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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법의 사회적 실천

작성자향상일로|작성시간26.06.11|조회수45 목록 댓글 0

깨달음이란 연기법을 말합니다.

연기(緣起)이기 때문에 무아(無我)입니다.

무아이기 때문에 공(空)입니다.

이것은 만물의 절대 평등성을 뜻합니다.

기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차별이 없기 때문에 귀하고 천한 것이 없습니다.

남자, 여자를 귀하고 천하다고 보거나, 양반, 상놈을 귀하고 천하다고 구별하는 것은

모두 환영에 사로잡혀서 꿈속의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셨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계급 차별도 부정하시고, 남녀 차별도 부정하신 겁니다.

 

정의란 평등성을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차별성에서 평등성으로 나아갈 때 정의롭다고 말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평등성에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에 정의로운 실천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 안에서는 인종차별도 없고, 종교차별도 없고, 성차별도 없습니다. 현실에서는 이런 다양한 차별이 존재하지만, 이는 모두 환영에 사로잡힌 무지의 소산입니다. 무지가 걷히고 나면 모든 존재는 서로 다를 뿐 각자가 제 역할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치 손가락 다섯 개가 모두 다 제 역할이 있듯이 크기와 모양이 조금씩 다를 뿐이지 여기에는 어느 것이 더 귀하고 천한 것이 없습니다.

 

수행자는 자기를 행복하게 하고 세상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 검소하고 겸손하게 살아가야 하는데, 이런 태도도 모두 평등성에 기초하고 있는 것입니다. 수행자는 정의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돈 조금 있다고 거들먹거리거나, 지위가 높다고 남을 무시하거나, 남자라고 여자를 차별하거나, 나이가 많다고 젊은 사람을 차별하거나, 얼굴이 희다고 검은 사람을 차별하는 건 진리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은 아예 불법(佛法)을 모르거나, 설령 불교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불교의 진리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물론 과거의 업식 때문에 아는 것을 다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불법(佛法)을 모른다면 제대로 공부를 할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하고, 알긴 아는데 다 행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들을 조금 더 기다려줘야 합니다. 알기도 어렵지만, 안다고 하더라도 다 행하는 건 금방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포용성이 있어야 합니다. 나는 항상 진실에 기초하려고 노력하지만 그 기준을 다른 사람에게도 너무 엄격하게 적용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나를 포함해서 우리 모두는 지금 그렇게 되어가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잘못도 포용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진실을 보고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것을 지혜의 눈을 갖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수행자는 타인에 대해서는 이 기준을 너무 엄격하게 적용하지 않고 그들이 연습을 하는 것을 지켜보고 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자비(慈悲)’라고 합니다.

 

출처 : 정토회 스님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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