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정'이란 무엇인가.
선정은 고요히 생각하는 것이다. 자기와 세계의 깊고 깊은 곳을 붙들고 깊이깊이 생각하여 흔들림이 없게 하는 것이다. 선정이란 단지 선방에 앉아서 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순간순간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들여다보고 노력하는 마음을 말한다. 이런 종류의 방향과 결심을 가지고 수행한다면 움직이지 안는 마음을 가질 수 있고, 어떤 조건이나 상황에서도 마음은 우주와 같이 맑다. 이것은 거울처럼 맑아서, 붉은 것이 거울 앞에 오면 붉은 것을 비추고 흰 것이 오면 흰 것을 비춘다. 맑은 거울은 결코 아무것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볼 때, 들을 때, 냄새 맡을 때, 맛볼 때, 만질 때, 생각할 때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진리이다. 하늘은 푸르다. 나무는 초록빛이다. 개는 '멍멍' 짖는다. 설탕은 달다. 여러분은 배가 고프면 무엇을 하는가? 누군가 배가 고프면 당신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사람들은 선정이 단순히 앉아 있으면서 방해받지 않는 상태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는 틀린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진정한 선정은 푹신한 방석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을 것을 강조하면서 아주 깊은 명상에 빠진다. 그러나 이런 수행은 우리의 일상과 연결시킬 수 없다. 어떤 특별한 조건 하에서만 이루어지는 참선 정진은 선정과 일상의 삶을 분리시킬 분이다. 진정한 선정은 앉아 있거나 서 있거나, 걷거나 누워 있거나, 차를 타거나, 설거지를 할 때도 순간순간 움직이지 않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이것이 바른 선정이다.
임진왜란 때 황해도 구월산 배엽사라는 절에 한 노스님이 살았다. 젊은 스님들은 모두 피난을 가 텅 빈 절에서 노스님 혼자 법당에 앉아 좌선하고 있었다. 어느 날, 일본 군대가 들이닥쳤다. 그들은 불상을 가져가려고 법당 안으로 들어갔다. 법당 문을 부수고 들어서려는 찰나. 어둠 속에 앉아 있는 한 늙은 스님을 발견했다.
"아니, 이 늙은 중이 겁도 없이 도망치지도 않고 뭘 하고 앉아 있느냐?"
그들은 소리를 질러댔다.
"지금 나가지 않으면 바로 죽이겠다."
하지만 노스님은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옆에서 소리를 질러대건 말건 노스님은 흡사 석상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왜놈들은 노스님의 몸을 흔들고 코를 쑤셔보고 눈을 만져보았다. 살아 있기는 살아 있는 것 같은데, 동요가 없자 마침내 머리 위에 총을 세우고 공포를 한 방 쏘았다. 그러나 스님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부대장이 스님의 얼굴에 대고 말했다.
"야, 이 늙은 중아, 죽는 게 두렵지 않느냐?"
그러자 갑자기 스님은 그 부대장의 얼굴에 대고 '할'하고 소리를 내질렀다. 어찌나 크게 소리를 질렀던지 앉아 있던 사람, 서 있던 사람들이 모두 놀라 뒤로 자빠졌다. 법당 밖에서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일본인 장군은 온갖 위협과 모욕에도 일말의 두려움조차 보이지 않는 노스님의 태도에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노스님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도인을 몰라보고 희롱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런 다음 장군은 부하들을 모두 철수시키고 절을 떠났다. 그렇다. 노스님의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야말로 진정한 선정이다. 어떤 상황, 어떤 조건 하에서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그래야 지혜가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