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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경전과 이해

불교에서 경계란 무엇인가?

작성자향상일로|작성시간19.11.24|조회수263 목록 댓글 0

 질문 : 불교공부에서 경계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도대체 무엇을 경계라고 합니까?

 

해설 및 답 : 우리네 삶은 순경(順境)과 역경(逆境)이 교차한다. 순경은 모든 일이 뜻대로 잘 되어 가는 경우나 형편이고, 역경은 일이 순조롭게 되지 않는 불행한 경우나 형편을 말한다.

 

경계는 인과응보 이치에 따라 자기가 놓이게 되는 처지를 말 하지만 수행측면에서 경계는 반드시 일어나는 마디이며 그러므로 일어나는 몸과 마음의 변화를 일컫습니다. 마디를 통하여 자라고 지탱되는 대나무처럼 마음도 이와 똑같아 어떤 경계를 맞이하고 초월하느냐에 따라 그 어떤 시술이나 절대자도 모방할 수 없는 몸과 마음의 변화와 발전을 맞이합니다.

 

참선수행으로 드러나는 경계는 대체로 선이 굵고 분명합니다. 동기부여로 분심이 동하면 마치 산모처럼 심신을 뒤틀며 전생습인의 뿌리가 빠지는 인고를 겪지만 그만큼 시절인연을 앞당기는 것입니다. 언젠가 반드시 넘어야하는 내면세계가 업이고 그 과정이 경계이지만 어떤 인연으로 머무름 없는 최상승법을 터득하느냐가 관건입니다. 초기경계는 대체로 비천하며 상근기일수록 분심이 표출되는 마디가 뚜렷하고, 정(正)· 부정(不定)을 급속히 교차합니다.

 

숙세의 업을 마치 얼음덩어리처럼 마음에 껴안고 있는 것이 중생입니다. 지난 삶의 이력서인 업력에 따라 시대와 부모, 스승인연을 맞는 것이며, 운명 또한 전생업보에 의하여 현생의 역량과 팔자소관을 빚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운명은 어느 누구의 의지나 조작이 아니라 자신의 문제이며 탓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우리는 만물의 영장이기에 전생도 당연히 인간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사실은 그와 정반대의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인간은 고기능과 사유능력을 갖추어 낮은 근기로 떨어지지 않을 것 같지만 그것은 자가당착입니다. 우주섭리에서 바라본 인간은 특별히 고귀하거나 위대할 것도 없는 그냥 한 생명체일 뿐이며, 오히려 곤란스런 무리로 비추어질 겁니다. 헌신과 희생 없이 먹물로 채운 잔머리로 상대를 누리고 부려먹은 죄업으로 말미암아 내생에 사람 몸 받기가 하늘에 별 따기만큼 어렵습니다.

 

공덕을 쌓아야 해탈인연을 만납니다. 죽는 두려움과 다시 태어나는 고통 속에서 앎을 망실당하면 다람쥐 쳇바퀴 돌듯 생사윤회가 그치지 않습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알음알이는 불을 건너지 못하는 목불(木佛)과 같아 지닐 재산이 없습니다. 하근기일수록 무슨 절대자의 말이나 형상, 느낌 등 허망한 의지처를 쫓느라 생사 없는 해탈법은 귓전에도 닿지 않습니다.

 

경계 없는 수행은 시간낭비입니다. 더구나 법마에 빠지면 경계는 그림의 떡입니다. 화산이 폭발하듯, 대오(大悟)로서 일거에 전생훈습을 멸하는 대근기도 있지만 점수(漸修)의 한 마디 한마디 경계는 한 번의 일생과 같습니다. 경계가 극명한 경우는 체취와 습성 등이 온갖 축생의 특성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인간 몸 받아 배우고 익혀 그럴듯하게 치장된 중생의 내면세계는 탐욕의 범벅이며 하등한 동물 습인이 많을수록 독살스럽고 추하며 어둡습니다. 경계는 전생 훈습을 한 단계 벗는 과정이며 그런 만큼 혜()가 밝아집니다. 밝음은 자비롭고 의로우며 근면한데서 나옵니다.

 

살며 마주치는 순간순간이 바로 경계입니다. 순간은 다시 만날 수 없기에 활짝 깬 사람은 순간을 지극히 사랑합니다. 이것이 바로 돈오(頓悟)의 실상이며, 말과 문자 무늬에 속으면 그대로 부질없는 삶입니다.

 

출처 : 법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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