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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

29. <금강경 해설>법이 있는 곳에 탑이

작성자향상일로|작성시간24.04.23|조회수45 목록 댓글 0

▶경전 받들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바로 불탑

 

‘또 수보리야. 이 경전이나 사구게를 설하는 곳에는 모든 사람들과 천인들과 아수라들이 모두 탑묘(塔墓)처럼 공양을 할 것이다. 하물며 수지독송(受持讀誦)하는 사람이랴. 이런 사람은 으뜸가는 드문 공덕을 지었음을 알라.’

 

설산동자가 자신 던진 것처럼

몸을 바쳐야 얻어지는 게 진리

진리 설해지는 곳에 불탑 있어

 

법(法)을 듣는 것은 희유한 일이다. 부처님은 설산동자 시절에 한 구절 법을 듣기 위해 몸을 바쳤다. 어느 날 야차가 중얼거렸다. ‘제행무상 시생멸법.’ 우연히 그 말을 엿들은 동자가 다음 구절이 궁금해졌다. 날이 갈수록 참을 수 없어졌다. 그래서 다음 구절을 알려달라고 사정했으나, 야차는 공짜로 알려줄 수 없노라고 한다. 인색하다. 몸을 먹이로 달라 한다. 절벽에서 야차를 향해 몸을 던진 동자에게 뒷구절이 들린다. ‘생멸멸이 적멸위락.’

 

(설산동자는 나무꾼이었을까? 육조스님은 나무꾼이었다. 홀로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나무를 팔러 나간 시장에서 어떤 비구니가 독송하는 금강경을 듣고 마음이 열렸다. 나머지가 듣고 싶어 참을 수가 없어 홍매산을 찾아갔다. 동산회상 행자가 되었다. 산을 떠나던 날 새벽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스승 홍인이 일러주는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에 크게 마음이 열렸다. 늙은 어미와 바꾼 한 구절이었다. 깨달음이었다. 영웅신화처럼 영적 신화도 되풀이된다. 육조 스님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집을 떠난 젊은 아들이 걸어갈 구도의 길 생명의 길에, 홀로된 늙은 어미가 가야하는 고독한 죽음의 길이 겹쳐 떠오른다. 전설에 의하면, 육조의 사세손 황벽희운의 어미도 쓸쓸히 죽었다. 아들이 주석하는 절을 찾아 애타게 문을 두드리다 문이 열리지 않자, 돌아가는 길에 강에서 익사했다. 도를 얻으려면 자기가 죽든지 어미가 죽든지 누구 하나가 죽어야 한다.)

 

누구에게 사는 것은 아니지만, 몸을 바쳐야만 얻어지는 게 진리이다. 때로는 목숨을 바쳐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진리 안에서 새로 태어나기에, 사실은 죽음이 아니다. 그게 법신(法身)이다. 눈물과 고통의 생명이 아니라 웃음과 기쁨의 생명이다.

 

그런데 지금 모든 법(法)이 드러났다. 눈보라 몰아치는 설산이 아니라, 망고향기 바람에 실려 오는 아름다운 기수급고독원에 펼쳐진다. 부처님이 그렇게 어렵게 얻은 법이 금구(金口)를 통해 지금 내 앞에서 설해진다. 가지런한 새하얀 이 사이로 흘러나오는 가릉빈가 같은 감미로운 목소리를 통해 울려나온다. 거룩한 32상이다. 보기만 해도 듣기만 해도 환희심이 절로 솟는다. 보고 들은 걸 반추하면 영양분이 나와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저녁에도 그렇고 새벽에도 그렇다. 낮이고 밤이고 그렇다. 그분과 하나가 된다. 그가 나인지 내가 그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기독교 신비주의자들은 말한다. 이제 내가 죽고 그분이 있다. 내가 먹는 것은 그분이 먹는 것이고, 내가 숨 쉬는 것은 그분이 숨 쉬는 것이다. 천지간에 오로지 그분만이 있다. 어디를 가도 그분과 대면한다.

 

부처님이 세상을 떠나고 세월이 흐르자, 무수한 수행자들의 증언을 통해, 부처님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탑을 만들고 사리를 모셨다. 하지만 진리를 얻을 수만 있다면 탑 위에서 몸을 던져 죽을지언정, 탑을 진리보다 위에 둘 수는 없는 일이다.

 

진리가 탑이다. 진리가 설해지는 곳에 불탑이 있고 사리탑이 있다. 그 진리를 담은 사리함이 경전이다. 그래서 눈 밝고 마음 맑은 이들은 이 경전의 한 구절만이라도 설해지는 곳을 불탑인 양, 사리탑인 양, 공양한다. 온 우주의 맑은 기운이 몰려와 응결하여 감미로운 법 이슬을 맺는다. 마음이 한없이 자유로워지고 사방에서 감동이 밀려온다. 천인아수라개응공양물이다.

 

약시경전 소재지처 즉위유불 약존중제자. 물리적인 부처와 제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경전을 받아 모시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부처이고 제자들이다. 법이 부처이고 행이 제자이기 때문이다. 그런 제자는 불탑이다. 걸어 다니는 불탑이다. 중생들이 찾아가는 불탑이 아니라, 중생들에게 찾아가는 불탑이다. 탑이 살아 움직이게 하는 것보다 더 희유한 공덕은 없다. 그래서 성취제일희유공덕이다.

 

강병균 포항공대 수학과 교수 bgkang@postech.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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