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冥想)과 간화선(看話禪) 차이는 무엇인가

작성자향상일로|작성시간16.05.07|조회수428 목록 댓글 0


◐ 명상(冥想)이란?


명상(참선,參禪)은 영어 meditation을 우리말로 옮긴 것으로 ‘고요히 생각에 잠기는 것’ 정도의 뜻이다. 명상은 차별과 구별이 많은 사람들이 정신적 안정을 얻기 위해 하는 수행법이다. 초기 불교 팔리어에서는 '쟈나'(jhāna)로 선정(禪定)이라는 단어와 일치한다. 선정은 생각을 쉬고 순수한 내면의식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 간화선(看話禪)이란 무엇인가?


간화선은 명상으로 마음이 안정된 사람들이 본성을 찾고자 하는 수행법이다.

간화선(看話禪)이란 화두(話頭)를 참구하여 본래 성품을 바로 보는 참선법이다. 본래 성품을 보면 깨닫는 것이다. 화두를 타파하여 깨닫는 것을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 한다. 견성성불이란, 자기 마음을 바로 보아 부처가 되는 것을 말한다.


간화선을' 화두를 참구하여 깨치는 수행법'이라 하여 일명 화두선(話頭禪)이라고도 한다. 간화선은 석가모니 부처님 이래 인도와 중국을 거치면서 자기 성품을 깨닫는 여러 참선법 가운데 가장 발달된 수행법으로 자리 잡았다.


간화선의 원류가 되는 조사선(祖師禪)은 4세기경 달마 대사가 동쪽으로 건너와 전한 것에서 유래한다. 7세기경 당나라 시대에 6조가 된 조계 혜능(638~713) 선사가 돈오선법을 제창하면서 선종의 실질적인 기반을 확립하였다. 그 이후 당, 송 나라 시대를 거치며 수 많은 선지식들을 배출하였다.


간화선이 뛰어난 점은 깨달은 선지식이 깨달은 자리를 바로 보라고 제시한 화두를 타파하여 그 자리에서 견성 성불하기 때문이다.

화두란 무엇인가?

화두(話頭)란 부처님과 조사 스님들이 하신 말길과 생각의 길이 끊긴 말이다. 이 말길과 생각의 길로는 알 수 없는 화두를 알기 위해 의심하여 온 마음이 화두와 하나가 되어 마침내 그 화두를 타파하면 견성 성불하는 것이다.

깨달음의 세계는 어떠한가?

화두를 타파하면 꿈에서 깨어난 것과 같다. 또 하늘에 백 천개의 해가 비치는 것과 같다. 깨달은 세계는 허공과 같이 무한히 넓어 한정이 없다. 그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평등해서 우열이 없고, 귀천ㆍ친소ㆍ시비가 없다. 대립과 갈등 그리고 투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계만이 있을 뿐이다. 깨달으면 자주적이고 자율적이며, 능동적이고 적극적이며, 한 없이 자비로우며, 괴로울 때나 즐거울 때나 자유자재한 대자유인이 된다. 이 역동적인 현상은 말로도 설명할 수 없고 글로도 표현할 수 없다. 스스로 물을 마셔보아야 차고 더운 것을 아는 이치와도 같다.

초심자가 간화선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부처님 가르침대로 발심(發心)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간화선 수행을 할 수 있다. 정견을 갖추고 진정한 발심이 되어 있고 눈 밝은 스승이 있다면 이런 사람은 기초 수행 없이 바로 간화선 수행을 해도 된다.

그러나 부처님 교법(敎法)에 대한 정견과 발심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바로 간화선을 하려면 제대로 하기가 어렵다. 초심자들은 간화선 수행을 하기 전에 교법을 바르게 이해하여 확고한 신심(信心)을 세우고 수행을 통하여 기필코 깨닫고야 말겠다는 발심을 해야 한다.

참선수행을 왜 해야 하는가?

불교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깨달음에서 출발하였습니다. 인류 이래로 생로병사의 고통과 행복은 반복되어 왔고, 이에 대한 수많은 종교와 철학이 발생하고 또 소멸하여 왔습니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자기 마음을 깨치면, 즉 견성성불하면 생사를 해탈하여 영원한 행복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성철 스님도"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요, 깨달음으로 만세의 표준을 세워야 한다."고 말하셨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깨칠 수 있는가?


선종(禪宗)에서는 우리는 이미 본래 부처라는 것입니다. 본래 부처인데 왜 깨친다고 말하는가?

우리는 본래 부처인데, 번뇌망상에 가려서 자기의 본마음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번뇌망상을 제거하여 본 마음을 보는 것이 깨달음이고, 번뇌망상을 없애 가는 것이 불교 수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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