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도 수많은 소리가 왔다가 간다.
보통 우리는 귀로 소리를 들을 때,
듣는 내가 따로 있고,
들리는 소리가 따로 있어서,
내가 소리를 듣는다고 분별한다.
그러나 들리는 소리를 떠나
듣는 내가 있을 수 없고,
듣는 나를 떠나 들리는 소리가 있을 수 없다.
그 둘은 연기적으로 동시생, 동시멸이다.
인연생, 인연멸로 서로 의존해서만 존재할 수 있다.
본래 듣는 나도,
들리는 소리도 따로 없지만,
인연가합(因緣假合)으로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이와 같이 우리는 본래 없는 것,
즉 무아(無我)이고 무상(無常)한 것을
육근(六根)과 육경(六境)이라는 인연을 화합시킴으로써
‘있는 것’이라는 착각을 일으킨다.
이렇듯 육근과 육경이 화합하여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실체적으로 있다고 여기며
육경에 휘둘리고 끌려 다니는 상태를
육근이 오염되었다고 하고,
이를 인연생. 인연멸임을 바로 보아
그 어떤 육경이라는 경계에도 끌려가지 않는 상태를
육근이 청정하다고 한다.
출처: 법상스님의 날마다 해피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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