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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문즉설

사랑하면 집착하게 되는데, 덜 괴로울 수 있는 방법이 있나요?

작성자향상일로|작성시간26.06.17|조회수39 목록 댓글 0

◆ 질문

“This week’s Wednesday Dharma talk on breakup really resonated with me, because when I love someone, I tend to become deeply attached. You said that we simply need to feel the pain of a breakup, and there is no other way around it. As a monk, you don’t live within romantic relationships, so I wonder how you can offer such wise and comforting advice. Do you experience similar forms of attachment and loss in other ways? Or does your insight come from deep observation, meditation, or something else? I’m curious how this kind of wisdom is gained, and how I might learn to suffer less.”(지난주 수요법회에서 설법해 주신 이별과 관계에 대한 스님의 말씀이 저에게 깊이 와 닿았습니다. 저 또한 누군가를 사랑하면 깊이 집착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별의 아픔은 그저 온전히 느껴야 하며, 다른 방법은 없다고도 말씀하셨습니다. 스님은 수행자이시기에 연애관계를 직접 경험하지 않으실 텐데, 어떻게 그렇게 지혜롭고 위로가 되는 말씀을 해 주실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혹시 다른 형태의 집착이나 상실을 통해 비슷한 경험을 하시는 건가요? 아니면 깊은 관찰이나 명상, 또는 다른 어떤 방법을 통해 그런 통찰을 얻으신 건가요? 이러한 지혜는 어떻게 얻어지는 것인지, 그리고 제가 어떻게 하면 덜 괴로울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 법륜 스님

“우리가 어떻게 괴로움에서 벗어나는가, 이것이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입니다. 남녀 간의 사랑이든, 가족 간의 애정이든, 심리적으로는 다 비슷합니다. 각각의 상황에 따라 약간의 심리적 차이는 있지만, 그 차이는 아주 작고 공통점이 훨씬 많습니다. 마치 사람과 침팬지를 보면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유전자를 비교하면 99%가 같고 1%만 다른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좋아하고 거기에 집착하는 것은, 그 대상이 사람이든 물건이든, 또 사람 가운데서도 누구이든 기본적으로 공통점이 훨씬 많고, 각각의 경우에 나타나는 차이점은 매우 적습니다. 어떤 집착에서 벗어나려 할 때 그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면, 다시 말해 집착의 원인을 깊이 들여다보게 되면,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타인이 겪는 고통에 도움을 주려면 공통점의 발견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차이점, 즉 각 경우의 특수한 부분까지 살필 수 있어야 비로소 타인에게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이것을 불교의 가르침으로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우리는 모든 존재에 반드시 그 존재일 수밖에 없는 실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실체가 없습니다. 초기불교에서는 이것을 '무아(無我)'라고 하고, 대승불교에서는 '공(空)'이라고 부릅니다. '모든 법이 공하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면 자신의 번뇌가 사라집니다. 이것을 성문의 지혜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겪는 고통은 큰 틀에서는 같지만, 고통의 종류에 따라, 사람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 그 각각의 차이까지 알아야 상대를 제대로 도울 수 있습니다. 앞서 말한 '제법이 공하다'는 지혜를 '통찰지(洞察智)'라고 하는데, 이것은 본인이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지혜입니다. 반면, 중생을 구제하려면 각각의 경우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들을 두루 파악하는 분별지(分別智)를 갖추어야 합니다. 이것을 '보살의 눈', '보살의 지혜'라고 합니다.

 

우리가 지식으로 아는 것은, 아는 만큼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아는 만큼의 지혜만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경험을 통해 얻는 지혜는, 경험이 많이 쌓이면 경험 밖까지 예측이 가능한 통찰지(洞察智)가 생겨납니다. 쉽게 말하면, 지식으로 아는 것은 백 가지 지식을 쌓았으면 백 가지에 대해서만 압니다. 그러나 경험으로 쌓인 지혜는, 백 가지 경험을 했다면 백 가지만 아는 것이 아니라 그 밖의 수백 가지도 대부분 예측이 됩니다. 이것을 한문으로는 ‘문리(文理)가 트였다’고 말합니다. 아는 것이 어느 순간 확 확장되어서, 직접 경험하지 않은 것까지도 보일 때를 표현한 말입니다. 예를 들어 많은 경험을 통해 사람을 치료한 한의사의 경우, 경험이 많이 쌓이면 환자가 딱 들어오는 순간 얼굴색을 보고, 목소리만 들어도 무슨 병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것이 100% 정확하다고는 할 수 없어서 환자 이야기를 들어보고 진맥해서 확인하고 치료하지만, 환자가 들어올 때부터 99%는 이미 파악하는 셈입니다. 경험은 어느 정도까지 쌓여 어떤 한계점을 넘어가면 경험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지혜가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신비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통찰력이라는 것은 과학과 같습니다. 일종의 빅데이터와도 같아요. 일정한 데이터가 쌓이면 전체를 파악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게 됩니다. 인공지능도 어느 단계 이상을 넘어가면 자기 스스로 발전할 수 있는 상황에 이른다고 하지요. 앞으로 인공지능이 이 단계를 넘어가면 유익함도 있지만 많은 위험을 초래할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지금까지는 인간이 만들어준 프로그램과 인간이 주입한 정보 안에서만 인공지능이 활동했는데, 그것이 많이 쌓여 어떤 임계점을 넘어가면 사람의 손을 떠나 마치 사람처럼 스스로 작업을 해 나가게 될 겁니다. 좋은 면도 있지만 굉장히 위험한 점도 있습니다.

 

그래서 질문자가 사람을 만나서 사랑하거나 헤어질 때, ‘만나서 좋으면 꼭 같이 있어야 한다.’, ‘헤어져서 아프면 벗어나려고 다시 만나야 한다.’ 이렇게 생각할 게 아니라, ‘만날 때는 이런 마음이 일어나는 구나’, ‘헤어질 때는 이런 고통이 따르는 구나’ 이렇게 관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그 원인은 무엇일지 살펴보고, 원인을 모르겠으면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헤어져 보면서 원인을 자꾸 규명해야 합니다. 사람과의 만남과 헤어짐 속에서 내 마음이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 그 마음과 고통의 원인은 무엇인지, 마치 학문을 공부하듯이 연구해야 합니다. 그렇게 몇 번 경험하다 보면, 이 마음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그 원리를 알 수 있습니다.

 

수행자는 마음의 이치를 탐구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을 보면, 여러분은 욕심이 많고 게으르다고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이를 키운다고 하면, 아이가 공부를 잘하고 내 말을 잘 듣기를 원하고, 내가 바라는 대로 되기만을 바랍니다. 그런데 아이가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왜 저항하는지에 대한 연구는 전혀 하지 않습니다.

 

또 다른 예로, 결혼해서 20년을 같이 살다가 배우자가 다른 이성에게 관심을 줬다고 해봅시다. 그러면 우리는 배우자가 나만 사랑하기를 원하거나, 화를 내거나, 울기만 하지,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연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건 굉장한 연구 대상이잖아요? 우리에게 일상적이지 않은, 예상 밖의 일이 일어나면 그것은 다 연구 대상입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면 배우자와도 좀 더 자세히 이야기를 해봐야 하고, 그 상대 이성과도 이야기를 해봐야 하고,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계속 연구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를 발견할 수 있잖아요.

 

이것은 화낼 일이 아니라 연구할 대상입니다. 연구 결과로 원인이 밝혀지면, 배우자가 다른 이성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원인을 내가 충족시켜 주든지, 내가 할 수 없는 부분이라면 그분과 잘 살라고 하고 내 길을 가든지, 이렇게 연구한 결과를 가지고 판단해야 합니다. 차가 고장 났을 때 고장의 원인을 살펴서 고치는 게 나은지, 아니면 폐차하고 새 차를 사는 게 나은지를 결정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이런 연구는 하지 않고, 그냥 화만 내고 울고, 다시 돌아오기만을 바라는 감정적인 낭비만 합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연구하는 자세를 갖는다면, 이런 경우를 백 가지쯤 겪고 ‘인간의 심리가 이렇게 움직이는 구나’, ‘상대에 따라서는 이렇게 움직이는 구나’ 하고 분석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앞으로 나에게 어떤 일이 생겨도 내가 어떻게 움직일 가능성이 높은지 예측할 수 있습니다. 이 정도 되면 자기 자신을 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자꾸 좋은 결과만 바라지 말고, 연구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통찰력이 생깁니다. 통찰력이 생기면 어떤 문제에 대해서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선택의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자세도 갖게 됩니다.

 

만약 중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말썽을 일으켜 문제아가 되었다면, 이것을 연구해서 청소년 문제 전문가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을 글로 쓰면 베스트셀러가 될 수도 있고요. 만약 남편이 바람을 피웠다면, 이것을 연구해서 중년 남성의 심리를 알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왜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칩니까? 남편이 다른 여자를 만났다는 것보다, 연구 케이스가 생겼다는 게 훨씬 더 중요하지 않나요? 여러분은 정말 중요한 것에는 관심이 없고, 하찮은 것에 늘 관심을 가지고 전전긍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수행자는 항상 각각의 상황에 따라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늘 관찰하고 연구해 나가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연구하는 자세를 가지면, 어떤 일의 결과가 괴로움으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이렇게 해도 되지 않네. 원인이 뭐지? 그럼 저렇게 해볼까?’ 이렇게 늘 연구하는 자세를 갖게 되면 그 일이 더 이상 괴로움으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Thanks for the perfect answer.”

(완벽한 답변 감사합니다.)

 

출처 : 정토회 법륜 스님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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