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語)은 곧 마음이다. 망어(妄語)와 양설(兩舌)은 탐심의 표현이며, 기어(綺語)는 애욕, 악구(惡口)는 곧 진심의 표현이다. 눈에 뜨이는 거짓말, 눈에 들어나는 양설과 기어, 그리고 눈에 뜨이는 악구에는 물론 삼가야 탐진치(貪瞋痴)의 싹이 자라지 아니하고 밝음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점잖은 말 같고 합리적인 말 같아도, 자신이 하는 말 하나하나에도 자신의 용심의 독(毒)이 들어있는 경우가 있다. 말은 심각한 재앙의 씨가 될 수 있으니, 한 마디 한 마디 말도 부처님께 말씀드리는 것처럼 정성을 드려야 할 것이다.
당나라의 뛰어난 문장 한퇴지(韓退之, 당송팔대가의 한사람)가 조주(潮洲) 자사(刺史)시절, 당시 생불로 추앙을 받았던 태전선사에게 “배에 음산한 바람이 불어 배가 갈 길을 잃고 나찰(귀신)의 나라에 좌초했어도 그 중 한사람이 관세음보살을 염하면 모두 해탈을 얻느니라.”라는 법화경이란 불경(佛經) 한 구절이 무슨 뜻인가 하고 질문하였던 적이 있었다.
그 말을 들은 태전선사는 댓 뜸 일갈(一喝) 했다.
“어떤 개 같은 년이 개 같은 짓을 하여 저런 개 같은 놈을 낳았는고? 하고 추상같은 꾸중을 하였다.
밝은 태전선사는 비록 불경(佛經)이라고는 하지만 “음산한 바람이 분다”는 한퇴지의 말 속에서 개(犬)와 같은 추한 용심이 번득이고 있는 것을 보았던 것이고, 그 추한 용심을 해탈시켜 주기 위해서 험한 말을 쓰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같은 험한 말을 듣기까지 한퇴지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죄업이 많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은 곧으며 학식도 많고 인품이 훌륭하다고 자만하고 있었을 것이다. 물론 자신이 천한 개의 용심 속에 뒤 덥힌 죄인이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한퇴지는 태전선사의 말씀을 계기로 자신의 죄업이 태산과 같음을 깨닫고 독실한 불자가 되었지만, 태전선사와 같은 선지식을 만나지 않고 자신의 용심대로 살다 세상을 떠났으면 그 후생은 어찌되었을까.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구나 한퇴지와 같이 자신의 죄업이 얼마나 큰지 모른다. 자신은 깨끗한 존재로 착각하고 다른 사람은 어리석다하고 가르치려 한다. 남의 허물을 들추며 오만하기 쉬운 것이다.
출처 : 바른법연구원 김원수 법문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