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음 청정하면 어디든 극락이다
인류는 까마득한 옛날부터 이상세계를 꿈꾸어왔다. 그곳은 대체 어디에 있을까? 동양에선 옥황상제가 사는 하늘나라와 신선들이 사는 선계를 동경했다. 이곳들이 과연 물리적인 장소인지는 애매하다. 동양인들의 우주관이 모호했기 때문이다. 서양인들이 동양에 만든 낙원 샹그릴라도 있다. 남미엔 엘도라도가 있다.
인류는 극락으로 천국으로
끊임없이 이상세계 동경해
탐진치 벗어나지 못한다면
장소 관계없이 그곳이 지옥
모두 한탕주의이다. 본인은 하나도 변한 게 없지만, 그 세계로 가는 순간 끝없는 행복이 영원히 계속된다. 따라서 그곳이 어디 있는지 알아내기만 하면 된다. 위치만 알면 갈 수 있다는 놀라운 가정이 밑에 깔려있다. 샅샅이 뒤진 결과 지구상에는 낙원이 있을 만한 곳이 없으므로, 낙원이 있다면 분명히 외계에 있다. 하지만, 가장 가까운 외계 태양계 프록시마 센타우리가 빛의 속도로도 4.3년이나 걸리므로, 어디 있는지 알아도 갈 수가 없다. 물질과학의 발달은 역설적으로 물리적 천국을 포기하게 만든다. 그래서 오히려 영계 천국이 가기 쉽다. 대단한 역설이다.
이상세계는 문명의 발달에 따라 모양을 바꿔왔다. 하늘나라의 위치는 아리송했다. 어디 있는지 몰랐다. 아무도 몰랐다. 그냥 하늘에 있다고 했다. 머리 위 하늘을 가리켰다. 남반구에 사는 사람이 가리키는 하늘은, 북반구에 사는 우리가 가리키는 하늘과 정반대 방향인데 도대체 어느 쪽에 있다는 말인가?
극락은 더 모호하다. 그냥 서쪽으로 한참 가면 있다고 했다. 10만억 불국토를 지나가야 한다 하니, 악인들이 우주선을 만들어 불법으로 오는 걸 막으려는 심산일까. 그런데 우주 공간에서 보면, 지구상 특정 지점에서의, 정오의 서쪽과 자정의 서쪽은 정반대 방향이므로 어디로 가란 말인지 알 수가 없다. 과학의 발달은 하늘나라를 더욱 가기 어려운 곳으로 아니 불가능한 곳으로 만들어버렸다.
동양에서는 요순의 세계를 이상향으로 삼았다. 아마 인구 십만이 안 되는 원시공산주의 사회였을 것이다. 유가(儒家)는 이때를 사람살기 좋은 태평성대로 치지만, 과연 그러한지 의심스럽다. 홍수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황하의 범람은 큰 문제였다. 황제의 임무 중 하나는 치수였다. 곤은 치수사업에 실패해 7년 만에 요 임금에게 사형을 당했으나, 그 아들 우는 순 임금에게 발탁되어 장장 13년 만에 성공하여, 순을 이어 황제가 되었다. 태평성대라는 요순시대도 적어도 20년 동안 홍수로 시달렸다는 이야기이다. 천재지변 말고도 질병이 있었다.
십승지(十勝地)가 있다. 산속 깊숙이 자리잡고 외계에 노출되지 않은 동막골 같은 곳이다. 삿된 기운은 다 외계에서 온다는 믿음이다. 자신은 깨끗하고 착한 사람이지만 남들은 더럽고 나쁜 사람이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남들로부터 격리되어 살면 행복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그리고 필연적으로 그리될 거라는 믿음이다. 문제는 다들 그렇게 생각한다는 점에 있다. 모두 자기들은 착하다는데, 문제가 끝없이 발생하고, 다툼 끝에 전쟁이 일어나고 떼로 학살당한다.
사람들은 이상향을 찾아가야 하는 곳으로 생각했다. (지금 여기에) 만들자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지구를 구석구석 뒤졌다. 사람들이 볼 때, 천국과 극락은 가는 곳이지 만드는 곳이 아니다. 그래서 열반도 실체화하여 가는 곳으로 만들었다. 상락아정(常樂我淨)의 세계가,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꼬치꼬치 캐물으면 삼계를 초월한 곳이라고 얼버무렸다.
하루에 담배를 1억 갑씩 피우는 골초들이 초대형 우주선을 띄우고 공기가 깨끗한 행성을 찾아 나섰다. 천신만고(千辛萬苦) 끝에 그런 행성을 발견하고는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했다. 그런데 도착 다음 날로 행성은 1억 개비가 내뿜는 자욱한 담배연기로 뒤덮였다.
종교인들은, 골초들이 자기들이 더럽힌 곳을 떠나 깨끗한 곳을 찾아가듯이, 자기들이 지옥으로 만든 지구를 떠나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낙원과 천국을 찾아 나선다. 하지만 우리 마음이 탐·진·치(貪瞋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우리가 가는 곳은 다 지옥이 된다. 거꾸로 우리 마음이 청정하면 어디 있든지 다 극락이다. 그래서 심청정(心淸淨)이면 국토청정(國土淸淨)이다.
지구 밖 낙원으로의 도주는 우리가 사는 지구를 낙원으로 만들 의무를 포기하는 비겁한 행위이다.
강병균 포항공대 수학과 교수 bgkang@postech.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