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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문즉설

아름답게 늙어가는 사람 - 법륜 스님

작성자향상일로|작성시간24.09.16|조회수53 목록 댓글 0

◆ 질문

스님 저서 중에 '반야심경 이야기'라는 책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불생불멸의 이치에서는 생과 멸의 현상이 단지 변화의 일부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만고에 두려움이 없다'는 말씀이 있던데 이해가 잘 안 가서 여쭈어봅니다.

 

◆ 답

생(生)과 사(死), 또는 생(生)과 멸(滅)이라는 것이

밖에서 일어나는 객관적 사실이라고 보면 안 된다.

밖에서 일어나는 그런 현상을 내가 생과 사, 또는

생과 멸이라고 인식하는 것입니다. 생과 사가 있는 게 아니고,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데, 내가 그것은 생멸로 인식하는 겁니다.

 

바다에 파도가 일어났다가 사라졌다가 하는데

그 파도 하나, 하나를 보면 일어나고(생) 사라지는 현상(멸)이 있지만

바다 전체를 보면 바닷물이 다만 출렁거릴 뿐이다.

이런 관점에서는 생도 없고 멸도 없어요.

이것은 인식의 문제일 뿐입니다.

 

이것은 마치 컵이 시계보다는 크고, 책보다는 작은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컵은 큰 것도 아니고 작은 것도 아녜요.

그래서 '크다, 작다' 역시 존재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의 문제일 뿐입니다.

 

질문하신 분은 연세가 어떻게 되셨어요? (오십 아홉입니다)

그럼 오십 아홉은 늙었어요, 젊었어요?

20대가 보면 늙었다고 하지만, 80대가 보면 아직 젊다고 하겠죠?

그래서 늙고 젊고도 없어요.

인식을 할 때 어떻게 인식을 하느냐의 문제일 뿐이에요.

이것을 일컬어 '마음이 짓는 바이다' 이렇게 말해요.

 

생사도 존재가 생하고 멸하는 게 아니라, 존재는 다만 변화할 뿐인데

우리가 그것을 보고 '생겼다, 사라졌다.' 라고 인식을 하는 겁니다.

나무도 봄에 잎이 나고 가을에 낙엽으로 떨어지고, 생과 멸이 있는 거 같지만

그렇게 잎이 나고 떨어지고, 또 잎이 나고 떨어지고 하면서 나무는 커갑니다.

생멸이 아니라 하나의 현상이다.

 

세 살짜리 아이는 그릇에 담긴 얼음구슬과 유리구슬을 같은 것으로 보는데

몇 시간 밖에 나가 놀다가 와 보니까 얼음구슬은 없어지고 그릇에는 물만 담겨 있어.

"엄마, 내 구슬 어디 갔어? 내 구슬이 없어졌어. 그리고 물이 생겼어."

이럴 때 어른이 보면 어른이 본다는 것은 전과정을 본다는 것인데

어른이 보면 그것은 구슬이 없어진 것도 아니고 물이 생겨난 것도 아니고

변화한 것이다. 얼음이 물로 상태가 변화한 것이다.

 

어른이라고 하는 것은 지혜로운 자다. 상황을 전부 아는 사람은 변화했다고 보고

어린 아이라고 하는 것은 어리석다. 전체 상황을 못 보는 사람은 생멸로 보는 것이다.

 

우리는 생멸(生滅)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기 때문에,

생하였다고 기뻐하고 멸했다고 슬퍼하는데

좀 더 크게 보면 이것은 하나의 변화일 뿐이다.

생하였다 하지만 생하였다 할 것도 없고

멸하였다 하지만 멸하였다 할 것도 없다.

그냥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이 말입니다.

 

이것이 불생불멸의 이치인데, 불생불멸이라고 하는 것은

영원히 멸하지 않고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고

생하는 것도 아니고 멸하는 것도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다만 변화할 뿐이다. 이게 제행무상(諸行無常)이에요.

제행무상과 불생불멸은 반대냐? 아니에요.

‘제행무상이기 때문에 불생불멸이다.’라고 말할 수 있어요.

 

어렸을 때는 나이를 올리려고 하고, 나이 들어서는 나이를 낮추려고 하는데

젊어서는 젊음을 만끽하고, 장년일 때는 장년을 만끽하고, 늙으면 늙음을 만끽해야 한다.

늙은 게 나쁜 게 아닌데 여러분은 늙으면 초라해져요.

이건 몸뚱이 때문에 오는 문제가 아니에요.

늙었다고 괴로운 게 아니고, 병들었다고 초라한 게 아녜요.

부처님 사문유관에서도, 처음에 동쪽 문으로 나가서 늙어서 초라한 사람을 보았고

다음날 남쪽 문으로 나가서 병들어서 초라한 사람을 보았지만

마지막 날 북쪽 문으로 나가서 본 수행자는 초라하지 않았어요.

눈이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그동안에 제가 결혼과 자녀에 관한 책을 썼는데

다음에 나올 책은 '어떻게 늙어야 하는가?'의 문제를 다루는 책이에요.

그 주제는 이렇습니다. - '잘 물든 단풍은 봄꽃보다 예쁘다'

꽃잎은 떨어지면 버리는데 지저분한데 단풍은 떨어지면 책갈피에 꼽습니다.

그러니까 늙음을 만끽할 줄 알아야 합니다.

 

늙은 사람이 육체적으로 젊은 사람을 흉내 내면 열등의식이 생깁니다.

그러나 점잔은 걸로 하면 늙은 사람이 더 유리합니다.

다리가 힘이 없어서 빨리 안 가고 저절로 천천히 걸어가요.

눈이 잘 안 보이니까 분별심도 적어요.

귀도 잘 안 들리니까 남의 말에 별로 신경도 안 써요.

그래서 자연히 젊잖게 돼요,

 

그런데 늙어가지고 눈 안 보인다고 눈 타령하고

귀 안 들린다고 귀 타령하고, 늙어서 자꾸 말이 많아요.

어린 애들은 재잘 재잘대면 귀엽지만

늙어서 말이 많으면 잔소리라고 그래요.

 

그래서 젊은이는 젊은이에 맞게 살아야 하고

늙은이는 늙은이에 맞게 살아야 하는데

늙으면 말이 적은 게 훨씬 무게감이 있고 좋습니다.

행이 느린 게 좋고, 옳고 그름을 너무 따지지 않는 게 좋습니다.

어지간하면..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다. 관둬라~' 이러면 도인이라고 그래요.

그런데 '이건 옳고 저건 틀리고' 너무 그러면 분별심이라고 그래요.

그런데 젊은 사람이 너무 '그럴 수도 있는 거야~' 그러면 애늙은이라고 그래요.

젊은 사람은 좀 정의감도 있고 투쟁력도 있고 그래야 좋습니다.

 

그래서 그 연령, 그 조건에 맞게 사는 것이 행복이지

뭐 보톡스 맞고 주름 펴고 그런다고 좋은 게 아녜요.

그건 공연히 자기를 괴롭히는 행위입니다.

 

늙으면서 눈 안 보이는 것도 자연스러운 것이고, 주름 생기는 것도 자연스러운 것이고

머리가 하얘지는 것도 자연스러운 것이고, 몸이 뜻대로 안 움직이는 것도 자연스러운 거예요.

겨울은 추워야 하고 여름은 더워야 하는 것처럼.. 그렇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럴 때 아름답게 늙어 보이는 거예요.

 

불생불멸(不生不滅)의 이치를 알면 늙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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