시절 인연에 따라 행복한 열매(果)가 열린다는 이치가 무아(無我)의 가르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