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 제7분을 생각해 본다
신라의 성인 원효대사는 “空은 執着이라는 병을 치유하기 위한 藥이다.”고 하였다. 집착이라는 병을 치유하기 위하여 공이라는 처방전을 내리신 분은 석가모니부처님이시다. 이 처방전에 따라 약을 꾸준히 복용하면서 집착이라는 병마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각자에게 달린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공에 집착하여 空病이라는 중병에 걸려 헤어나질 못하고 있어 문제다.
금강경은 집착을 치유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대표적인 대승경전이다. 금강경은 대승경전이라 하나 초기경전에 충실하고 있다. 그래서 이 경전의 우수성이 인정된다.
금강경은 我空과 法空을 설한 경이다. 혹자는 이 경이 보시를 강조한 경이라고 하는 자도 있으나 이는 그렇지 않다.
수보리존자가 부처님께 ‘보리심을 낸 수행자는 어떻게 머물러야 바깥경계에 머물지 않으며(應云何住),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해탈을 얻을 수 있습니까(云何降伏其心)?’ 하고 질문을 하니, 부처님께서는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아상(我相 atma samjna), 인상(人相 pudgala samjna), 중생상(衆生相 sattva samjna), 수자상(壽者相 jiva samjna)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심을 주신다. 또 외부 경계, 즉 색. 성. 향. 미. 촉. 법에 머무름이 없이 그 마음을 내라고 이르신다. 이것이 유식불교에서 말하는 我空, 法空이다.
본인은 여기에서 금강경을 논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제7분 끝 무렵에 있는 「一切聖賢 皆以無爲法 而有差別」이 異論이 많아 한번 검토해 보자는 의도이다.
이구절의 번역도 다양하다. 송강 스님의 금강경 편역에 나와 있는 내용은 이렇다.
⓵ 현장 一切聖賢 皆以無爲之所顯故
⓶ 류지(魏譯) 一切聖賢 皆以無爲法得名
⓷ 진제 一切聖賢 皆以無爲眞如所顯故
⓸ 급다 一切聖賢 無爲法顯明
⓹ 의정 一切聖賢 皆以無爲所顯現
번역 당시부터 번역자들의 생각이 다른 이 부분의 한역 분 해석도 실로 다양하다. 여기에 비교표를 만들어 보자.
1. 조계종표준금강경
‘그것은 모든 성현들이 다 무위법 속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註 모든 성현들은 무위법(열반)을 체험했다는 점은 같으나 그 속에서 계위에 차이가 있다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
2. 금강경오가해·설의
‘모든 현자와 성인이 다 무위법을 근거로 차별을 두기 때문이다.’
註 ⅰ성인이 진여의 청정함에 의하여 이름을 얻은 것이지 어떤 법을 따로 얻은 것이 아니다.
ⅱ삼승의 성현들이 모두 무위를 닦고 증득한다는 뜻이다(규봉 스님)
3. 최대림, 금강경
‘모든 성인이나 현인들은 무위법을 쓰시되 다 차별이 있기 때문이다.’
4. 최대림, 산스크리트어 금강경
‘성자들은 <절대> 그 자체에 의해서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5. 덕현 스님 금강경
‘모든 성현들의 가르침은 다 무위법이라는 점에서 온갖 바르지 않은 가르침과 다르기 때 문이다.’
6. 금강경독송집, 금강선원
‘일체 성현이 다 무위법으로서 차별을 두었기 때문이다.’
7. 금강경, 송강 스님
‘현인이나 성인들은 모두 깨달음의 경지로 인한 다른 표현이기 때문이다.’
8. 금강경강해, 도올 김용욱
‘일체의 성현들은 모두 함이 없는 법으로 이루어져 범인들과는 차별이 있기 때문이다.’
<도올의 주> 모든 성현이 비록 차별의 세계에서 살고 있지만 그들의 본질은 오로지 무위법에 의해서만 드러나기 때문이다. <Max walleser> 왜냐하면 고귀한 사람들(일체성현)은 만들어진 것이 아닌(무위법) 것들에 의하여 특징 지워 지기 때문이다.
9. 금강경, 틱낫한 스님
‘왜냐하면 성인들은 무위법으로 다른 이름과 구별되기 때문이다.’
(모든 성인은 오로지 무위법으로 범부와 차별을 이룬다)
10. 금강경언해, 심재동 논저
‘일체의 현인, 성자들은 모두 함이 없는 법으로 <범인들과는 달리> 차별이 있기 때문이다.’
인도의 세친스님은 금강경을 27개의 의문점을 제시하고 이에 답하는 형식이라고 논에서 밝히고 있다. 그런데 이 7분은 의심 3번째로 “상이 없으면 어떻게 법을 설할 수 있나?”하고 의문점을 던진다. 그 의문에 대한 답이 이 7분의 내용이라고 보아야 한다.
“여래는 깨달음을 얻은 바도 없고, 법을 설하지도 않았다. 어떤 정해진 법도 없기에 아누다라삼먁삼보리라 하며, 역시 어떤 정해진 법도 없기에 여래는 가히 설하셨다 라고 수보리는 이해합니다. 왜 그렇게 이해하느냐 하면 여래께서 설하신 법은 법도 아니고 법아님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째서 그러냐 하면 일체성현은 모두 무위법(무위의 세계에 들었기에)으로 (범부와는)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라는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상(相)이 없는데 어떻게 법을 설할 수 있는가?
부처님은 무위(無爲)의 경지에서 유위(有爲)의 범부들에게 가르침을 주신다.
결국 7분의 분분한 해석들은 ‘부처님과 같은 성현들은 무위의 세계에 들었기에 범부와는 차별이 있다.’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무위의 세계는 분별과 집착이 없는 아공, 법공의 경지이다. 무위의 세계라 하여 별도의 일정한 공간이 있다거나 특징지을 어떤 물리적 현상, 정신적 신이가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마음에서 ‘나’라는 이기심, 즉 집착심을 여읜 마음상태를 이르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