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선(參禪) : 지금 하는 일에 몰두하는 것

작성자향상일로|작성시간20.06.21|조회수109 목록 댓글 0

 

참선(參禪)이란 별 게 아니다. 자기가 하고 있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걸을 때는 오직 걷는 데만 정신을 집중한다. 곁눈질을 해서도 안 되고, 새소리를 들어서도 안 된다. 오직 자기 다리 움직이는 데만 정신을 집중한다. 그러면 그때에 최대 능력이 나타난다. 걸을 때 몸을 움직이니 땀이 나오지만 그것은 정확한 호흡법에 의하여 비교적 빨리 회복된다.

 

어떤 대상에 대하여 의식적인 노력 없이도 몰두가 될 수 있고 일체감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참선에서 삼매경지에 가까운 것이고 또 이것은 정신의학적으로 바람직한 상태이다. 그러나 이것을 더 일보 전진 해 볼 때 특정한 대상에만 느끼면 느낄수록 다른 것은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이것은 참선에서 항상 문제가 되는 점으로 여러 가지 논의의 대상이 되고 있다.

 

예를 들어 어떤 대상에 몰두하여 일체가 되고 무아몽중(無我夢中)이 되는 것을 삼매라고 한다면 경마에 미쳐 처자를 길거리에 내쫓는 것도, 돈벌이에 광분하여 수전노(守錢奴)가 되는 것도 삼매의 경지라고 말할 수 있지 않는가? 정말 어려운 문제라 하겠다. 이 같은 견지에서 연애도 일종의 삼매경이라고 할 수 있다.

 

참선에 비사량(非思量)이란 말이 있다. 현재의 시점에서 하나의 일에 마음이 전부 향하고 있어 다른 일에 마음이 향하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다시 말하면 제일 중요한 일에 마음이 쏠리고 필요하지 않은 지엽적인 일에는 마음이 쏠려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그리고 무리 한다든가 노력한다든가 하는 의식적인 것이 없고, 자연히 정신집중이 이루어져야 한다.

 

참선을 통하여 비상량(非思量)의 경지에 도달하면 아무것에도 집착하지 않는 자유활달한 정신상태를 가져온다. 강인한 정신력, 우물쭈물하지 않는 담력 등이 그것이다. 자유활달한 정신은 양심의 소리에 순응해야 할 것이다. 양심의 소리에는 집착도 없고, 무명도 없고, 미혹도 없다. 이 양심의 소리를 불교에서는 불성(佛性)이라고 한다.  인간 각자의 잠재의식에 내포하는 양심의 소리는 모든 우주의 순리(順理)대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우리들을 인도한다.

 

출처 : 박희선 박사의 생활참선에서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