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불교, 외적 거주처에서 마음으로 확장
불교가 커짐에 따라, 부유한 상인들이 귀의자가 됨에 따라, 수행자들을 집으로 초대하여 좋은 음식을 대접했다. 이런 음식을 거부하고 항상 예외 없이 걸식에 의존하는 게 상행걸식이다.
초기불교는 출가자 의식주
12두타행으로 확실히 정리
대승불교, 내적요소로 발전
출가 불교수행자들은 모두 아란야행을 할 의무가 있었다. 아란야는 적정처(寂靜處: 고요한 곳이라는 뜻으로, ‘절’을 이르는 말 )란 의미로서 마을에서 멀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 있어야 한다. 세속의 소란으로부터 떨어져 있어야 하고, 걸식하기에 너무 멀어도 안 된다. 불교수행은 외적환경에 휘둘리는 걸 피해야 한다. 아직 수행이 깊고 단단하게 뿌리내리지 않은 사람은 외적 산란요인이 없는 적정처에 몸을 두고 지금까지 습관적으로 일어나던 번뇌를 관해야 한다.
아란야에 거하되 집에 살지 않는다. 소위 수하석상이다. 돌을 방석 삼아 돌 위에 앉고 나무를 지붕 삼아 나무 밑에 거하며, 벌레와 비와 땡볕을 피한다. 아무리 훌륭한 나무 밑이라도 이틀을 넘지 않는다. 집착하면 집이 되기 때문이다. 돌 위에 나무 밑에 살되 등과 옆구리를 땅에 대지 않는다. 소위 장좌불와이다. 인간은 직립보행을 한 이래로 잠을 잘 때를 제외하고는 항상 허리뼈를 세우고 앉아 있거나 서 있었다. 높은 나무 위가 아니라 초원에 산다면 미어캣처럼 까치발로 서서 키를 높여야, 은밀히 다가오는 잠재적인 위험을 미리 탐지할 수 있다. 척추를 곧추세움은 깨어있음의 상징이다. 언제 갑자기 죽음의 사신에게 잡혀갈지 모르는데 등과 옆구리를 땅에 대고 잘 수는 없는 일이다.
총간주이다. 무덤에 산다. 고대 인도의 무덤은 집의 형태이다. 시신을 그 안에 안치한다. 시신과 더불어 사는 것이다. 해골과 뼈가 드러난, 그리고 썩어가는, 시신은 무상관의 일종인 백골관과 부정관을 하기에 그만이다.
분소의를 입는다. 버린 옷이나 무덤에 버려진 옷을 주워 누덕누덕 기워입는다. 새 옷도 안 되고 중국제 비단옷도 입으면 안 되는데, 금실로 수놓은 금란가사라니 되지 않은 소리다. 옷은 작업복·평상복·예복 3벌만 유지한다.
하루 한 끼만 먹는다. 소위 일종식이다. 생산활동이나 나라의 부역에 참가하지 않으므로 에너지가 많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이 음식을 통해 얻는 생체에너지는 대부분 뇌가 쓴다. 타인의 마음(감정 의도)을 읽고 대책을 세워야 생존경쟁에서 도태하지 않기 때문이다. 수행자는 외적 다툼과 내적 다툼에, 물리적 다툼과 정신적 다툼에 끼어들지 않으므로 많은 에너지가 필요 없다. 음식은 대부분이 번뇌의 먹이이다. 번뇌가 없는 수행자에게는 많은 음식이 필요 없다.
그리고 식탐은 수많은 다른 탐욕을 낳는다. 그러다가 처음의 탐욕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고, 진화 끝에 모습을 바꾼, 엉뚱한 탐욕이 징그럽게 자기를 쳐다본다. 탐욕을 역추적하면 식탐의 꼬리가 보인다. 사람들의 의지는, 아무리 멋진 표상으로 포장되었어도, 기본적으로 다섯 가지의 욕망으로 귀결한다. 재·색·식·명·수!
그날따라 허기가 지더라도 한 끼 이상을 먹지 않는다. 정오 이후에는 유동식이나 액체음식도 마시지 않는다. 소위 오후불식 또는 중후부득음장이다. 하루 한 끼만 먹더라도 많이 먹지 않는다. 한 번에 세 끼 양을 먹지 않는다. 소위 절량식이다.
이렇게 식탐을 절제하고 떠난 마음에 일어나는 공덕을 모든 신도들의 집에 평등하게 베푼다. 어느 집 음식이 맛있다거나 먹음직스러워 보인다고 해서 그 집 음식만 받지 않는다. 칠등분해서 일곱 집으로부터 평등하게 받는다. 한 집에 머물면 불제자가 아니다. 소위 차제걸식이다.
이상이 12두타행인데 출가자들의 '의식주'에 대한 것들로서, 초기불교의 모습이다. 처음으로 지적 세례를 받은 소박한 사람들에게는 이걸로 충분했지만, 추상적 사고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는 다른 게 추가로 필요해졌다.
아란야는, 대승불교로 가면서, 초기불교의 외적 동산에서 내적 동산인 마음으로 바뀐다. 육조스님의 '직심시도량'이 바로 이런 말이다. ‘금강경’의 가르침은 기수급고독원이라는 외적 아란야(道場)에서 직심(直心)이라는 내적 아란야로의 이행이다.
강병균 포항공대 수학과 교수 bgkang@postech.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