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福)을 짓되 복을 탐하지 않는다, 대가를 바라고 하는 게 아닙니다. 열심히 농사를 짓되 가을 추수에 대해서 탐하지를 않고, 소득이 생기면 다 일체중생에게, 양식 없는 사람에게 나눠줘 버립니다. 그럼 그는 무슨 소득이 있느냐, 그는 소득 같은 것을 논하지 않습니다.
그는 따뜻한 봄날에 흙 밟는 것이 행복이고 호미 갖고 땅을 파는 것이 행복이고, 씨앗 뿌려 싹 나는 것 보는 것이 행복이고, 잡초 뽑고 곡식 자라는 것 보는 것이 행복이며, 추수하는 것이 행복이고 그것이 중생에게 나눠져 맛있게 먹는 것을 보는 것이 행복이다, 그의 삶 하나하나가 그대로 행복이지 뭔가를 해서 결과를 얻어야 행복이 아니다, 그는 얻으려는 생각이 아무 것도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엄마들도 아이를 낳을 때 그랬을 겁니다. 엄청난 고통을 겪었지만 애기가 무사히 나온 것만으로도 기쁨이 솟았을 겁니다. 애기를 키울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뭔가 해주니 애기가 좋아하는 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쁩니다. 그게 보살의 마음입니다. 엄마가 애기를 키울 때와 같은 마음을 내는 게 바로 보살의 마음이요, 보살의 마음이 사랑입니다.
그러나 그건 어렸을 때 뿐이고, 조금만 크면 벌써 대가를 기대합니다. 내가 너 낳는다고 얼마나 고생했는데, 내가 너 키운다고 얼마나 고생했는데, 이런 생각을 일으키고 바라는 마음을 내게 되면 부모자식 간에 원수가 됩니다.
엄마가 자식을 낳을 때나 갓난아기 키울 때의 마음이면 절대 부모와 자식 간에 원수가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자라면서는 너는 너고 나는 나다 이렇게 생각하니까, 상(相)이 지어지니까 안 되는 것입니다. 일체중생이 다 한 몸인 줄 알게 되면 다 그냥 되는 겁니다. 그것은 지식이나 생각으로 그렇게 되는 게 아니라 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 됩니다.
무량대복은 자신이 사는 삶 하나하나가 행복입니다. 무량대복(無量大福)은 평소에는 없다가도 그때그때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생기는 복(福)을 말한다. 무량대복한 사람에게는 겨울에 겨울옷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며칠 내로 필요로 한 옷이 생기고, 음식도 필요로 하는 것을 마음으로 요구할 때 저절로 생긴다. 생필품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일으키면, 며칠 내로 누가 그 물건이 있는 곳을 알려 주거나 갖게 된다.
출처 : 법륜 스님 <금강경 강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