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친구와 헤어진 뒤 부처님 전에 3000천배를 하며 마음을 달래는 사람이 있었다.
본래부터 내 여자, 내 남자가 어디 있는가. 잠시 인연 따라 사랑도 오고 갈 뿐이다. 그런데 ‘내 사랑’으로 만들겠다고 그것에 집착하니 모든 괴로움이 거기서 시작되는 것이다.
그 집착은 누가 만들었는가. 내 스스로 만든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 만들어 놓고 헤어지게 되었다고 스스로 괴로워하고 있으니 그 원인도 나에게 있고 그 해답 또한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닌가. 내가 붙잡아 내 것으로 하고자 애착을 내었으니 붙잡은 그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것도 ‘나’인 것이다. 그걸 어찌 부처님께서 하느님께서 대신해 줄 수 있겠는가. 내 스스로 놓아버려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마음에 집착과 애착을 놓아서 편안해 졌다고 치자. 그렇다면 그 사람은 그 괴로움을 없앤 것인가. 물론 없앤 것이기는 하지만 본래부터 없던 괴로움을 제 스스로 만들었다가 그 괴로움에 스스로 아파하다가 다시 그 괴로움을 놓아버린 것이다. 이 집착이 본래부터 없던 사람이 보기에는 참 공연한 일을 벌인 꼴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옛 말에 수행 잘 하는 사람보다 본래부터 ‘일 없는 사람’ 한도인(閑道人)이 한 수 위라고 한다. <증도가>에 무위한도인 부제망상불구진(無爲閑道人不除妄想不求眞)란 말이 있습니다. ‘한가한 도인은 망상도 없애지 않고 참됨을 구하지도 않는다.’ 뜻이다.
사실 평소 우리는 누구나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배고프면 밥 먹고, 잠 오면 잠을 잡니다. 그런데 배고프면 먹으면 되는데 우리는 '더 좋은 것'을 먹으려고 애쓰고, '더 많이' 먹으려고 애쓰지요. 삶을 자연스럽게 그냥 인연 따라 물 흐르듯 살면 되는데 공연히 스스로 복잡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세상은 쉽게, 쉽게 살면 세상이 편합니다. 사랑이 오면 사랑을 하고, 또 사랑하다 헤어지면 자연스레 이별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 동안 주고받은 정(情)이나 하찮은 집착에서 벗어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사람 인연(因緣)은 칼로 무 자르듯 ‘이 사람 아니면 안 된다.’ 딱 자를 일이 아니다는 걸 인식해야 합니다.
중국 한비자는 인연을 “유연천리래상회 무연대면불상봉 (有緣千里來相會 無緣對面不相逢)이라 했다. 인연이 있으면 천리가 떨어져 있어도 만나지만, 인연이 없으면 얼굴을 마주하고서도 만나지 못한다.” 는 것이다. 또 피천득 선생은 수필 ‘인연’에서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몰라보고, 보통 사람은 인연인 줄 알면서도 놓치고, 현명한 사람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을 살려낸다.”고 했다.
우주 법계는 공(空)의 세계이다. 공(空)의 세계는 무아(因緣我)이고 무상(無常)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인연아((因緣我)의 흐름으로 고정된 실체가 없다. 우리 생각으로 좋은 인연, 나쁜 인연이 따로 있는 것 같지만, 깨달음의 길에는 좋고 나쁜 인연이 없다. 그러니 모든 인연을 아름답게 받고 끝내는 게 무량대복의 길이다.
출처: <부자보다는 잘 사는 사람이 되라>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