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위서 동이전에 따르면, 고구려에서는 혼인이 결정된 뒤 신부의 친정집 뒤에 작은 집을 지어 서옥(婿屋)이라 부르며, 저녁에 사위가 부인집에 와 문 밖에서 자기의 이름을 알리고 무릎 꿇고 절하면서 부인과 동숙할 것을 세 번 원하면 여자의 부모는 이것을 듣고 소옥(小屋)에서 동숙하기를 허가하였다고 한다. 남편은 다음날 떠날 때 전백(錢帛)을 놓고 갔으며, 부인은 자녀를 낳고 자녀가 성장한 뒤에야 비로소 남편 집에 살러 갔다고 한다.
조선시대 유교사상이 통치이념으로 되면서 혼인 풍습도 중국을 모방하여 신랑집에서 혼례를 치를 것을 장려했다. 이에 대해 사대부들이 반말을 했다. 우리나라가 처해 있는 것을 보더라도 중국과 토지가 벌써 다르고 풍기(風氣)가 같지 않으며, 삼강오륜이라 할지라도 다르지 않을 수 없다. 문물제도라 할지라도 부득불 중국과 다름이 있다.……부귀부가(婦歸夫家 아내가 남편집으로 시집가는 것)가 순리이지만 우리나라는 부귀부가(夫歸婦家 남편이 아내 집으로 장가 가는 것)하고……, 3년간 거처한 연후에 친영을 행함이 가하니 어찌 거처를 폐지할 것이냐?”고 반박하였다.
이러한 논란을 거친 끝에 일부 사대부를 중심으로 전통적 남귀여가(男歸女家)의 혼속과 중국식 친영의 예를 합한 절충론이 제시되었다. 이는 일명 반친영(半親迎)으로서 신랑이 신부집에서 대례(大禮)를 행하되 오래 머무르지 않고 사흘째 신랑집에서 구고지례(舅姑之禮: 폐백)를 행하는 것으로 삼일우귀(三日于歸)라고도 한다. 반친영은 일부 사대부를 중심으로 16세기 이후 행해지기 시작하였으며, 일반 서민들에게까지 보된다.
삼일우귀의 혼례과정을 보면, 신랑일행이 혼례식을 올리기 위해 신부집으로 가는 초행(醮行), 신부집에서 행하는 전안지례(尊雁之禮:신랑이 신부집에 나무기러기를 가지고 가서 상 위에 놓고 절하는 예)·교배지례(交拜之禮)·합근지례(合卺之禮), 그리고 신방을 치루고 사흘째 신부를 데리고 신행을 하는 구고지례로 구성된다.
혼인식은 여자가 남자쪽으로 가면서 하는 예식이다. 즉 신부가 친정집에서 마지막 밤을 지내는 날이다. 또 여자는 남자보다 여러가지로 단장할 일이 많다. 신부 어머니의 지극한 보살핌이 필요하다. 따라서 혼인은 신부집에서 하는 것이 순리이다.