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가 내리던 몇 해 전의 일입니다.
함께 차를 마시던 한 거사님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빗소리가 너무나 좋습니다.”
그러자 곁에 있던 스님이 바로 말했어요.
“비는 소리가 없는데요?”
세상에 저 홀로 저일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지요.
소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고운 비가 허공 가득 내린다 해도 바람, 초목, 대지 나아가 그것을 듣는 귀가 없다면
빗소리는 끝내 빗소리가 될 수 없는 것이지요.
그러니 비에는 소리가 없는 것입니다.
빗소리는 빗물과 허공과 바람과 초목과 대지와 그것을 듣는 밝은 귀가 어우러져 피어나는
아슬아슬한 확률 같은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이것을 연기(緣起)라고 말하지요.
‘나’는 나 홀로 ‘나’가 아니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조건들이 합쳐진 관계의 결과입니다.
순간순간 내가 할 일에 최선을 다할 때 아름다운 인연과 시절이 따릅니다.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