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문제가 있을 때 흔히 “대화로 해결하자”고 한다. 갈등해결이란 바로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 과정이다. 그런데 대화(對話)란 무엇인가. 사전적 의미는 서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대개 그렇게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은 그렇지 않다. 서로 말하기만 해서는 대화가 안 된다. 둘 다 이야기하고 아무도 듣지 않는다면 무슨 대화가 되고 무슨 문제가 풀리겠는가. 진정한 대화는 서로 듣는 것이다.
갈등 당사자들이 만났을 때 거의 예외없이 벌어지는 현상이 한 가지 있다. 서로 자기 얘기만 하려고 하지 상대방 이야기엔 귀를 기울이지 않는 태도다. 당사자들끼리 갈등을 해결하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이런 문제는 갈등상황뿐 아니라 우리 일상생활 곳곳에서 벌어진다. 무슨 토론회나 간담회가 열려도 참석자들은 서로 자기 얘기하기 바쁘다. 상대방 얘기를 중간에 끊고 말꼬투리를 잡으며 따지려 들기 일쑤다.
부부간 갈등의 가장 큰 원인도 이것이다. 흔히 부부간 대화 부족이 문제라고 지적되곤 한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대화가 부족하게 되는 것일까? 남편들이 바빠서…? 그것도 한 가지 요인일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주된 요인은 따로 있다. 듣는 자세가 안 되어 있는 것이다. 특히 남편들이 그렇다. 대부분의 아내들이 갖고 있는 가장 큰 불만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남편과의 사이에 어떤 문제가 있어 속으로 끙끙 앓던 아내가 뭘 이야기하려 해도 남편은 귀기울여 듣질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면 아내는 남편과 얘기해도 소용없다고 생각하고 아예 대화를 포기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문제는 속에서 곪아 결국은 폭발적인 양상으로 터져나오게 되는 것이다.
반면, 다른 사람의 얘기를 잘 경청해 주는 사람을 이따금 우리 주위에서 보게 된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기분이 상쾌하다. 또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어진다. 필자가 고등학교 다닐 때 1년 선배가 여자 친구를 사귀고 있었다. 그 선배는 주위에서 인기 있는 이른바 ‘킹카’였다. 그런데 그 선배가 사귀던 여학생은 겉보기에 사실 별로였다. 궁금해서 물었다. 왜 그 누나와 사귀냐고. 그랬더니, 그 선배 대답이 “내가 뭘 얘기할 때 들어주는 자세가 너무 좋아서…”라는 것이었다.
▶들을 ‘청(聽)’자에 담긴 깊은 뜻
듣는다는 뜻의 한자로는 청(聽)과 문(聞)이 주로 쓰인다. 청(聽)자를 잘 살펴보면 듣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어떻게 해야 제대로 듣는 것인지 알 수 있다. 우선 왼쪽을 보자. 귀 이(耳) 밑에 있는 것은 내민다는 뜻의 정(壬)자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때는 귀를 내밀어 주의 깊게 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귀 이(耳) 밑에 있는 것을 임금 왕(王) 또는 구슬 옥(玉)으로 읽어 귀는 인간의 몸에서 으뜸 가는 보배라는 뜻으로 해석하는 이도 있다. 부처님의 상징은 큰 귀다. 관상학에서 눈은 이지적인 면, 코와 입은 성격, 귀는 인덕과 복의 상징으로 친다. 인간관계에서 귀가 얼마나 중요한지 말해주는 것이다.
청(聽)자의 오른편에 있는 것은 덕(悳)자가 변형된 것인데, 이는 덕(德)의 고어다. 듣는다는 것은 귀로 덕을 쌓는 일이라는 얘기다. 덕(悳)은 곧 ‘바른(直) 마음(心)’이니, 듣는다는 것은 “바른 마음으로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란 뜻이 된다. 청(聽)자의 오른편 구성요소를 뜯어보면, 열 십(十)자 밑에 눈 목(目)자가 있고 한 일(一)자 밑에 마음 심(心)자가 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때는 열 개의 눈을 가지고 한 마음으로 집중해서 들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열 개의 눈을 가지고 듣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고정된 한 가지 시각이 아닌, 열 가지 시각에서 다양한 측면을 살피면서 들으라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언행을 어느 한쪽으로만 섣부르게 단정하지 말고, 두루 헤아리면서 들으라는 것이다.
“하나의 마음으로 듣는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흐트러지지 않은 마음으로 집중해서 들으라는 것이다. 그렇게 다른 이의 얘기를 들어서 서로의 마음이 하나로 통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사람의 마음을 진정 이해할 수 있도록 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들을 문(聞)자도 비슷한 뜻을 내포하고 있다. 한문학에서는 이 글자를 귀 이(耳)의 뜻과 문(門)의 음이 합쳐진 형성(形聲)문자로 분류한다. 하지만 옛사람들이 굳이 문 문(門)자를 쓴 데는 깊은 뜻이 있었으리라고 본다. “듣는다는 것(聞)은, 귀로써 다른 사람의 문 안으로 들어가는 것”, 즉 들음으로써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음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잘 듣는 것은 덕(德)을 쌓는 일
듣는 행위 자체는 소극적인 행동이다. 가만히 있어도 소리는 절로 들려온다. 그러나 사람의 말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다. 그 소리에 담긴 상대방의 심중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 학생이나 직장인들이 토플(TOEFL)시험에서 가장 고전하는 분야가 듣고 파악하기(listening & comprehension)다. 물론, 남의 나라말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말로 듣고 파악하는 실력은 과연 어느 정도인가.
듣는 행위의 1차적인 목적은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다. 특히 갈등이나 문제가 있을 경우, 상대방의 격한 감정을 해소시키면서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바로 듣기의 중요한 효과다. 그러려면 좀더 적극적인 행동이 있어야 한다. 상대방 얘기를 귀기울여 듣는 경청(傾聽 또는 敬聽)의 단계에서 한발 더 나아가 적극적인 듣기(active listening)가 필요하다.
듣기의 기본은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귀 자체는 기울일 수 없기 때문에 대신 자신의 상체를 상대방 쪽으로 기울이고 시선은 상대방의 눈과 자주 마주친다. 상대방이 말하는 내용에 대한 관심과 이해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이거나 “아, 그렇군요” 등의 추임새를 중간중간 넣어주면 좋다. 자신의 표현으로 중요한 대목을 간추려 다시 말함으로써 그 사람이 말한 것을 자신이 정확히 이해했는지 확인하는 것도 때로 필요하다. 상대방의 입장과 심정에 이해와 공감의 표시를 적절히 해주는 것도 아주 중요하다. 상대방의 이야기 중 불분명하거나 이해 안 되는 것이 있으면 섣불리 넘겨짚거나 단정하지 말고 질문을 한다. 질문할 때는 따지는 식의 닫힌 질문(Yes or No?)이 아니라 “왜…?” “어떻게…?” 등으로 시작되는 열린 질문이 되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듣다보면, 말하는 사람 입장에선 상대방이 지금 자신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듣고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된다. 아울러 자신의 본뜻이 상대에게 제대로 전달되고 있다는 것도 확인된다. 상대방이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제대로 이해해 주는 모습을 보이면 쌓였던 감정이 스르르 녹아내리게 된다.
듣기의 가장 놀라운 효과는 말하는 사람의 내면에서 일어난다. 가까운 사람이건 아니면 갈등의 상대방이건 누군가가 자기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면 그 사람은 이야기를 하는 동안 스스로 자신의 생각을 가다듬고 자신을 돌이켜보는 기회를 갖게 된다. 가슴속에 쌓여 있던 감정의 앙금이 걸러지고, 엉켰던 것들이 갈래를 찾아 정리된다. 친구 등 가까운 사람에게 자기 고민을 털어놓았을 때 속이 후련해지는 걸 경험해 본 사람 많을 것이다. 또 듣는 이가 무슨 특별한 조언을 해주지 않아도 뭔가 정리되는 것 같고, 새로운 각도에서 자기 문제를 바라볼 수 있게 된 경험을 해보았을 것이다. 가톨릭의 고해성사 의식도 아마 비슷한 맥락에서 이뤄지는 것이리라. 이렇듯,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은 문제해결의 출발점일 뿐 아니라, 들을 청(聽)자에 담긴 뜻 그대로 덕을 쌓는 일인 것이다.
강영진 미국 전문중재인•조지메이슨대학 분쟁해결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